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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fn사설] 반도체 52시간 예외 삭제, 기업 옥죄어 얻는 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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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인력 유연근무 야당에 발목
이대로면 기술개발 낙오 못 면해


파이낸셜뉴스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 회의 장면.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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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추진 중인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의 유연근무 조항이 삭제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국민의힘이 국회에 제출한 반도체특별법에는 노사 합의를 전제로 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고소득 전문직 근로시간 규제 면제)' 조항이 있다. 경영계의 오랜 요구사항으로 해외 경쟁국인 대만, 일본, 미국 등에서 진작에 시행 중인 제도다.

여당은 이를 비로소 당론으로 채택해 법안을 제출했지만 야당의 반대 벽에 부딪혔다. 국회 산자위에선 이 조항을 환노위에서 다루기로 하고 이를 제외한 내용만 심의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한다. 환노위 노동계 출신 민주당 의원들은 강경하다. 환노위에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 통과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유연근무라고 하면 막무가내로 반대인 야당이나 이런 예견된 상황을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여당이나 둘 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획일적인 주 52시간제도의 문제점은 수도 없이 지적됐던 바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나온 특별연장근로제도는 요건이 까다로워 현장 적용률이 상당히 낮은 실정이다. 경영계 요구는 첨단·반도체 분야 R&D센터와 고액 연봉 전문직 등 특정 인력만이라도 면제해달라는 것이다.

유연한 근로 환경에서 해외 기술 개발진은 필요할 때 밤새 연구에 매달리고 원하는 시간에 편히 쉰다. 국가가 법적으로 개발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기업은 양질의 고액 보상으로 이를 뒷받침해준다. 첨단기업은 속도전에서 승부가 갈린다. 가뜩이나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개발 경쟁에서 우리는 후발주자다. 연구 성과가 부족하고 가야 할 길이 멀다. 유연근무를 빠트린 채 파격적인 R&D 지원을 논할 순 없다. 해외 경쟁국 인력들과 비슷한 근로여건을 법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정치권이 할 일이다. 냉혹한 기술 승부전에서 언제까지 낡고 경직된 근무제도로 기업과 인재의 발목을 잡고 있을 것인가.

야당은 이렇듯 시급한 입법 조항은 제쳐놓으면서도 지지층을 겨냥한 법안은 다시 밀어붙인다. 민주당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양곡관리법을 살려내 한밤중에 강행 처리했다. 국회 농해수위는 지난 21일 야당 단독으로 양곡법, 농안법, 농어업재해대책법 등을 의결했다. 국가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조항이 수두룩한 법안들이다.

양곡법은 쌀값이 기준가격 아래로 떨어지면 정부가 차액을 지급하도록 한 양곡가격안정제 도입이 핵심이다. 선제적 수급관리 차원에서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강제로 매입하도록 한 것이다. 농안법은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면 정부가 생산자에게 차액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농가에 실질적인 효과는 미지수인데 정부의 재정적 의무만 법제화했다.

농산품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면 과잉생산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었다. 농가에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 재정 책임보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과감한 혁신이다. 이에 적합한 정책 개발엔 관심이 없고 가장 쉬운 돈 퍼주기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안일하고 무책임한 입법이 아닐 수 없다. 이대로 법안이 통과되면 다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하다. 야당은 도돌이 입법을 멈추고 시급한 반도체법, R&D 유연근무에 여당과 머리를 맞대주기 바란다. 여당은 야당 탓만 말고 설득과 협상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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