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만들기로 한 ‘정부 혁신 기구’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그 조직의 공동 대표로 지명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53)와 공화당 대선 주자였던 인도계 억만장자 비벡 라마스와미(39)는 20일 신문 기고를 통해 “작은 정부 십자군”이 조직을 주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머스크가 구인 공고를 냈던 “무보수로 주당 80시간 일할 매우 높은 IQ 소유자들”이 그들이다. 12세기 전후로 십자가를 품고 이슬람 정벌에 나섰던 기독교 기사단을 뜻하는 십자군이란 표현이 눈에 띈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머스크의 결기와 기존의 엘리트 공무원을 적대시하는 트럼프의 생각이 묻어난다.
▷머스크와 라마스와미는 재택근무 중단과 규제 개혁을 제시했다. 코로나 때 정착한 재택근무를 폐지해 주 5일 출근을 불편하게 느끼는 공직자에게 퇴직을 유도하겠다고 했다. 연방 공무원 230만 명 가운데 110만 명이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23만 명은 100% 재택근무를 해도 된다고 한다. 머스크는 또 행정 규제를 철폐해 부처마다 규제 담당자 숫자를 크게 줄이고, 연방 정부 조직을 수도 워싱턴 밖으로 옮겨 공직자 퇴직을 유도하겠다고도 했다.
▷누구나 공감하지만, 손대지 못한 것이 정부 개혁이다. 하지만 두 억만장자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머스크는 400개가 넘는 정부 기구를 99개로 줄일 수 있고, 국민 세금을 매년 2조 달러(약 2800조 원) 절감할 수 있다고 말해 왔다. 라마스와미 역시 주(州) 경찰 및 교육자치청과 업무가 겹치는 연방수사국(FBI)과 교육부 폐지를 요구해 왔다. 이들의 주장은 “정부는 문제를 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라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취임사와 맥을 잇는 것이다.
▷미 언론 댓글에선 놀라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눈에 띈다. 두 사람이 각각 전기차 혁신과 신약 개발 투자로 어마어마한 성취를 이뤘지만, 이들의 성공 공식이 정부 개혁에 그대로 적용될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머스크는 업무에 관한 한 자신에게 가혹하고,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다고 그를 2년간 관찰한 전기작가는 기록했다. 게다가 이들 둘은 남들이 나만큼 우수하지 못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 천재형 창업가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 개혁을 “우리 시대의 맨해튼 프로젝트”로 부른다. 미국이 핵 개발에 성공하면서 전쟁과 국제 관계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처럼 자신도 그만한 변혁의 주도자로 기억되고 싶은 것이다. 트럼프나 머스크나 결국 상식을 뛰어넘되 지나치지 말아야 하는 모순적 과제가 주어졌다. 머스크는 “(개혁 저항 세력에) 망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망치를 가진 자에게는 무엇이든 못으로 보인다’는 미국 속담이 있다. 머스크의 성공 여부는 그가 얼마나 망치를 섬세하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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