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두 하버드대 교수가 함께 쓴 책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극단적 성향의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허점을 파고들어 다수의 시민을 지배하는 방식을 다룬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후속작으로, 2021년 1월 선거 패배에 불복했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의사당을 점령한 광적 지지자들의 행적을 다룬다. 책은 미국 헌법과 선거인단 제도에서 시작해 프랑스, 헝가리, 태국 등 여러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극단적 소수에 어떻게 위협받고 손상됐는지 파헤친다.
책에는 '충직한 민주주의자(Loyal democrat)'와 '겉으로만 충직한 민주주의자(Semi-Loyal democrat)'가 등장한다. 둘을 나누는 기준은 △권력 쟁취에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극단주의자들과 협력하지 않는다 등을 존중하느냐 여부다.
두 집단은 평소 2개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듯 행동한다. 그러나 결정적 상황에 몰리면 후자 집단은 은밀히 극단주의자들과 손잡고 그들을 이용한다. 저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의사당 침입자들의 정치 테러를 묵인했다고 비판한다.
소수 극단주의자에 의해 다수 구성원이 휘둘리는 일을 '국가' 단위로 거창하게 볼 건 아니다. 목소리 큰 누군가가 좌중을 휘어잡고 결국 배가 산으로 가게 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최근 벌어진 동덕여대 시위도 유사한 패턴을 보여준다.
학교의 공학 전환 움직임에 반대한다며 시작한 시위는 설립자 흉상에 오물을 쏟는 모욕에서부터 남성 혐오 구호와 수업 방해, 스승을 향한 막말을 서슴지 않는 지경으로 변질됐다. 취업 박람회장은 파괴되고 기업 부스는 성적 혐오 문구로 뒤덮였다. 남성 교수에게 "꼰대 닥쳐"라고 말하는 영상도 나왔다.
'여성 대상 교육 기회 확대'와 '여권 신장의 한 축'이라는 투쟁 명분은 빠르게 힘을 잃고 있다. 정말로 안타까운 건 순수성을 가슴에 품고 투쟁에 나섰을 다수 학생이 무지성적이고 패륜적인 소수와 한 묶음으로 취급받는 현실이다.
동덕여대생 전체가 저질적 행태에 찬성하거나 응원했다고 믿지 않는다. 동덕여대생 온라인에서 반윤리적 행태를 비난하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게 이를 증명한다.
그럼에도 학생들을 대표하는 총학생회가 극단주의자들과 손잡았거나 적어도 방관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극단적 소수가 다수의 동덕여대생을 지배'하는 모양이 지속될수록, 반도덕적 행태의 강도가 거셀수록 동덕여대생 전반을 바라보는 편견은 더 단단해질 것이다.
딸 키우는 아빠로서 여권 신장 노력에 찬성한다. 연장선상에서 여대 존치 투쟁 역시 존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다수 학생의 명예가 회복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극단 세력에 의해 비뚤어진 투쟁노선을 바른길로 돌려놓는 수밖에 없다. 그 일을 할 사람은 교직원도, 공권력도 아닌 보통의 동덕여대생들이어야 한다.
김지산 기자 s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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