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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책과 미래] 책 없는 세상엔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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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역사가는 뒤늦게 말하지만 작가는 언제나 미리 말한다. 역사가가 일어난 사실만을 다룬다면 작가는 일어날 법한 사실을 다루기 때문이다. 작가는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 이어지는 길을 그려낸다. 문학을 읽지 않는 사회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화씨 451'(황금가지 펴냄)에서 미국의 SF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문학의 예언적 역할을 보여준다. 화씨 451은 섭씨 231도로 책이 불타기 시작하는 온도다. 1953년 발표된 이 작품은 책을 발견하면 모두 불사르는 사회를 다룬다. 권위주의 권력이 틀어쥔 이 사회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책이다. 가장 내밀한 미디어인 책은 지배 권력에 저항해 내면을 형성하고 자유를 촉발하는 까닭이다. "책이란 옆집에 숨겨놓은 장전된 권총이야. 태워야 해. 무기에서 탄환을 빼내야 한다고."

책 없는 세상을 점령한 건 벽을 둘러싼 텔레비전과 귀마개 라디오다. 그곳에선 하루 종일 단순하고 말초적인 정보들, 무의미하고 쾌락적인 광고들이 쏟아진다. 사람 간의 제대로 된 대화나 소통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넘치는 정보는 인간 주의력을 고갈시킨다. 사람들은 화면만을 친구 삼아 살아갈 뿐이다. 이는 가족과 식사하거나 친구와 만났을 때조차 휴대전화에 코 박고 살아가는 우리, 즉 디지털 미디어 사회의 인간을 미리 보여준다. 소설 속 한 소녀는 묻는다. "세상 참 이상하지 않아요?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그냥 모여 있기만 해도 사회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묻는다는 것은 항상 다르게 존재하는 법의 출발점이다. 질문은 삶의 속도를 늦추고, 생각의 구름을 일으키며, 아이디어의 번개를 유발한다. 그러나 책과 달리 화면은 질문을 빼앗는다. "어떤 사람이 불행해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면 대답이 하나만 나오는 질문만 던지라고. 물론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게 제일 낫지."

질문 없는 삶에선 다른 삶에 대한 추구도 증발한다.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자동차며 옷들이며 수영장 이야기밖에 안 해요. 뭐가 얼마나 멋있냐는 둥 그런 얘기뿐이죠. 남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말초적 쾌락에 중독된 이들은 심지어 대통령 선거에서 잘생긴 사람을 뽑았다고 자랑한다.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정보는 인간을 바보로 만든다. 의미를 담은 통찰, 지혜를 간직한 사유가 없을 때 영혼은 충만함을 상실한다. 책을 불사르고 화면에 매달리는 인간은 인생에 공허의 잿더미를 쌓는 것이나 다름없다. 70년 전에 브래드버리는 이런 삶의 위험을 경고했다. 미래를 알려면 문학을 읽어야 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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