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정 경제부 차장 |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한국 증시가 휘청거린 최근 누구를 만나든 대화는 ‘국장(국내 증시)’에 대한 한탄으로 귀결됐다. 오랜 지인은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고 다들 이야기해도 버텼는데 인제 진짜 손에서 놔버렸다”고 자조하기도 했다. 그 같은 발언이 나올 만도 하다. 코스피는 미 대선 이후 미국, 유럽, 아시아 주요 국가 증시 가운데 유독 저조한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미국 우선주의, 고관세에 대한 우려로 수출 중심의 한국 증시가 취약했다고 트럼프 당선인 탓을 하기도 민망하다.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관세’라고 외치는 트럼프가 두려운 존재이긴 하지만 미중 무역분쟁의 당사자 중국마저도 우리보다는 하락세가 덜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트럼프 재집권을 맞닥뜨렸는데 한국 증시만 골골댄다면 결국 문제는 우리에게 있는 것일 테다.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미국 증시에 엔비디아, 테슬라 등 새로운 대표기업이 쏟아지는 동안 우리 증시는 수십 년째 삼성만 바라보고 있다. 코스피의 하락세가 그나마 멈춘 것도 삼성의 10조 원대 자사주 매입 계획이 밝혀진 뒤였다. 시장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져, 각종 음모론만 팽배하다. 출처도 불분명한 정보에 롯데그룹 주가가 하락했다가 겨우 진정되는 모습은 우리 증시가 풍문에 얼마나 취약한지 다시 한번 보여줬다. 여기에 시장이 혼란한 틈을 타 일부 기업의 유상증자 ‘올빼미’ 공시까지 이어졌다.
연초부터 추진된 정부의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정책도 영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며 밸류업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밸류업 우수 종목을 담은 코리아 밸류업 지수까지 내놓았지만 공개되자마자 편입 종목들을 두고 논란을 일으킨 밸류업 지수는 하락장에 무력하기만 했다. 여기에 늑장 유상증자 공시로 문제를 일으킨 기업이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곳이라는 점은 투자자들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이에 ‘밸류업’이 아니라 ‘밸류다운’이라며 회의론까지 일고 있다. 하지만 이제 시작한 지 고작 1년인 밸류업을 두고 아직은 성패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수십 년간 자리해 온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단기간에 사라지기 힘든 것이고, 무엇보다 밸류업은 결국 장기전이기 때문이다.
일본도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하기 위한 카드로 ‘밸류업’을 선택해 10년 이상 끌고 와 겨우 효과를 거뒀다. 최근 본보 포럼에 참여한 호리모토 요시오 일본 금융청 국장은 밸류업을 두고 ‘10년의 종합 패키지’였다고 강조하며 기업, 금융기관, 가계 등 투자 체인에 연결된 모든 당사자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구조적 개혁이야말로 밸류업 성공의 ‘키’라고 귀띔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10년은 긴 호흡으로 뚝심 있게 밀어붙여야 시장 주체들이 달라지고, 비로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밸류업이 기업의 근본적 경쟁력을 바꿀 순 없어도 한국 증시의 떨어진 신뢰도는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지 않을까. 떠나가는 투자자를 잡으려면 집요하게 변화시키고 변화해야 한다.
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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