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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영월 쑥으로 지역상생 이끈 서울 청년 창업가, 한은경 ‘위로약방’ 대표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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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위로약방’ 한은경 대표

3년 전 마차마을에 카페 열어

외지인 장사에 처음엔 텃세

차 대접하고 농사 일 돕기도

“지역에 더 활기 불어넣을 것”

“처음엔 서울사람이 왜 시골에 와서 장사를 하냐며 화를 내고 가시는 분이 많았습니다.”

강원 영월군 마차마을에서 카페 ‘위로약방’을 운영하는 한은경(38) 대표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토박이다. 위로약방은 한 대표가 위로가 되는 음식과 공간을 만들자는 철학으로 2021년 10월 창업한 카페다. 서울사람인 그가 영월을 선택한 건 조선시대 어린 왕 단종의 유배지이면서 동시에 넋을 ‘위로’하는 문화제가 열리는 지역이어서다. 위로약방 대표 메뉴는 영월 쑥으로 만든 저당 파이 ‘영월 쑥쉘’이다.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더니 최근에는 까다로운 품평회를 거쳐 백화점에서도 판매를 시작했다. 건강함에 이어 맛까지 검증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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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경 ‘위로약방’ 대표가 강원 영월군 위로약방에서 함께 일하는 할머니들과 대표 메뉴인 ‘영월 쑥쉘’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한은경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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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창업해 성공한 4년 차 사업가가 된 한 대표를 17일 영월 위로약방에서 만났다. 그는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해 성공한 사례로 소개되면서 저를 보고 지역에서 창업하려는 후배 청년들이 많아졌다”며 “대부분은 여전히 존재하는 시골마을 텃세를 견디지 못하고 떠났고 그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운을 뗐다. 이어 “지역에서 사업하려면 단단한 마음을 가져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처음 마차마을에 위로약방을 열었을 당시 일화를 들려줬다. 그는 마을주민들의 환대를 받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달랐다고 했다. 마을 어르신들 여럿이 카페로 찾아와 ‘외지인이 왜 여기서 장사를 하느냐’고 화를 냈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처음에는 마을주민들도 외지 청년들과 정을 나눴다고 들었다”며 “그런데 지원금만 받고 떠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경계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민들에게는 왔다가 갈 사람이 아니라 정착해서 함께 살 사람이 필요했다”며 “지역에는 상처가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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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약방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이 ‘영월 쑥쉘’을 만들고 있다. 한은경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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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는 우선 마을주민들의 마음부터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매주 월, 수, 금요일마다 공공근로를 하는 할머니들에게 차를 대접했다. 할머니들은 처음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카페에 들어와 쉬고 가시라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 대표는 꾸준히 차를 들고 갔다. 어느 날부턴가 한 할머니가 차를 받아주기 시작했고 이윽고 모두가 마음을 열었다고 했다. 한 대표는 “제가 늦둥이라 그런지 어르신들이 부모님 같았다”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믿음을 드리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한 대표는 어르신들의 농사를 도와드리는 등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말했다.

사업은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한 대표는 영월 쑥으로 만든 빵을 기획했다. 그는 “손길이 가는 작물을 원재료로 하면 땅을 가진 분들에게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천으로 널린 재료로 해야 모든 어르신에게 기회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쑥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할머니들이 쑥을 따오면 무게에 따라 돈을 드렸다. 그랬더니 무게를 늘리려고 필요 없는 뿌리까지 뽑아왔다고 했다. 할머니들이 번 돈을 지역에서 쓰지 않고 서울서 온 손자들에게 주는 점도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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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약방 대표 메뉴인 ‘영월 쑥쉘’. 한은경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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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는 “이렇게는 마을이 변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행복을 나누는 방식으로 전환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쑥을 공급받는 대신 할머니들을 고용해 함께 빵을 만들었다.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어르신들은 함께 일하며 행복감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손자들이 오면 직접 만든 빵을 주며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자랑했다. 지금은 위로약방에서 일하고 싶어 기다리는 할머니만 40명이 넘는다.

한 대표는 두 번째 도약을 준비 중이다. 올해 말 GS리테일과 협업해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안녕인사동’에 매장을 낸다. 판로가 늘어나는 만큼 지역 어르신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 대표는 “위로약방이라는 이름처럼, 힘들고 지친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그런 음식과 공간을 만들어 나가겠다”며 “지역에 더 많은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영월=배상철 기자 b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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