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철 앞둔 농민들 아우성
비금도 주민 생계 의존하는데
질병 확산에 지역경제 마비
20일 찾은 전남 신안군 비금도 한 시금치 밭. 수확철이지만 씨앗이 발아하지 못해 흰 토양이 드러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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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찾은 전남 신안군 비금도. 비금도 가산항을 조금 벗어나자, 도로 좌우로 황량한 논밭들이 갈색 속살을 드러냈다. 예년 이맘때 같으면 온통 싱그러운 초록빛 시금치밭으로 가득해야 했을 농지다.
비금도 주민 전체의 생계를 책임지는 '겨울 시금치'들이 말라 죽고 있다. 유례없는 늦가을 폭염과 잦은 호우 등이 영향을 줬다. 기상청 기상자료개발포털에 따르면 올해 전남지역 7~9월 폭염(33도 이상) 일수는 32일로 지난 10년간 가장 많았다. 9~11월 강수(일일 강수량 0.1mm 이상) 일수도 24.1일이었다. 특히 10월엔 사흘에 하루꼴로 비가 쏟아졌다.
6년째 4만2,900㎡ 밭에서 시금치 농사를 짓는 권희석(57)씨는 올해에만 3번째 땅을 갈아엎었다. 종자를 심어도 뿌리가 검게 타죽거나, 아예 싹이 발아하지 못한 상태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시금치를 살려보겠다며 애써봤지만, 애꿎은 자재비만 수천만 원을 들였고 결국 농사를 완전히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권씨는 "지난해 밭을 다 갈아엎었는데 올해까지 이 지경이니 하늘이 무너지는 심경"이라며 "매년 생산비도 못 건지는 농사를 지어야 한다면 누가 농촌을 지키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권희석씨가 자신의 밭에서 무름병에 말라 죽은 겨울 시금치 섬초를 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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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금도 주민들에게 겨울 시금치의 작황은 생존권과 다름없다. 1980년대부터 섬 주민들은 생계의 대부분을 이 비금도 겨울 시금치인 '섬초' 재배에 의존하고 있다. 1,170여 농가가 해마다 4,200여 톤을 출하해 연간 130억 원가량의 소득을 올린다. 이르면 9월에 파종하고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수확하는데 2년 연속 농사를 망쳤다. 지난해에는 9월쯤 무름병이 확산하면서 조기 파종을 한 300여 농가가 피해를 봤는데, 올해는 섬 주민 전체가 피해를 봤다. 올해 9월 초부터 11월 중순까지 이어진 잦은 비에 이상 고온이 겹쳐 올해는 아예 시금치 농사를 포기하는 농민들이 속출했다. 김태균 신안 비금농협 상무는 "농가마다 평균적으로 약 30%가량이 피해를 보았고, 심한 곳은 폐사율이 50~70%에 달한 곳도 있다"며 "사실상 비금도 지역경제 전체가 마비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겨울 시금치는 올해 처음으로 농림축산식품부의 재해보험 대상에 포함됐지만, 보장 금액은 ㎡당 1,410원에 불과해 농가의 피해를 회복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는 정부 재난 지원 대상에 포함됐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권씨는 "일부 농가에서 피해가 발생했다면, 개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볼 수 있겠지만, 섬 지역 모든 농가가 무름병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지원과 관심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신안=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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