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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래: 송나라 사람인 묵적(墨翟·묵자)이 제(齊)나라에 있을 때 초(楚)나라가 공수반(公輸般)이 개발한 운제(雲梯·높은 사다리)를 사용해 송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묵적은 급히 초나라로 가 공수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송나라는 좁은 땅에 인구가 많은데, 땅이 넓은 초나라가 굳이 침략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초왕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초왕을 만난 묵적은 “비단옷을 입은 사람이 옆집의 누더기 옷을 훔치려 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초왕은 “아마도 도벽(盜癖)이 있는 사람이겠지”라고 답했습니다. 다시 묵적은 “그럼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는 게 이와 같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초왕은 “공수반의 재주를 시험해 보려고 그랬다”며 군색한 변명을 했습니다. 이에 묵적은 초왕 앞에서 공수반과의 모의 전쟁을 제안했습니다. 묵적은 허리띠를 풀어 성(城)을 만들고 작은 나뭇조각을 방패로 삼았습니다. 공수반은 9회에 걸쳐 운제 장치 등으로 공격했으나 묵적이 모두 막아냈습니다. 결국 공수반의 공격 무기는 바닥났으나 묵자의 수비에는 아직 여유가 있었습니다. 끝내 공수반은 손을 들고 말았고 초왕도 송나라를 치려는 계획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 생각거리: 묵자는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겸애(兼愛)’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비공(非攻)’을 주장했습니다. 전쟁이 인류에게 큰 고통과 피해를 주기 때문에 이를 피해야 하며, 겸애를 통하여모두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에 기반해 초나라의 공격을 무산시킨 것입니다.
한상조 전 청담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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