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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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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손잡되 고부가가치 기술 지키기 위한 정부 역할 필수"…제조업 전문가가 본 '트럼프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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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연구본부장
미국 '제조업 르네상스' 시도 한국에도 긍정적
미중 갈등 속 한국이 '중국 대체재' 역할 해내야
한국일보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연구본부장이 14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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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르네상스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시도하고 있습니다. 제조업 강국인 한국도 예외여선 안 됩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연구본부장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에서 30년 동안 제조업을 연구해 온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연구본부장은 미국 내 제조업 르네상스를 내걸고 돌아온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두고 한국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같이 제시했다. 질 좋은 일자리를 위해 생산기지를 되찾으려는 미국과 협력하되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연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14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선으로 유불리를 따질 때 업종보다 더 세분화된 '품목'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전기차 수출은 불리하지만 높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차는 친환경 정책 기조 약화에 따라 유리한 측면이 있다. 반도체도 중국에 대한 제재 강도가 높아지면서 레거시(구형) 반도체는 불리하나 인공지능(AI) 등 첨단 반도체는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는 또 "대(對)미국 수출뿐만 아니라 해당 업종의 글로벌 시장 내 판세를 기준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에 중간재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긴밀한 분업 구조가 흔들리면서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 봤다. 중국은 미국 무역 적자의 25~30%를 차지할 정도로 미국의 최대 수입국이었으나 통상 압력에 따라 대체 시장을 찾아 나서면서다. 정 본부장은 "미국의 대중국 봉쇄 조치로 중국 국적 기업들이 동남아시아 같은 아세안 시장에 나가면서 중국 기업과 우리 기업 간 경쟁도 한창"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미 전자부품 등 중국의 가성비 제품이 세계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며 "중국 시장 안에서 무한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업체들이 해외에 나올 텐데 우리 중소기업들은 경쟁력이 확실하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중국에서 이탈한 기업들이 수준 높은 제조업 기반을 가진 한국과 협업할 수 있다는 점은 기회 요인이다. 그는 "한국은 제조업 전체 공급망에서 빠지는 부분이 없는 국가"라며 "제도의 신뢰성, 안정성, 비용 등 산업 생태계 전체에서 한국과 협업해 윈윈 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IRA, 美 제조업 및 청정에너지 육성에 높은 비중

한국일보

자료=산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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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본부장은 미국 정부가 시도하는 제조업 르네상스가 새로운 산업·일자리를 위한 복원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1980년대 전통 제조업 강국이었던 미국이 고부가가치 영역에 집중하면서 2000년대 들어 제조업의 뿌리가 약해진 반면 국제 분업 구조 아래에서 생산기지 역할을 넘겨받은 중국, 한국 등 국가를 포함해 전체 무역 적자가 1조 달러를 넘고 있다. 정 본부장은 "미국의 강력한 제조 기반이 아시아로 유출되면서 러스트벨트 지역의 중산층 붕괴로 이어졌다는 인식"이라며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2년간 투자 성과만 봐도 대부분 제조업 분야 투자 프로젝트에 집중됐다"고 밝혔다.

정 본부장은 생산 시설을 미국 내로 불러들이는 온쇼어링 정책에 따른 각종 혜택은 챙기되 인력이나 기술 유출은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이 언급한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에 있어서도 핵심 인력이나 차세대 기술, 제품 개발 역량 등이 넘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 그는 "줄건 주되 얻을 건 얻는 전략이 중요하다"며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 부품 생산에 필요한 기술은 알려주되 수익성을 지킬 우리의 핵심 부가가치 기술은 지켜야 한다"며 "기업들이 개별 협상하긴 어려운 만큼 국제 연구·개발(R&D) 협력에 있어 정부가 국내 산업을 지키기 위한 방향을 조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한국이 취할 전략 중 한 예로 절충 교역을 꺼냈다. 이는 방위 산업 분야에서 한 나라가 해외에서 무기·장비를 구매할 때 수입한 대가로 상대국으로부터 군사 지식·기술을 받거나 그만큼 자국 물자를 사도록 하는 거래 방식이다. 그는 "미중 갈등을 보면 결국 자본에도 국적이 있다"며 "자본과 국가가 디커플링(분리)되지 않도록 국가가 주도적으로 개별 기업의 이해를 위해 뛰면서 한국 산업 정책을 위해 미국 정부와 진지한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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