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삼성 임직원들의 하소연이다.
삼성전자가 2분기 실적발표 이후 반도체 사업 회복 기대감이 치솟았다가 3분기 기대 이하 성적에 그치면서 당혹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외국인 매도세에 연일 주가가 하락하면서 자주 언급되던 '4만전자'를 넘어 '3성전자' '삼성접자'라는 조롱 섞인 표현까지 등장했다.
배옥진 |
주주들과 외부 전문가들은 사업 책임자부터 조직 문화까지 '다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 부진이 반도체 사업 위기를 초래했지만 사실상 수년 전부터 누적된 문제들이 한 번에 터져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재용 회장 취임 2주년에는 대대적 변화에 대한 '메시지'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까지 있었다. 선대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사장단과 임원에게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며 변화와 쇄신을 주문했던 것처럼 또 다른 신경영 선언이 필요하다고 기대한 것이었다. 세간의 기대와 달리 이 회장은 별다른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대대적 쇄신을 위해 이례적으로 인사·조직 개편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예상도 빗나갔다. 삼성 내부는 예년보다 앞당겨 인사를 단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다.
필자는 좀 다른 시각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우선, 이미 벌어진 HBM 기술격차는 단기에 뒤집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삼성전자 HBM 기술이 경쟁사보다 다소 뒤처졌다는 평가다. 고수익을 내는 과거 반도체 사업 전성기를 되찾기까지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 수장이 변화와 성장을 주문하며 경영 역사상 한 페이지를 새로 장식할만한 멋진 발언을 한다고 한들 당장 손실이 수익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경영자는 사업전략과 비전을 제시하기까지 수많은 시장 분석과 현황 진단 과정을 거친다. 바꿔 말하면 일정 수준 확신이 서지 않은 단계에서 섣불리 비전을 제시했다가 더 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뜻이다.
삼성은 변명하지 않고 성과로 보여주겠다는 입장이다. 부진한 반도체 사업에서 성과를 보여주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면, 종전과는 다른 소통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앞으로 있을 연말 인사와 조직개편 행보에 대해 무수히 많은 설이 오가고 있다. 분명한 것은 '변화가 크지 않으면 삼성이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시장의 시각이다. 이 해석이 삼성의 사업 방향을 오해한 것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쇄신 의지를 설득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은 삼성의 '말'이 앞서기보다는 성과를 도출하기까지 인내하는 '과정'에 주목해야 할 상황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그 시기까지 경영진은 시장과 약 420만명에 달하는 주주에게 '그저 기다려달라'고만 할 것인가. 국가 대표 기업이자 재계 1위 기업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크다. 삼성이 현명하고 솔직하게 위기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기대한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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