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미국 하원의장이 여성 공간 확보를 빌미로 미 하원에 첫 입성한 트랜스젠더 여성 의원의 의사당 내 여자 화장실 사용 금지 의사를 표명했다. 민사 소송에서 여성 성적 학대에 대한 책임이 인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미성년자 성매수 의혹을 받는 맷 게이츠(42) 법무장관 후보자를 묵인 중인 공화당이 성소수자 의원을 공격하며 여성 안전을 이유로 드는 것은 역설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하원 윤리위원회 공화당은 게이츠 전 하원의원에 대한 조사 보고서 공개도 거부했다.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은 20일(이하 현지시각) 성명을 내 "화장실, 탈의실, 라커룸 등 의사당과 하원 사무실 건물의 모든 단일 성별 시설은 해당 생물학적 성별의 개인을 위해 마련돼 있다"며 "여성은 여성 전용 공간을 이용할 자격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5일 대선과 함께 치러진 연방하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민주당 새라 맥브라이드(34)를 겨냥한 것이다. 존슨 의장은 성명에서 "각 의원 사무실엔 개인 화장실이 있고 의사당 전역 남녀 공용 화장실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맥브라이드는 2020년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돼 미국 첫 공개 트랜스젠더 선출직 공무원의 역사를 쓴 인물이기도 하다.
내년 1월 맥브라이드의 하원의원 취임을 앞두고 최근 강경 우파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그를 겨냥해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자 화장실 출입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낸시 메이스 공화당 하원의원은 18일 "하원의 여성 의원 및 직원의 안전과 존엄성"을 이유로 트랜스젠더 여성의 의사당과 하원 사무실 건물의 여자 화장실 사용을 금지하는 제안서까지 하원 행정위원회에 제출했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를 보면 메이스 의원은 취재진에 제안서 제출이 "100% 맥브라이드 때문"이라며 관련해 "생물학적 남성"인 "새라 맥브라이드는 발언권이 없다"고 말했다. 같은 날 마조리 테일러 그린 공화당 하원의원도 "그(맥브라이드)는 남자"라며 "좌파가 병든 트랜스 이념을 우리 목구멍에 밀어넣고 우리 공간과 여성 스포츠를 침범하는 데 질렸다"며 메이스 의원에 동조했다.
맥브라이드는 존슨 의장 성명 뒤 소셜미디어를 통해 "나는 화장실 관련 싸움을 하러 이곳(하원)에 온 게 아니다. 델라웨어 주민을 위해 싸우고 가족들이 직면한 (높은) 비용을 낮추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며 "동의하지 않더라도 존슨 의장이 제시한 규칙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맥브라이드는 이번 선거에서 정체성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은 채 유급 가족 및 의료 휴가, 육아 비용 절감, 최저임금 인상 등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민사 소송에서 성적 학대에 대한 책임이 인정된 트럼프 당선자를 묵인한 공화당이 특정 트랜스젠더 의원을 겨냥해 차별 공격을 펼치며 여성 안전을 이유로 든 것에 대해 위선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성소수자 공직 후보를 지원하는 정치 자금 모금 단체 LPAC은 20일 성명을 내 "메이스 의원과 존슨 의장의 화장실 금지령이 정말로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왜 이 사람들로부터 성적 학대 관련 법적 책임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남성이 대통령 당선자라는 것과 몇몇 고위직 지명자들이 성폭행 혐의를 받는 것에 대한 분노는 나오지 않는가?"라고 꼬집었다.
LPAC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맥브라이드를 지지하며 "트랜스 여성은 안전에 대한 위협이 아니다. 하지만 (성적) 폭행 전력이 있는 대통령 당선자와 그의 지명자들은 위협"이라며 "진짜 위험은 그들(공화당)이 권력을 준 지도자들로부터 나온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멜라니 스탠스버리 민주당 하원의원도 "1990년대까지 하원 본회의장 인근에 여자 화장실이 없었다"며 의회에서 여성들이 화장실 접근권을 얻기 위해 싸웠던 역사를 환기하고 성소수자의 화장실 사용 제한 조치에 여성 공간 확보를 빌미로 사용하는 것이 터무니 없음을 지적했다. 하원 본회의장 가까이 여자 화장실이 들어선 것은 2011년이다.
스탠스버리 의원은 불편함을 느낀다면 먼저 질문하면 될 일이라며 공화당 의원들의 행동 방식은 "선거 이후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전국의 수백만 성소수자들(LGBTQ+)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킴 제프리스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공화당의 행동 "괴롭힘"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당선자가 차기 법무장관으로 지명한 공화당의 게이츠 전 하원의원이 미성년자 성매수 의혹을 받고 있어 장관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이 연일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하원 윤리위원회는 게이츠의 미성년자 성매수, 불법 약물 사용 등에 관해 조사 중이었지만 게이츠가 지난주 법무장관에 지명되자 곧바로 하원에 사임서를 내며 조사가 중단됐다. 게이츠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인준을 맡은 상원의원들이 게이츠에 대한 조사 보고서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20일 <AP> 통신에 따르면 하원 윤리위 회의에서 공화당이 보고서 공개를 반대하며 공개가 무산됐다. 윤리위는 공화당 5명, 민주당 5명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날 투표는 당별로 분열돼 동률을 이뤘다고 윤리위 소속 민주당 수잔 와일드 하원의원이 전했다. 윤리위는 다음달 5일 이 문제에 대해 다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언론에 윤리위 조사 보고서 일부가 유출되며 파장은 이미 커지고 있다. 20일 미 ABC 방송은 하원 윤리위가 조사 과정에서 게이츠가 2017~2019년 27차례에 걸쳐 여성 2명에게 1만 달러(약 1400만 원) 이상을 보낸 기록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윤리위가 게이츠에게 돈을 받은 여성들을 증인으로 소환해 지급 경위를 물었을 때 이들이 받은 돈 중 일부는 성관계를 위한 것이었다고 증언했다고 조사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20일 <뉴욕타임스>도 하원 윤리위를 통해 입수한 게이츠의 성매매 의혹 관련 연방 수사 자료에서 게이츠가 다수의 여성에게 돈을 보낸 내역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게이츠에 대한 수사를 기소 없이 끝냈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20일 상원 사법위원회 민주당 의원들이 게이츠 인준을 앞두고 미 연방수사국(BFI) 크리스토퍼 레이 국장에 미성년자 성매수 관련 수사 자료를 상원에 제공할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게이츠는 자신을 수사한 FBI 폐지를 거론한 바 있다.
▲19일(현지시간) 미국 첫 트랜스젠더 연방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새라 맥브라이드(34)가 워싱턴에 위치한 연방의회에서 하원 민주당 회의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AP=연합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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