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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수)

이름도 낯선 ‘육양국’…세계로 뻗은 바다 밑 케이블의 ‘통신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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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박홍태 데이콤크로싱 CLS운영팀장이 태안 육양국 통제실 내 통합 관제 시스템을 보며 시설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LG유플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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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리 사구로 유명한 충남 태안군 원북면에는 알고보면 국가중요시설 ‘나’급인 국제 통신 관문이 있다. 지난 15일 오전 바닷물이 물러난 갯벌을 끼고 한적한 시골길로 들어서자 촘촘한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상자형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 6개국을 잇는 총길이 1만9800㎞의 EAC(East Asia Crossing) 해저 케이블 ‘육양국(陸揚局)’이다. ‘육지로 올린다’는 이름대로 육양국은 바다 밑 광케이블을 땅 위 통신망과 연결하는 통신국사를 의미한다.

LG유플러스 자회사 데이콤크로싱이 운영하는 EAC 케이블은 2002년 개통됐는데, 일본과 중국·홍콩 방면을 고리처럼 잇고 있다. 전 세계 500개가 넘는 해저 케이블 중 한국으로 연결된 것은 11개로, 그중 EAC는 유일하게 서해안으로 들어온다. 박홍태 데이콤크로싱 CLS운영팀장은 “국제 통신이라고 하면 위성을 떠올리기 쉽지만, 국제 트래픽 99%는 해저 케이블을 통해 서비스된다”며 “위성과 달리 광케이블은 신호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전송 지연 시간이 짧은 데다 용량도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저 케이블로 오가는 데이터는 유튜브·넷플릭스 같은 일반 인터넷뿐만 아니라 금융 거래, 군사 통신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다. 제일 굵은 더블아머드 케이블이라고 해봤자 지름이 60㎜ 정도다. 그 안에는 머리카락처럼 가는 광섬유 8가닥이 송수신을 하는데 데이터 용량 합계가 2만4220Gbps(초당 기가비트)에 달한다. 4K 초고화질 동영상 12만여편을 동시에 주고받을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수십, 수백m 깊은 바닷속에서 기다란 선만으로 천문학적 단위의 데이터가 오가는 것도 신기한데, 케이블을 구축하는 데 5000억~1조원이 든다고 하니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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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콤크로싱 노숙원 대표(오른쪽)와 박홍태 팀장이 지난 15일 태안 육양국 내 국제 케이블망 지도에서 EAC 해저 케이블을 가리키며 대화하고 있다. LG유플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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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연결된 나머지 국제 해저 케이블은 부산·거제로 들어오는데 그중 7개를 KT가 운영하고 있다. 다만 데이콤크로싱은 주주사인 호주 통신사 텔스트라가 소유한 부산의 C2C·RNAL 케이블을 연동해 비상 상황에도 상호보완적 운영이 가능하다. 한국~일본 루트에 장애가 생겨도 한국~홍콩~일본으로 둘러올 필요 없이 텔스트라 케이블을 바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이다.

통신망에서 이러한 이원화, 이중화는 필수적이다. LG유플러스는 올해 파리올림픽 방송 중계를 단독으로 맡았는데, 해저 케이블에 장애가 발생했음에도 사고 없이 중계를 마칠 수 있었다. 해저 케이블을 4회선이나 준비해 여러 길을 만들어놓은 덕분이었다.

육양국은 공항, 발전소와 같은 국가 인프라이기 때문에 보안도 중요하다. 바닷가와 가까워 온·습도 관리도 까다롭다. 지난 7월 LG유플러스는 지능형 폐쇄회로(CC)TV, 실시간 원격 관제, 진동 센서, 통합관제 모니터링 등 차세대 관제 솔루션을 도입해 수작업으로 하던 업무들을 디지털로 전환했다.

통제실 벽을 가득 채운 화면에 회로도처럼 그려진 시설 현황, CCTV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맞은편 모니터에는 바다 밑 케이블의 현 상태가 신호등처럼 빛을 냈다. 케이블에 이상이 생기면 알람이 뜨고, 싱가포르에 있는 관제센터를 통해 조치를 취하게 된다. 지진 등 천재지변을 제외하면, 닻으로 그물을 고정시켜 물고기를 잡는 안강망 어선에 의한 장애가 1년에 한두 차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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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C 해저케이블망. LG유플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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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데이터 안보 차원에서 해저 케이블의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와 맞물려 물리적 공격, 도청 등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아산정책연구원이 펴낸 이슈브리프에선 “분단으로 실질적 섬이 되어버린 한국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해저 케이블망이 국제 통신에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며 “금융 부문에서 해저 케이블을 통해 매일 약 10조달러의 금융 송금이 이뤄지며, 클라우드 서비스 및 5G 네트워크 확산으로 광대역폭 수요는 2년마다 2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 붐은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데이콤크로싱은 AI 트래픽 증가에 대비해 기업 전용 국제회선 상품을 기존 1·10·100Gbps에 대용량 400Gbps를 추가할 계획이다. 노숙원 데이콤크로싱 대표는 “안정적인 국제회선 서비스를 통해 한국이 아시아 데이터 허브 위치를 강화하는 데 역할을 해나가겠다”며 “서해안에 신규 해저 케이블이 들어온다면 태안 육양국이 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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