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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목)

[필동정담] 래커 낙서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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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얼굴 없는 화가'로 유명한 영국인 뱅크시는 담벼락 낙서(그라피티)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는 사회적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담아 한밤중에 수준 높은 그림을 낙서하듯 재빨리 그려놓고 사라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뱅크시가 런던 시내 담벼락에 그린 '풍선과 소녀'는 회화로 복원돼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약 17억원에 팔렸다. 낙찰 직후 그가 액자 안에 몰래 설치한 파쇄기가 그림을 잘라버려 화제가 됐다.

러시아와 전쟁이 한창이던 2022년 11월, 우크라이나 도시의 파괴된 건물 벽면에 뱅크시 작품이 등장했다. '푸틴 업어치기'로 유도를 하는 작은 소년(우크라이나)이 몇 배나 큰 푸틴을 상대로 통쾌한 한판승을 거두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느 나라든 공공건물에 맘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뱅크시도 경찰을 피해다닌다.

지난해 12월, 두 차례에 걸쳐 경복궁 벽면에 래커 스프레이로 낙서 행각을 벌인 자들이 검거됐다. 불법 영상 사이트를 홍보하는 등 그야말로 낙서를 휘갈겨놓았다. 첨단 기법으로 완전히 지우는 데 4개월간 1억3000만원이 들었다. 비용은 낙서꾼들에게 청구됐다.

최근 남녀공학 전환을 놓고 시끄러운 동덕여대에서 학생들이 항의 문구를 래커로 교내 곳곳에 뿌려놨다. 이젠 낙서를 지우는 비용 문제로 학교와 학생회 고민이 크다고 한다. 학교 측은 최대 54억원이 든다고 하지만 전문 업체들은 그 돈으로는 턱도 없다고 한다. 세척 범위가 넓고 특수 연료를 써야 하는 데다 일부 건물 외벽과 바닥은 뜯어내야 한다. 김병민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20일 동덕여대 낙서 피해 복구를 위한 예산 지원은 없다고 밝혔다.

교수 성추행 의혹으로 학생들이 집단 항의 중인 서울여대에도 스프레이 낙서가 가득하다. 학교 측은 시설물 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당사자에게 청구할 계획이다.

과거처럼 큰 종이로 대자보를 만들어 붙이면 없애기도 쉬우련만 요즘엔 래커를 쓰니 원상복구가 어렵다. 복원하는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면 억울하다고 래커를 마구 뿌려댈 일은 아니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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