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연구소 소장]
사장이 월급을 80% 깎아 버리면?
만약 사장이 월급을 80% 줄여서 급여를 주겠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그렇게 깎아서 주면서 선심쓰듯이 '이제 월급이 줄었으니 가정경제를 더 합리적으로 꾸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덕담(?)까지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윤석열 정부 들어 사회적경제를 위축시키는 정책을 쓴다고 점잖게 이야기하면, 일부는 구체적으로 모르면서 이렇게 충고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제활동을 하는 데 너무 정부의 재정지원이 많아도 문제다. 자립성을 높이라는 현 정부의 주장이 크게 보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점잖지 않게 구체적 수치로 말해 보려고 한다.
아래 표는 현 정부가 본격적인 예산을 세운 2024년 광역과 기초의 예산 감소율이다. '지방재정365 홈페이지'에서 키워드 검색으로 추출하여 분석한 결과 광역이 37.3%가 줄었고, 기초는 53.6%가 줄었다. 절반 이상 줄어든 수치다. 중앙부처 관련예산안이 56.3% 감소했으니 지방정부 사회적경제 예산 감축을 주도한 꼴이다.
전체 평균이니 실감을 못할 것 같아 광역지자체장 중 현 정부의 사회적경제 파괴 정책에 적극 동의하는 몇 개 시도를 뽑아 보자. 대구는 78.7%가 줄었고, 경남은 82.9%나 줄어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경기나 광주 등은 예산이 줄기는 했지만 자체 재정을 편성하며 상당히 방어하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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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중기재정전략회의에서 사회적기업을 콕 짚어 지적했다. "‘써야 할 곳에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재정투입에 대한 효과분석 없이 추진된 예산, 노조·비영리단체·사회적기업 등에 지원되는 보조금 등은 제로베이스에서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보도자료에 명시했다. 그 이후 3월말까지 진행되던 사회적경제 예산은 완전히 수정되어 감축되었고, 이는 지방정부들에게도 나쁜 시그널을 주었다. 그 결과는 올해의 참담한 예산 현황이다.
다시 앞의 질문을 생각해 보자. 사장이 아무런 상의도 없이, 동네방네 당신을 비난하면서 월급 80%를 깎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외여건 변화에 따른 긴급 경제·안보 점검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에 따른 경제 및 안보정책 변화와 영향을 점검하기 위해 열렸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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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를 도와주고 있는 걸까
2023년도 중앙정부의 사회적경제 보조사업 24종 3천억여원 가운데 취약계층을 고용할 경우 지원하는 사회적기업육성 사업이 2000억여 원으로 3분의 2를 차지했다. 일자리 취약계층을 사회적기업이 고용하지 않으면 대부분이 수급대상자가 되어 복지예산이 들어가야 한다.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지원금도 계속 주는 것이 아니라 최대 5년간 지원하며 급여 지원비율은 인증사회적기업 1년차 60%, 2년차 50%, 3년차 30%로 매년 줄어든다. 정부 입장에서는 수급지원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생산적 복지'를 달성하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의 사회적기업 정책의 효과로 4만2747명의 취약계층이 일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만약 4만 명에게 3인가구 생계급여를 지급하려면 매년 7200억 원이 소요된다. 사회적경제활동은 이 사업 하나만 가지고도 매년 정부의 예산을 5000억 원 정도 절감해 주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복지국가 패러다임은 줄어들고, 국가 정책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기업의 역량과 선의를 활용해야 한다는 좋은 거버넌스의 방향에 합의했다. 즉 좋은 거버넌스와 그 중 사회와 민간의 가장 크고 중요한 부문은 사회적경제라는 인식은 글로벌스탠다드가 되었다.
하지만 현 윤석열 정부는 사회적경제를 파괴시키려고 하면서,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이미 만든 성과도 스스로 짓밟아 버리고 있다. 마을기업은 더 이상 지정되지 않고 있으며, 신규 사회적기업의 취약계층 지원금은 전액 삭감했다. 그렇지 않아도 세금수입이 줄어들어 지방예산과 민생예산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의 일자리 창출 능력도 약화시키는 사회적경제 말살 정책은 자해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전형적인 "말 따로, 행동 따로"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점이다. 입만 벌리면 "자유"를 말하면서도, 사실상 행동은 반대로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언론의 자유는 현 정부 들어 크게 위축되었고,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반발을 사고 있다. 사회적경제에서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에 들어 우리나라가 회원국으로 있는 OECD와 UN이 잇따라 사회연대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의결을 했는데, 이 때 현정부는 찬성표를 던졌다. UN은 2023년 정기총회에서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사회연대경제 활성화 결의문"을 채택하면서, 각 국가에게 "회원국들이 국가적 상황과 계획, 우선순위를 고려하면서 지속 가능한 경제사회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모델로서 사회연대경제를 지원하고 강화하기 위해 국가, 지방, 지역적 전략, 정책과 프로그램을 촉진 및 이행하도록 독려하고, 정책입안 과정에 사회연대경제 주체들이 참여하도록 독려"할 것을 권고했다. OECD도 2022년 각료 이사회에서 '사회연대경제 및 사회혁신 권고안'을 의결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2023년 4월 UN에서 찬성표를 던진 후 100일도 되지 않아 사회적경제를 비난하며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공표했다. 예산만 줄이는 것이 아니다. 기획재정부의 사회적경제과는 폐지했고, 협동조합과는 팀으로 축소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십수년간 없었던 강력한 행정 압박을 시작했다. 작년부터 사회적기업이 등기기한을 지키지 못하거나, 고용노동부에 보고해야 할 사항을 미루면 과태료를 때리겠다는 공문을 보내기 시작했다. 지원예산도 줄이고, 관리비용만 높이는 이런 고용노동부의 처사는 현장에서는 "사회적기업 인증"을 포기하라는 시위로 느껴진다.
사회를 파괴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큰 그림? 막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윤석열 정부의 사회적경제 정책은 평가할 것이 없다. 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사회적경제를 폐기하려는 기조만 있을 뿐이다. 이런 문제는 사회적경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재정전략회의의 내용을 보면 '노조·비영리단체·사회적기업'는 한 묶음이었다. 기업이나 행정이 아닌 시민이 가장 광범위하게 모여 있는 사회적 그룹을 한꺼번에 축소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여성, 아동, 다문화, 이주노동자 관련 많은 정책과 예산이 삭감당했다.
우리는 여기서 초기 신자유주의의 상징적 인물인 마거릿 대처의 "사회라는 것은 없다. 남성과 여성 개개인, 가족이 존재할 뿐이다"라는 말을 정책에 반영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무모함을 본다.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영국조차도 초기 신자유주의에서 탈피하여 빅소사이어티를 이야기하며 사회적경제의 역할을 강조하는 사이, 윤석열 정부는 70년대 말, 80년대 초의 시간으로 퇴행하여 사회를 파괴하려는 데 골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회적경제의 중요성을 다시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합리적인 정책으로 되돌려 놓는 것은 사회적경제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갈 수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
[김기태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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