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산업에서 4년은 평생과 같다는 말이 있다. 이는 AI 기술 발전의 가속성이 급격히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챗GPT-4가 출시된 게 지난해 3월이다. 당시 챗GPT는 국제 수학올림피아드 문제를 13%밖에 풀지 못했지만, 올해 9월에 출시한 챗GPT-o1은 문제 해결능력이 83%에 달한다. 수능 국어 영역에서도 지난해까지 4등급 수준에 머물렀지만 2025학년도 수능에서는 원점수 97점으로 1등급권에 안착했다.
1년 반 만에 엄청난 진화를 이룩한 셈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이 오픈AI의 챗GPT와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한 만큼 내년에 출시될 생성형 AI의 성능은 가늠하기도 힘들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한국의 위치를 보자면 세계 6위의 AI 역량을 갖고도, 주요기업과의 생성형AI 경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0년간 300조원을 투입한 미국과 비교해 4조원 수준의 예산을 투입한 한국의 AI 산업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에서 생성형AI를 개발해왔던 네이버, 카카오 등의 기업들은 독자적으로 오픈AI 등과 경쟁하는 방안이 아닌 유럽 및 아시아 주요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특화된 AI 서비스 제공’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이 같은 상황은 AI 기술개발의 기반인 하드웨어 구매에서도 드러난다. 정보통신(IT)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올해 GPU 구입에 25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인데, 이를 토대로 추산하면 엔비디아의 최신 GPU 'H100'을 최대 4000장(한장 당 6000만원 기준) 구입할 수 있다. 카카오는 GPU 구매 비용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네이버에 비해 그 액수는 크게 낮은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GPU 구매 계획을 살펴보면, 오픈AI·구글과 경쟁하고 있는 메타는 올해에만 H100을 35만개 구입할 예정이다. 이는 최저가로 구매해도 90억 달러(약 12조원)에 달하는 돈이다. 이미 15만개의 H100을 확보한 상태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15만개의 H100을 구입했으며 메타와 함께 올해 최대 엔비디아 H100의 구매자로 전망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하는 게 하드웨어 구매에서도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원인은 AI 관련법 제정 및 정부예산에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꾸준히 추진됐던 ‘AI 기본법’은 올해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AI 기술개발에 극도의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입장이 야당을 통해 국회에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발의된 법안 대부분도 발전보다는 규제를 골자로 하면서, 기업들의 AI 투자를 더욱 축소시키고 있다. 관련법도 없는 상황에서 과한 투자를 했다가 추후 위법 기업이 될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같은 분위기는 한국의 슈퍼컴퓨터 경쟁력 저하로도 이어졌다. 글로벌 슈퍼컴퓨터 순위 톱500(TOP500)에서 네이버 '세종'이 40위를 기록했다. 직전 순위보다 15계단 하락한 것이다.
네이버가 슈퍼컴 성능 향상에 투자하지 않으면서 글로벌 순위가 대폭 하락한 것으로 풀이된다. 네이버 세종의 성능이 지난 1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근거다. AI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슈퍼컴퓨터 성능 확보가 핵심 요소다.
다른 국내 기업들의 슈퍼컴퓨터 경쟁력을 봐도 △삼성전자 SSC-21은 32→48위 △기상청 '구루'는 58→73위 △기상청 '마루'는 59→74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국가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은 75→92위로 후퇴했다.
22대 국회가 출범한 지 6개월이 지났고 이제 3년 6개월이 남았다. AI에게 4년은 평생과 같다는 말이 단순한 비유가 아님을 국회가 인지했으면 한다. AI법 제정만 기다리는 국내 기업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각종 AI 경쟁력 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기업이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하루 빨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주경제=김성현 기자 minus1@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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