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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70년대생 첫 여성 회장…딸에서 딸로 승계 [CEO LOU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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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경 ㈜신세계 회장


신세계그룹은 지난 10월 30일 정기 인사에서 그룹의 두 축인 이마트와 백화점 계열 분리를 공식화했다. 동시에 백화점 부문을 이끌어온 정유경 총괄사장(52)을 ㈜신세계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이로써 이명희 총괄회장 장남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이마트를, 딸인 정유경 ㈜신세계 회장이 백화점을 각각 경영하는 양분 구조를 공고히 했다.

정유경 회장 계열 분리는 한국 재계에서 보기 힘든 ‘딸로부터 딸에게 승계’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 총괄회장은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 막내딸이자 이건희 회장 동생이다. 지난 1991년 삼성그룹이 운영하던 백화점 신세계(본점·영등포점)와 조선호텔을 들고 독립했다. 이후 1997년 공정거래법상 삼성그룹과 완전 계열 분리한 뒤 대형마트인 이마트 성장에 기대 굴지의 유통 기업으로 올라섰다. 1997년 33위였던 재계 순위는 29위(2000년), 16위(2005년), 13위(2015년)까지 수직 상승했다. 현재 신세계 재계 순위(자산 기준)는 11위로 협동조합인 농협을 제외하면 10위에 해당한다. 이 총괄회장은 1998년 회장에 오르며 삼성가 최초 여성 경영인이자 국내 1세대 여성 총수로 이름을 냈다.

이번 계열 분리를 통해 이 총괄회장은 자신이 삼성에서 물려받은 뿌리인 백화점을 딸인 정유경 회장에게 다시 물려주게 됐다.

지난 1996년 조선호텔 상무로 경영에 참여한 정유경 회장은 2009년 ㈜신세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지난 2015년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으로 입지를 다졌고, 이번 회장 승진으로 국내 주요 200대 그룹과 60개 주요 중견기업 중 1970년 이후 출생한 여성 회장 1호가 됐다. 정유경 회장 승진은 사촌 언니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 등 삼성가의 대표적인 여성 경영인 가운데 처음이다.

매경이코노미

1972년생/ 서울예고/ 로드아일랜드디자인학교 그래픽디자인 전공/ 1996년 조선호텔 상무/ 2009년 신세계 부사장/ 2015년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2024년 10월 ㈜신세계 회장(현)


계열 분리를 위한 TF 가동

이 총괄회장 지분 승계로 정리

이번 인사 이후 신세계는 이마트와 백화점 부문을 분리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한다. 정용진 회장은 이마트 지분을 18.6%, 정유경 회장은 ㈜신세계 지분을 18.6% 보유했다. 이명희 총괄회장은 이마트와 ㈜신세계 각각 10%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 지분을 고스란히 아들·딸에게 넘겨주면 지분 상속은 끝난다. 잡음과 마찰이 일어날 소지가 적다.

현재 이마트 계열사로는 ▲신세계프라퍼티 ▲신세계푸드 ▲조선호텔앤리조트 ▲SSG닷컴 ▲G마켓 ▲이마트24 ▲SCK컴퍼니(스타벅스) 등이 있다. 대형마트, 편의점, SSM(기업형 슈퍼마켓), 식음료(F&B), 호텔 등이 주요 사업이다. 백화점 계열사로는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디에프 ▲신세계센트럴시티 ▲신세계까사 ▲신세계라이브쇼핑 등이 있다. 백화점, 면세점, 패션·뷰티, 호텔, 리빙 등이 주요 사업이다.

