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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쇼팽의 '신곡'은 왜 뉴욕에서 발견됐을까…'1페이지' 왈츠로 초대합니다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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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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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시인’ 프레데릭 쇼팽(1810~1849)의 신곡이 200년 만에 뉴욕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2주가 넘었는데, 여전히 관심이 뜨겁습니다. 피아니스트 랑랑이 이 곡의 '월드 프리미어' 음원을 공개한 데 이어,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의 연주도 나왔습니다.

쇼팽의 ‘신곡’은 뉴욕 맨해튼 소재 박물관인 ‘모건 라이브러리 앤드 뮤지엄(이후 모건 박물관으로 표기)’에서 발견됐는데요, 지난달 27일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올봄 이 박물관의 음악 담당 학예사인 로빈슨 매클렐런이 수장고에서 이 악보를 처음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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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악보는 왜 뉴욕에서 발견되었을까



모건 박물관이 어떤 곳이기에 쇼팽의 악보가 발견된 걸까요? 이 박물관 이름의 ‘모건’은 그 유명한 금융회사 ‘J.P. 모건’의 모건입니다. 미국 굴지의 기업가이자 ‘금융왕’이었던 존 피어몬트 모건(John Piermont Morgan. 1837~1913)은 1890년 무렵부터 각종 희귀 도서와 원고, 악보 등을 전 세계에서 수집했고, 뉴욕의 사저 주변에 개인 서재 겸 박물관을 지었습니다. 존 맥킴(John McKim)이 설계해 20세기 초에 지어졌고 현재 모건 박물관의 본관으로 사용되는 ‘맥킴’ 빌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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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he Morgan Library &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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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모건 사후에 이 박물관은 공공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이 박물관은 본관인 맥킴 빌딩 외에 J.P. 모건이 살던 집, 장남인 J.P. 모건 주니어가 살던 집을 별관으로 편입하는 등 계속 규모를 확장해 왔습니다. 그리고 2006년 유명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마지막 확장 공사를 맡아 모건 박물관은 공연장과 레스토랑, 숍 등을 갖춘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모건 박물관은 건물 자체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희귀한 소장품을 볼 수 있는 관광 명소입니다. 25달러의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는데요, 대표적인 소장품으로 구텐베르크 성경이 있습니다. 15세기에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이 성경은 전 세계에 50권밖에 남아있지 않은데, 그중 세 권이 모건 박물관에 있습니다.

J.P 모건이 설립한 박물관, 음악 자료의 보고



모건 박물관에는 음악과 관련된 희귀 자료들도 많습니다. 베토벤과 모차르트, 슈베르트, 쇼팽, 브람스, 말러, 스트라빈스키 등 수많은 작곡가들의 자필 악보나 편지, 출판 악보의 초판 등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박물관에는 전문적인 음악 지식을 갖춘 음악 담당 학예사가 있었던 겁니다. 모건 박물관의 음악 담당 학예사 로빈슨 매클렐런은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매클렐런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모건 박물관 소장 악보를 작곡가 이름에 따라 찾아볼 수 있는 온라인 아카이브를 구축했습니다. 그의 주요 업무는 음악 관련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쓰고, 새로 소장할 작품을 구입하거나, 기존 소장품을 분류 관리하는 일입니다.

그가 쇼팽의 미공개 악보를 발견한 것도 박물관의 기존 소장품을 분류 정리하는 과정에서였습니다. 가로 13센티미터, 세로 10센티미터, 인덱스카드 크기의, 이 악보는 저명한 음악 교육자 아서 자츠(Arthur Satz)의 사후 이 박물관에 기증한 자료들 중에 있었습니다.

랑랑보다 먼저 쇼팽의 '신곡'을 친 사람



뉴욕타임스는 쇼팽의 미공개 악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피아니스트 랑랑의 첫 연주를 공개했지만, 매클렐런은 이 곡을 랑랑보다 앞서 직접 연주한 사람이었습니다. 최근 그는 독일의 클래식 음악 유튜버 칼 폰 무디와 인터뷰했는데, 그는 소장품들을 정리하다가 ‘쇼팽’이라고 쓰인 이 악보를 처음 발견하고, 사진을 찍어 출력한 악보 사본을 집에 가져와서 직접 쳐봤다고 했습니다.

“저는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제 연주는 멜로디를 듣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제가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곡이라는 게 분명했죠. 제가 찾을 수 있는 쇼팽의 다른 A 단조 왈츠 목록을 모두 훑어봤는데, 그 어떤 곡하고도 매치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쇼팽 전문가인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제프리 칼버그에게 연락했습니다.”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이 곡을 최초로 발견해 연주해 본 매클렐런의 소감은 어땠을까요?

“저는 아마도 적어도 수십 년 안에는 이 곡을 최초로 친 사람일 거예요. 흥분됐지만, 그 시점에는 이 악보가 진짜 쇼팽인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의 깊은’ 흥분이었죠. 그래도 저는 그 순간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어요. 그 곡의 멜로디가 제 머릿속에 콕 박혀서, 1주일 정도는 계속 자동 재생되는 것 같았습니다.”

몇 달간 전문가들이 종이와 잉크 재질을 분석하고 낮은음자리표를 독특하게 쓰는 쇼팽의 필적과 대조한 결과, 모건 박물관은 이 악보가 쇼팽이 20대에 쓴 미공개 왈츠 악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다만 악보 위에 ‘쇼팽’이라고 쓰인 것은 다른 사람의 필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작은 악보는 쇼팽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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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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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악보는 일반적인 악보들에 비해 크기가 굉장히 작은데, 쇼팽이 남긴 악보 중에는 이렇게 작은 종이에 쓴 곡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쇼팽이 이렇게 작은 악보를 친구에게 선물했다고 말합니다.

