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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광화문에서/김호경]정부의 PF 제도 개선안이 말하지 않은 ‘진짜’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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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호경 산업2부 기자


경기 수원 광교호수공원 근처 쇼핑센터 ‘앨리웨이 광교’는 2019년 준공 직후부터 지역 대표 명소로 떠올랐다. 시행사인 네오밸류가 상가를 직접 운영하면서 젊은 층이 선호하는 ‘힙한’ 식당과 카페 등 임차인을 유치하고, 문화 공연과 축제 같은 즐길거리를 기획하며 사람들을 끌어모은 덕분이었다.

정부는 이달 14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 역량 있는 한국형 디벨로퍼를 육성하겠다며 앨리웨이 광교를 대표 사례로 꼽았다. 분양으로 수익을 내는 일반적인 방법 대신 선진국형 개발 사업 구조를 정착시키겠다는 것이다.

국내에는 드물지만 미국과 일본에선 대형 부동산 개발 회사들이 건물을 지은 뒤 매각하지 않고 직접 운영하는 방식이 일찍 자리 잡았다. 이런 개발 사업에는 보험사, 펀드, 일반 개인까지 지분 투자자로 참여한다. 자산 가치 상승에 더해 꾸준히 임대 수익이 나오기 때문이다. 해외 부동산 PF 사업에서 대출 비중이 낮은 건 이런 투자금을 끌어온 덕분이다.

선진국형 개발 사업이 뿌리내리지 못한 데는 국내 부동산 시장의 특성 탓이 크다. 국내에선 착공 시점에 분양하는 ‘선분양’이 일반적이다. 첫 삽을 뜨기도 전에 수분양자로부터 자금을 끌어와 공사비를 충당하는 구조다. 시행사는 투자를 유치해 개발 이익을 지분대로 나누기보다는 PF 대출과 분양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곤 완공 후 빚을 갚고 손을 털면서 단기 수익을 극대화했다.

우선 일감을 확보하려는 시공사가 쉽게 보증을 서줬기에 가능했다. 금융기관은 이 보증만 믿고 자본력이 취약한 시행사들에 ‘묻지 마 대출’을 내줬다. PF 위기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유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황순주 연구위원은 “주요 선진국 중 어떤 나라에서도 이러한 구조를 찾아볼 수 없다”며 “한국 부동산 PF는 갈라파고스 구조”라고 지적했다.

시행사도 할 말은 있다. 선분양을 하지 않고 사업 완료 후 직접 운영하려고 해도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기 어렵다. 국내 주택 시장은 전세가 일반적이다. 선진국 개발 회사들은 월세를 받아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드는데, 전세 보증금은 언젠가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또 다른 의미의 빚이나 마찬가지다.

월세를 받으려 해도 임대료 규제가 걸림돌이다. 국내 기업형 임대사업자는 계약갱신 청구권, 임대료 상승률 5% 제한에 더해 초기 임대료 제한, 임대보증 가입 의무까지 지켜야 한다. 웬만해선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토로가 나온다.

정부는 국내 PF 구조 선진화를 위해 토지주, 시행사 등에 세제 혜택과 용적률 규제 등 ‘당근’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선진국형 개발 사업 방식이 안착하려면 기본적으로 기업형 임대사업자가 월세로 수익을 낼 수 있는 토양이 갖춰져야 한다. 시행사들이 ‘분양 한탕주의’에만 몰두한다면 PF 위기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 PF 위기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다.

여야는 9월 PF 정보 통합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의 ‘부동산개발사업 관리법’ 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모처럼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과도한 임대료 규제를 현실화하는 데도 국회가 서로 머리를 맞대지 못할 이유가 없다.

김호경 산업2부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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