계열 분리에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먼저 법적 분리가 필요하다. 친족독립경영 신청 이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심사를 받는 과정을 거친다. 공정위는 기존 그룹사와 독립하는 회사의 임원 겸임, 채무 보증, 자금 대차, 법 위반 전력 등을 따진다. 이마트 측 신세계 계열사 지분 보유율, 신세계 측의 이마트 계열사 지분 보유율이 각각 상장사 3% 미만, 비상장사는 10% 미만이어야 한다. 공정위는 이들 회사가 친족 분리 기준을 충족한다고 판단하면 계열 분리를 승인한다. 신세계 전체 매출은 71조원. 공정자산총액 기준으로는 62조517억원이다. 계열 분리가 승인되면 이마트 부문은 자산 약 43조원, 신세계는 19조원으로 쪼개진다. 각각 재계 11위, 26위에 해당한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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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중시하며 디자인 감각 높아

백화점 위축 전망에도 사세 키워

정유경 회장은 인사와 함께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신세계백화점 기획전략본부에 백화점과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뷰티 사업을 총괄하는 뷰티 전략 TF팀을 신설했다. 신세계백화점 부문 독립 경영을 선언한 정유경 회장이 글로벌 뷰티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정유경 회장은 ‘숫자’를 강조하는 CEO로 알려졌다.

지난 2015년 정유경 회장이 백화점 부문을 맡을 때만 해도 우려가 적지 않았다. 당시 백화점 시장 성장 가능성은 낮게 평가됐다. 쿠팡 등 온라인 마켓은 급격히 성장하고 인구 감소 추세가 뚜렷해 백화점 등 오프라인 유통가 미래가 어둡다는 전망이 쏟아졌다. 정유경 회장은 다점포 전략 대신 지역 1위 점포를 만드는 ‘랜드마크 전략’을 택했다. 2016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증축 리뉴얼이 대표적인 사례다. 리뉴얼 이후인 2017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롯데백화점 본점을 제치고 업계 1위로 올라섰고, 지난해 매출 3조원을 돌파했다. ㈜신세계 실적(연결 기준)은 2015년 총매출 5조523억원에서 지난해 11조1322억원으로 2배 이상 불어났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621억원에서 6398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도 백화점은 상반기까지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정유경 회장이 2015년 총괄사장에 오른 뒤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2016년 12월 대구신세계 오픈식이 유일하다. 대구신세계는 총괄사장에 오른 뒤 그의 의중을 담아 공을 들인 첫 백화점이었다.

대구신세계는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와 함께 조성된 건물로, 1~4층은 공간의 절반을 복합환승센터로 이용한다. 업계에서는 “명품은 반드시 백화점 1~2층에 있어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정유경 회장은 ‘온전히 백화점 공간으로 쓸 수 있는 5층에 명품을 배치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수도권이 아닌 백화점에, 1층이 아닌 5층에 명품관을 조성하면 브랜드 유치가 불가능하다”는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정유경 회장은 고집했다. 기존 공식대로 1~2층에 명품관을 만들면 소비자가 좁은 공간에서 명품 쇼핑을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서였다. 대구신세계는 전례 없이 5층 전체를 명품관으로 꾸몄다. 업계에서 ‘3대 명품’으로 불리는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도 모두 입점시켰다.

결과는 대성공. 대구점은 오픈 1년 만에 대구 지역 매출 1등 백화점이 됐다. 4년 만인 2021년 당시 국내 백화점 중 가장 짧은 기간에 연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정유경 회장은 글로벌 인맥을 활용한 브랜드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미국 명품 브랜드 크롬하츠의 공동 설립자들과는 수시로 패션 트렌드에 대한 의견을 공유한다. 크롬하츠는 현재 국내에서 신세계백화점에만 입점해 있다.

또한 지난 2012년 비디비치를 시작으로 스위스퍼펙션, 어뮤즈 등 화장품 브랜드를 잇따라 인수했다.

정유경 회장은 오프라인 공간의 고급화에 계속 매진할 계획이다. 온라인이 성장하더라도 보편적 인간 감성을 담은 오프라인 경험이 중요하다는 철학이 확고하다. 2028년을 목표로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 계획 중인 미래형 복합개발단지에 관심이 쏠리는 배경이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4호 (2024.11.13~2024.11.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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