“쇼팽은 이 작은 종이에 짧은 곡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선물했을 겁니다. 이를테면, 저녁 식사 초대를 받으면 와인 대신 이런 악보를 가져가지 않았을까요?”

로빈슨 매클렐런의 이 말을 듣고, 이런 선물을 받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쇼팽이 와인 대신 악보를 선물로 가져오는 파티’의 참석자가 되고도 싶었고요. 이런 파티에선 즉석에서 그 곡의 연주가 펼쳐졌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 곡이 진짜 쇼팽의 곡인지 아직 100% 확신할 수 없다며 의구심을 나타내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폴란드 국립 프레데릭 쇼팽 인스티튜트는 이 악보가 쇼팽 자필 악보가 갖는 전형적인 특징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하면서도, 정밀한 비교 연구를 거쳐야 한다며 최종 결론은 유보했습니다.

매클렐런은 현재 이 악보를 과거에 소유했던 컬렉터들이 누구인지도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 악보는 아서 자츠 이전에는 진 위튼이라는 줄리어드 출신 플루티스트가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 위튼의 자녀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이런 식으로 과거의 컬렉터들을 확인하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이 악보의 ‘기원’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확실한 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쇼팽의 작품으로 여기고,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연주 음원을 발표하고, 정식 공연 무대에서 이 곡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 짧은 곡이 다른 긴 곡의 도입부라고 가정하고, 뒷부분을 쇼팽 스타일로 새롭게 작곡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왈츠는 없었다... 짧지만 많은 이야기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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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곡의 도입부를 처음 들었을 때 왈츠가 아니라 스케르초나 폴로네이즈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음으로 어둡고 무겁게 시작되는 이 곡은 멜로디를 반복하며 계속 커지다가, 크게 치라는 뜻의 포르테(f)가 세 개나 되는 포르테시시모(fff)로 폭발합니다. 쇼팽의 왈츠 중에 포르테시시모가 있는 경우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 드라마틱한 도입부, 왈츠로서는 이례적입니다.

이 폭발 후엔 우아하고 감상적인 멜로디가 이어지면서 전형적인 세 박자 왈츠의 느낌을 찾습니다. 도입부에선 저음 쪽에서 반음씩 내려가는 음들이 들렸었는데, 중간 부분에선 고음 쪽에서 반음계 하향 음들이 다시 등장합니다. 이런 대목이 쇼팽 같다고 느껴졌어요.

우수에 찬 멜로디가 계속되다가 끝나기 직전, 제가 듣자마자 확 끌렸던 부분이 나옵니다. 조성이 잠깐 장조로 바뀌면서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듯한, 혹은 엷은 미소를 띠는 듯한 느낌을 주는 대목이죠. 안데르제프스키도 ‘마지막에 C장조로 바뀌는 부분은 쇼팽의 모든 것이 담긴 감동의 순간”이라고 했더라고요.

이 곡은 도돌이표로 반복하면 총 48마디, 연주 시간 1분 좀 넘는 짧은 곡이지만, 쇼팽의 다른 곡들이 그렇듯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멜로디를 반복하면서도 조금씩 변형해 강조하기도 하고, 조성 변화도 있습니다. 쇼팽의 다른 왈츠들과는 닮지 않았지만, 쇼팽의 느낌은 물씬합니다. 랑랑은 이 곡의 거친 도입부가 ‘폴란드 시골의 엄혹한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는데, 그래서였는지 저는 A 단조로 조성도 같은 에튀드 Op. 25. No. 11 ‘겨울바람’을 연상했습니다.

이 왈츠는 쇼팽이 20대 초반이었던 1830년에서 1835년 사이에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바르샤바 음악원을 졸업하고 빈에 간 쇼팽은 1930년 조국 폴란드가 러시아에 맞서 무장봉기를 일으켰지만, 실패했다는 소식을 해외에서 듣게 됩니다. 쇼팽이 이 시기에 썼던 작품들에는 비통함과 고뇌가 묻어 나오는데요, 쇼팽 스스로 붙인 제목은 아니지만 ‘혁명’으로 알려진 에튀드 Op. 10 No. 12는 당시 그의 심경을 담은 듯한 비장한 분위기의 곡입니다. 이 왈츠의 어둡고 무거운 도입부 역시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쇼팽의 신곡은 딱 한 페이지 "시도해 보세요"




새롭게 발견된 쇼팽의 왈츠에 대한 관심은 학계나 음악계를 넘어선 것 같습니다. 매클렐런은 전문가들뿐 아니라 일반 대중도 이 곡을 두고 벌어지는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쇼팽은 클래식 애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친숙한 작곡가입니다.

“쇼팽이라는 작곡가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쇼팽, 그리고 쇼팽의 음악과 개인적인 인연을 맺고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예를 들어 제 어머니는 직업 피아니스트가 아니지만, 쇼팽의 곡들을 연주해 왔어요. 이 곡에 개인적인 의미도 깃들게 되는 겁니다.”

매클렐런은 이 곡이 많은 아마추어들에게 ‘쇼팽을 직접 연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 곡은 쇼팽의 다른 곡들에 비하면 비교적 쉽고 짧으며, 최근에 발견되었다는 화제성까지 있죠. 그는 ‘나도 한 번 쇼팽을 쳐보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이 곡이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저도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가 아니지만 이 곡을 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해도, 악보를 인쇄해서 한 번 시도해 보기를 권합니다. 굉장히 즐거울 거예요. 딱 한 페이지잖아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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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문화전문기자 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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