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원 작가. 사진 소재원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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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만 읽으시더라고요. 다 못 읽으셨죠?" 제가 선물로 드릴게요. " 영화 ‘터널’‘공기살인’‘소원’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 소재원(40)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왔지만 사기를 당하고 길거리 생활을 했다. 13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과 인터넷 커뮤니티에 "제 사연과 일치하는 분이 계시거나 알고 있으신 분이 있으시면 연락을 부탁드린다"며 자신의 사연을 전했다.
그는 1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를 2002년에서 2003년 사이라고 돌아봤다. 서점은 영등포역 주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 작가는 “주변에 큰 백화점과 광장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직원이 서너 명 있는 작은 서점이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소 작가와의 전화 인터뷰.
Q : 그분을 만난 때가 언제인가요.
A :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날 올라왔어요. 그게 2002년도인지 2003년도인지 기억이 안 나네요. 제가 졸업 앨범을 안 갖고 있어요. (그 시기를)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요.
Q : 나중에 작품을 선물하겠다고 얘기했네요.
A :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내가 노숙자라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았어요. 나를 냄새 나는 노숙자로 보는 그 시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그리고 말하고 싶었어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작가 지망생이다.' 그래서 '나중에 제가 쓴 책을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허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그분은 제 손을 잡아줬어요.
소재원 작가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글. 20년 전 노숙생활을 하던 작가에게 책을 선물한 서점 직원을 찾는 내용이다. 사진 소재원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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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그분과 관련한 정보가 더 있을까요.
A : 서른이 안 된 것 같은 얼굴이었어요. 거기 있는 다른 직원들도 젊었고요. 직원은 3명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중 한 분이었습니다. 서점 주변에 인력 시장이 있었던 것도 기억납니다. 제가 인력 시장 위치를 물어서 찾아갔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낮에 들어갔던 데가 그 서점이었고요.
Q : 그분이 갑자기 생각난 이유는요.
A : 한동안 그분을 잊고 살았어요. 사는 게 힘들어서… 영화 '비스트 보이즈' 원작 소설 『나는 텐프로였다』(2008)가 나오면서 숨통이 틔었고요. 이듬해에『밤의 대한민국』이라는 소설을 냈는데 잘 안됐어요. 그때 그분이 생각났습니다. 절필까지 고민하던 시기인데…'그때 그 사람은 왜 이 책을 줬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러면서 나도 그런 친절함을 베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나온 책이 『소원』입니다.
Q : 그 일이 있던 날부터 데뷔 전까지 어떻게 지냈습니까.
A : 제가 노숙을 하면서『터널』을 썼는데 당시엔 출판이 안 됐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호기심 가질 만한 주제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노숙 생활하면서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자주 봤어요. 그래서 거기에 취직했고『나는 텐프로였다』를 쓸 수 있었습니다.
소 작가는 기사에 『당신들의 천국』표지를 꼭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 『당신들의 천국』을 노숙자에게 준 사람은 한 명밖에 없을 거예요. 그걸 기사에 꼭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
■ 소재원 작가 인스타그램 전문
20여 년 전..
노숙 시절 한 서점에서 3일째 책을 읽고 있었다. 달리 갈 곳도 없었고 역보단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서점이 유일한 여가 장소였다.
하지만 3일째 되던 날 연달아 찾아오는 날 벼르고 있던 직원이 말했다.
"냄새난다며 며칠째 항의 들어왔어요. 나가세요."
순간 얼굴이 붉어지며 황급히 서점을 빠져나왔다. 그때 "저기요?" 하는 목소리가 내 등가에 전해졌다. 분명 나를 부른다는 확신 속에 고개를 돌렸다.
서점에서 봤던 다른 직원이었다. 직원이 나에게 달려왔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노숙자. 나는 예비 범죄자와 같은 낙인이 찍혀있던 것이다. 그런 나의 행동을 눈치챘는지 그녀가 잠시만요! 하고 소리쳤다.
그녀의 손을 그제야 확인했다. 그녀의 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다.
"이 책만 읽으시더라고요. 다 못 읽으셨죠?"
숨을 헐떡이며 말하는 그녀가 작품을 건넸다.
"제가 선물로 드릴게요."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노숙자가 되기 이전부터 태생부터 가난으로 찌들었던 내가 선물을 받아본 적이 있었을까? 생일 때도 받아본 적 없는 선물이었다. 오히려 생일빵이라며 친구들은 날 때렸고 덕분에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는 유일한 점퍼 한 벌이 찢어졌으며 난 겨울 내내 솜뭉치가 거의 다 빠진 점퍼를 입고 다녀야만 했다. 낯선 이로부터 처음 받아보는 선물이 당황스러웠지만 거북하지 않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녀가 눈물을 보이는 내가 흉측해서 다시 책을 가지고 돌아갈까봐 불안하기도 했다. 난 서둘러 책을 받아들었다.
"나중에 제가 제 작품을 직접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감사하다는 말 대신 약속으로 대신했다. 그녀가 웃으며 내 손을 한번 꼭 잡아주고는 돌아섰다.
그녀가 내 약속을 믿고 있었는지 노숙자의 허언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난 그녀에게 받은 친절을 매번 되새기며 버텨왔다는 것이다.
그녀는 알고 있을까?
그때 그녀가 선물했던 책을 읽은 노숙자 청년은 어느새 기성 작가로 살아가고 있음을.
소설과 영화, 드라마까지 모두 집필하며 살아가는 꽤 인정받는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녀의 친절을 닮은 작품을 집필하며 약자를 대변하는 작가라는 수식을 얻었다는 것을.
이젠 약속을 지키고 싶다.
만나고 싶다.
그녀를 닮아있는 내 작품들을 선물로 드리고 싶다.
잘 지내시나요?
당신으로 하여금 괜찮은 작가가 되었답니다.
여전히 흔들리거나 힘겨움이 찾아올 때면 그때를 떠올립니다.
내가 과연 당신께 선물로 드릴 수 있는 작품을 집필하고 있는지 언제나 생각하고 다짐합니다.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습니다.
감사한 마음보단 절 증명하고 싶었어요.
봐라! 내가 말한 대로 작가가 됐고 작품을 선물할 만큼꽤나 이름있는 작품을 써내려갔지? 라는 자랑하고픈 마음이 크긴 했지만요.
더 늦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만나서 20년이 훌쩍 넘은 시간의 고마운 마음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이제 당신의 친절로 하여금 사람들은 절 노숙자가 아닌 약자를 대변하는 작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참! 제 이름도 말씀드리지 않았네요. 전 소재원 입니다. 당신의 이름도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제게 처음으로 친절이란 감정을 알게 해준 당신이 무척이나 보고 싶습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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