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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전 세계를 뒤흔든 영화의 귀환…'로마'로 '미국'을 이야기하다 글래디에이터 Ⅱ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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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저격] 86세의 나이에도 꿈을 꾸는 리들리 스콧 (글 : 홍수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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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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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에서 노예로 전락한 남자. 죽은 가족을 위해 복수를 기다리는 비애의 검투사. 한때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그 영화, <글래디에이터>가 돌아왔다. 무려 25년 만에. 뛰어난 이야기꾼 리들리 스콧 감독도 그대로다. 전편이 '러셀 크로우'라는 걸출한 스타를 배출했다면, 이번 편은 떠오르는 청춘스타 '폴 메스칼'과 손을 잡았다.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조합.

뚜껑을 열어보니 <글래디에이터 Ⅱ>는 전편과 비슷한 듯 다르다. 1편의 세계관을 잇기 때문에 신선함은 떨어지지만, 보다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이 글에서는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1편과 2편이 결정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이를 통해 리들리 스콧이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인지 말해 보려 한다. 아래부터 <글래디에이터> 1편과 2편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나온다.

<글래디에이터 Ⅱ>는 전편과 같은 지점에서 시작한다. 긴 전쟁으로 지친 로마군. 주변국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지만, 너무 많은 생명이 희생당했다. 다만 두 영화는 이 상황을 바라보는 시점이 좀 다르다. 1편은 로마 장군 막시무스(러셀 크로우)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나 2편의 주인공 루시우스(폴 메스칼)는 로마에 의해 점령당한 누마디아 출신이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지역에서 노예로 붙잡혀 온 이들도 종종 등장한다. 그러니까 로마 내부에 머물렀던 1편과 달리, 2편은 로마의 안팎을 두루 오가며 여러 사람의 시점에서 이 거대한 제국을 관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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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글래디에이터 Ⅱ>가 바라보는 로마는 전편에 비해 더 입체적이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지만 어느 곳보다 병들었다. 넘쳐나는 빈민을 구제하지 못한 채, 전쟁과 폭력이 가져다주는 흥분과 자극에 취한 상태. 한때 '힘과 명예'를 갖고자 했던 로마인의 이상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글래디에이터 Ⅱ>는 표면적으로 루시우스의 복수극을 따라가지만, 그 이면에서 로마라는 무너진 제국을 뜯어본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로마'에 대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 속 상황이 '지금 미국'과 상당 부분 일치하기 때문이다. 리들리 스콧은 고대 제국에 대해 말하며, 실은 현재 미국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이다. 세계의 패권을 거머쥔 나라. 하지만 내부의 통증을 치료하지 못한 채, 폭력과 자극에 취해 비틀거리는 나라. 리들리 스콧은 지금의 미국이 위태롭다고 느끼는 것 같다.

영화에서 이런 혼란을 해결하는 이는 루시우스다. 이 캐릭터를 뜯어보면 흥미롭다. 그는 로마인의 피를 물려받았지만, 누미디아 인의 정신을 지녔다. 로마에 뿌리를 두고 누미디아에서 자랐다. 이를테면 이중국적자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제시하는 구원자는, 로마(혹은 미국)의 DNA를 가졌지만 주변국의 시선까지 장착한 이다. 제국에 갇혀 있지 않은 개방된 시선을 갖춘 인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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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가 있으면 파괴자도 있기 마련. 마크리누스(덴젤 워싱턴)는 로마를 파멸하려는 자다. 그는 말한다. "노예는 새로운 노예를 취하려고 한다"라고. 사실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길은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과 노예라는 폭력적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노예 신분을 벗어나더라도 이 폭력의 구조에 물든 이는, 또 다른 노예를 취함으로써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 주인임을 끊임없이 증명하려 한다. 그러니까 어떤 위치에 있건 '지배-피지배'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채로 반복하는 이가 바로 노예인 것이다.

리들리 스콧은 이런 설정을 통해, 미국을 망가뜨리는 이가 누군지를 지목한다. 그것은 타인을 지배하며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들이다. 아마도 마크리누스가 말하는 '노예'일 것이다.

한편 마크리누스와 정확히 대조적인 인물도 등장한다. 그는 검투사를 치료해 주는 의사(라고 불리는 자)다. 그는 한때 검투사였으나, 자유인이 된 뒤에도 로마에 남아 가정을 꾸리고, 죽을 위험에 빠진 이들을 치료하며 살아간다. 그는 자신을 옭아맸던 폭력의 구조에서 완전히 해방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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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글래디에이터>의 1편과 2편은 바라보는 지점이 다르다. 비록 스토리라인이 비슷하고 정서가 비슷하다 해도 말이다. 1편은 개인의 복수에 초점을 맞춘다. 막시무스는 복수를 마치고 마침내 그토록 원했던 휴식을 맞이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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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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