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1 (목)

“부자도, 인재도, 돈도 떠난다”...한국 미래세대가 어떻게 여길까 [이은아 칼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韓 떠나는 부자·인재 늘고
美증시 투자자금도 급증
부·권력 지각변동 신호탄인
돈·인재 유출 막을 대책 시급


매일경제

[사진=챗GPT이미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세기 유럽의 광부들은 어둡고 위험한 탄광 안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데려갔다. 메탄가스나 일산화탄소 같은 유해가스에 민감한 카나리아가 이상징후를 보이면 대피하기 위해서다. 인간이 알아채지 못하는 위험징후를 감지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카나리아가 한 것이다. 기술 발달로 카나리아가 탄광에 들어갈 일은 없어졌지만,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는 카나리아들은 있다. 바로 한국을 떠나는 자산가들이다.

높은 세금을 피해 싱가포르나 아랍에미리트(UAE)로 이민을 떠났다는 부자들 소식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데, 이들의 한국 탈출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영국 투자이민 컨설팅업체인 헨리앤드파트너스의 ‘2024년 개인자산 이주 보고서’는 투자 가능한 유동자산 100만달러(13억9000만원) 이상을 보유한 한국 자산가 1200명이 올해 순유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2022년 700명, 2023년 800명이었던 순유출 규모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중국(1만5200명), 영국(9500명), 인도(4300명)에 이은 세계 4위로, 전쟁 중인 러시아(1000명) 보다 많다.

반면 UAE는 백만장자 순유입 1위(6700명)를 기록했다. 개인 소득세가 없고 투자자와 인재들을 대상으로 황금비자 프로그램을 운영한 덕분에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러시아를 떠난 부자들과 유럽 백만장자들이 몰리고 있다. 상속세와 증여세가 없는 싱가포르에는 3500명이 순유입됐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 부자들의 이주에 힘입어 일본도 새롭게 순유입국가에 이름을 올렸다.

국적을 버리고 떠난 것은 아니지만 일반 투자자들은 주식 이민을 떠나는 중이다. 한국예탁결제원증권포털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 금액은 15일 현재 995억7200만달러(약 138조6600억원)로 올해 들어 315억4900만달러(46%)나 늘었다. 일본 주식 보관금액도 같은 기간 37억3800만달러에서 40억1100만달러로 7.2% 증가했다. 투자자금이 해외 증시를 향하면서 한국 증시는 맥을 못추고 있다. 올해 들어 코스피는 6%, 코스닥은 20% 하락했는데 같은 기간 미국 나스닥 지수(26%), 일본 닛케이지수(14%) 상승률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성적표다.

떠나는 것은 돈뿐이 아니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의 ‘AI 인덱스 2024’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인도와 이스라엘에 이어 AI 인재 유출이 세 번째로 많은 국가다. 첨단기술 인재들의 이탈도 심각한 셈이다.

돈과 인재가 한국을 떠나는 저마다의 사정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돈을 안전하게 지키고, 자녀교육에 유리하며, 보다 많은 편익을 누릴 수 있는 곳에 머물고 싶은 것은 애국심에 우선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상속세는 높고, 주식시장 저평가가 고착화한 곳은 돈을 지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창의성을 키우기 어렵고 무한경쟁으로 내달리는 교육제도와 정쟁만 일삼는 어수선한 정치 환경 역시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이 아니다.

부자 몇 사람, 고액 연봉 인재 몇 사람 떠나는 것이 대수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부자들의 이주를 ‘발로 하는 투표’라고 부르는 것도 부와 권력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선행지표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국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은 부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다음세대를 위해 부를 창출하고 기업가들이 찾아오는 나라를 만들면 그 과실은 부자가 아닌 보통사람에게도 돌아온다. 이미 탄광 속 카나리아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떠나는 곳으로 남을지, 돌아오는 곳으로 변할지 선택해야 한다.

매일경제

이은아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