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아도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미얀마를 비롯하여 전쟁과 학살이 끊이지 않는 참혹한 지구.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개신교라면 마땅히 ‘연합하고 또 연합해서’ 평화의 기도를 드려야 할 때다. 이날 설교를 맡은 한 목사는 “지금 내리는 비가 하나님의 눈물처럼 느껴진다”면서 울부짖었다. 처참한 지구의 현실을 생각하면 내리는 비가 하나님의 눈물처럼 느껴질 법하다. 그런데 웬걸, 하나님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괴이하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것 같고 동성혼이 허용될 것 같아서다. 직접적인 발단은 올해 7월18일 사실혼 관계인 동성 배우자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 이를 계기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혼이 허용될 것이라고 난리다.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동성혼에 대해서는 여러 찬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누구나 마땅히 의견을 자유롭게 밝힐 수 있다. 개신교 집단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대한민국을 새롭게 하기 위한 1000만 기독교인 1027 선언문’에서 밝힌 반대 이유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부정하는 성 오염과 생명 경시로 가정과 다음 세대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남자와 여자 이외 제3의 성 젠더를 인정”해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어지럽힐 것이다.
이들이 근거로 내세우는 건 ‘절대무오’(inerrancy)한 진리로 떠받드는 성경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했다. 생육은 오로지 생물학적으로 수컷(male)과 암컷(female)의 짝짓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남자를 먼저 창조하고 이후 여자를 남자의 보필로 만들었다. 성 역할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이 창조한 성에 대한 영원불변한 진리다.
개신교 근본주의 집단은 성경을 ‘상징’이 아닌 ‘사물’로 본다. 상징은 주어진 것 너머를 볼 수 있는 힘이다. 상징은 자기 이외의 다른 것을 지칭하는 힘, 다시 말해 ‘초월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물을 초월한 상징의 세계에 산다. 반면 다른 동물은 주어진 그대로의 사물에 둘러싸여 있다. 성경을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영원한 진리 그 자체로 맹신하는 것은 성경을 사물화하는 것이다. 사물화된 성경을 절대 진리로 믿으면 다른 세상을 상상조차 못하는 짐승으로 추락한다. 사물화된 진리에 도전하는 다른 존재를 사탄으로 규정하여 척결하려고 덤빈다.
종교사회학자들은 기원전 800년을 전후하여 지구상 곳곳의 문명에서 ‘굴대 시대’(Axial Age)가 열렸다고 지적한다. 굴대 시대를 여는 가장 큰 특징은 초월성, 즉 자율적인 초월적 상징체계의 등장이다. 주어진 ‘이 세상’보다 더 참된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고 가르치는 종교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자율적인 초월적 상징체계다. 역사를 통해 종교는 ‘좋은 삶’에 대한 초월적인 이상을 제시함으로써 사물화된 이 세상에 긴장을 불어넣었다. 개신교도 한때 ‘복된 소리’를 전파함으로써 사물화된 한국 사회를 일깨우는 초월적 종교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 세상의 사물에 취하면서 ‘악한 소리’나 퍼트리고 있다.
종교가 초월성을 잃으면 굴대 시대 이전으로 후퇴하여 ‘인민의 아편’이 된다.
최종렬|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
최종렬|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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