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1 (목)

"10분 만에 식사, 화장실 빠듯"…마을버스 기사에 '외국인' 동료 물으니[르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머니투데이

20일 오전 10시50분 서울 관악구 신대방역 4번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동작 05번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 앞에서 줄을 서고 있다./사진=민수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꽉 잡으세요, 버스 출발합니다"

서울 관악구 신대방역과 영등포구 대방역을 오가는 '동작 05번' 마을버스. 20일 오전 9시44분, 동작 05번 버스 운전석에 앉아있던 버스 기사 장철현(65)씨가 시동을 걸었다.

이 노선 버스에는 통학하는 학생과 보라매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가 많이 탄다. 이날도 보라매 병원 앞에선 추운 날씨에 패딩과 모자로 중무장한 노인들이 버스에서 여럿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면 장씨는 더 신경을 곤두세운다. 안전사고 우려 때문이다.

그는 승객이 타고내리는 모습을 관찰하는 동시에 앞·뒤 버스와 간격까지 확인해야 했다. 최근 들어 장씨가 속한 '보라매운수' 마을버스 기사 수가 줄어 기사 1명이 메워야 하는 업무량이 더 늘었다. 운행 속도가 늦어지거나 여유를 부렸다가는 운행 간격이 늘어진다.

머니투데이

동작 05번 버스를 운행 중인 보라매운수 소속 장철현 기사의 모습./사진=민수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회사에 마을버스가 15대 있다. 그런데 기사도 없고 승객도 줄어서 지금은 7~8대 정도만 돌린다"며 "20년 전에만 해도 기사 수가 50명 정도 됐는데 지금은 20명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이어 "(운행하는 차가 줄면) 기사들은 한 차량에 승객을 더 많이 태워야 하고 승객들도 차가 왜 이렇게 늦게 오느냐고 항의한다"고 덧붙였다.

기사 수 부족은 휴식 시간 부족으로 이어진다. 장씨는 "일요일에 쉬기도 하지만 만약 일요일에 못 쉬면 월요일, 화요일에 돌아가며 쉰다. 볼 일이 생기거나 특별한 일이 있으면 더 쉬어야 하는데 못 쉰다. 임금이야 조금 더 받지만 여간 힘든 게 아니다"고 말했다.

다양한 이유 중에서도 급여가 더 높은 시내버스로 이직하는 기사들이 많은 게 주된 부분이다. 모처럼 젊은 기사가 입사해도 머지않아 떠난다. 회사를 지키는 이들은 60~70대 노년층뿐이다.

장씨는 마을버스 기사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을버스는 골목길, 오르막길을 운전하는 등 일 강도는 높은데 그에 맞는 처우를 받는 것 같진 않다"며 "밥 먹는 시간도 없다. 차 안에서 10~20분 동안 해결해야 한다"고 전했다.

30분 운행하면 5분 정도 쉴 수 있는데 화장실 한 번 다녀오기도 빠듯하다. 차량 정비까지 하면 오히려 시간이 부족하다.

머니투데이

신대방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동작 05번 버스를 탈 수 있는 마을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정류장 한편에는 '마을버스 기사님 대기실'이라고 쓰여진 곳이 있었지만 추운 날씨에 바람을 피할만한 곳은 아닌 듯 보였다./사진=민수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성동 02번과 성동 14번 버스가 소속된 '응봉운수' 사정도 다를 게 없었다.

왕십리역 근처 응봉운수 사무실에서 만난 70대 송인선 대표는 마을버스 기사가 최소 20명은 돼야 하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며 쓴 입맛을 다셨다. 괜찮다고 생각되는 직원은 여지없이 시내버스로 떠났다.

송 대표는 "코로나 이후부터 기사가 줄었다. 계속 직원들이 모자라다. 현재는 13명 정도 된다"며 "이제 내국인 지원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시내버스도 사정은 비슷한지 대형 면허만 있으면 무조건 뽑더라"고 말했다.

시내버스 이직은 고사하고 이력서를 내는 젊은 층 자체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젊은 층들이 운전업을 기피하는 성향이 높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배달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젊은 마을버스 기사들이 배달 플랫폼으로 대거 빠져나갔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대안으로 지난달 말 외국인 마을버스 기사 도입을 위해 국무조정실에 비전문취업(E-9) 비자 발급 대상으로 운수업을 포함해달라고 공식 건의했다. 당초 제조업, 농업, 축산업 등 비전문 직종 취업을 준비하는 외국인을 위해 발급되던 E-9 비자에 운수업을 포함하고 취업 활동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게 골자다.

국무조정실은 해당 건의안을 고용노동부에 전달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머니투데이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근처에 위치한 응봉운수 사무실 입구./사진=민수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장철현씨는 "인간적인 면으로 (외국인 기사들과) 접하면 될 일"이라며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어차피 회사는 사람이 필요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 사이 이해가 맞아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약 10년 전부터 중국인을 채용해온 송 대표는 외국인 마을버스 기사에 호의적이었다. 송 대표는 "지금 외국인 기사가 5명 있다"며 "어느 면에서는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근무한다. 배차받아놓고 안 나온다거나 사고를 내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응봉운수에서 18년간 일했다는 조선족 출신 A씨는 "처음엔 한국말을 못 했지만, 학교도 다니고 동료들한테도 많이 배웠다"면서도 "어떤 회사에서는 교포라고 거절하더라. 교포라고 배척하지 않고 채용해줬으면 좋겠다. 그들도 착실하게 일을 잘하는데 왜 채용하지 않냐"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서울시는 외국인 마을버스 운전기사 도입과 동시에 마을버스 기사 처우 개선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사 부족의 근본 원인이 만족스럽지 않은 처우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운수 종사자 처우 개선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고 있다. 외국인 대체는 마을버스 업계 수요조사를 거쳐 최소한의 수준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운수 종사자 인력난이 일정부분 해소되면 운수종사자들의 휴게시간 보장 등 근무 여건이 나아질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국인 채용 확대에 따른 안전 우려 해소와 서비스 수준 향상을 위해 서울시 교통연수원 양성 교육 인원 확대, 관련 매뉴얼 제정 및 교육 등을 계획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머니투데이

동작 05번 버스 운전기사 석에 설치된 시간표. 장철현씨는 주황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버스 기사들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대라고 설명했다. 기사들은 버스 기사들은 10~20분 시간을 내어 버스 안에서 간단히 밥을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사진=민수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민수정 기자 crystal@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