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단지 2499만㎡는 주인이 없다
텅 빈 산단 97개…토지 분양 하나도 못해
새로 짓기 경쟁에 기존 산단은 방치
산단 37%가 20년 넘은 '노인 산단'
편집자주한국에는 버려진 땅이 있다. 넓이만 2449만㎡로 여의도 면적의 5.44배 규모다. 이 땅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냥 방치돼있다. 바로 '산업단지' 이야기다. 산업단지는 1960년대 울산공업단지 개발을 시작으로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견인한 주역이다. 하지만 우후죽순 들어선 탓에 지금은 고질적인 미분양에 시달리고 있다. 새 산업단지를 짓는 데만 몰두하면서 기존 산업단지는 심각한 노후화 문제에 직면했다. 아시아경제는 '버려진 산단' 기획을 통해 국내 산업단지 현황을 살펴보고 해외 사례를 통해 한국 산업단지의 발전 방향을 모색한다.
지난달 31일 오후 찾은 충남 보령의 웅천일반산단. 입주기업을 찾지 못한 부지에 잡목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사진=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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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충남 보령 무창포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차로 약 1분 만에 웅천일반산업단지에 도착했다. 산업단지임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만 있을 뿐 인도는 물론 진입로인 왕복 4차선 도로도 텅 비어 있었다. 산업단지 분양사무실로 사용되던 노란색 낡은 컨테이너 역시 직원 없이 문이 닫혀 있었다.
산업단지 안쪽도 상황은 비슷했다. 인도는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아 보도블록 사이로 잡초가 자라고 있었고, 입주기업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은 모두 공란으로 남아 있었다. 산업단지 도로는 텅 비었고, 부지는 공장보다 방치된 노지가 더 많은 상황이다. 입주기업을 찾지 못한 부지에는 잡풀과 사람 키를 넘는 잡목만 자라고 있었다.
산업단지 인근에서 만난 개인택시 기사인 장모씨(75)는 "소일거리로 근처에서 농사를 짓느라 자주 산업단지를 지나는데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출·퇴근 시간에 차 몇 대가 다니는 거 말고는 늘 한산하다"며 "수년째 이 상태이고, 이제야 공장 몇 개가 들어온 거 같은데 이래서 산업단지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600명 고용이라더니 92명뿐…절반 넘게 미분양
웅천산업단지는 2015년부터 2019년 말까지 사업비 650억원을 투입해 조성한 68만5400㎡ 규모의 산업단지다. 보령시와 충남개발공사가 시행한 사업이다. 당시 보령시는 "서남부 지역의 일자리 창출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라며 단지가 조성되면 600여명의 고용유발 효과와 함께 지역경제에 미치는 생산유발효과 909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가 285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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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준공됐지만 초기 분양 실적은 저조했다. 분양 면적 49만9649㎡ 중 17.5%인 8만7679㎡만 분양됐다. 올해 2분기 말까지도 분양 면적의 43%에 불과한 20만7000㎡ 규모만 분양을 마쳤다. 이마저도 분양계약을 한 16개 업체 중 6개 업체만 가동되고 있다. 고용인원은 92명으로 당초 보령시 예상의 15%에 불과하다.
보령시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금리가 가파르게 올랐고, 공장을 짓는 데에 필요한 건축자재 가격이 뛰면서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향후 금리가 안정되면 분양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웅천산업단지의 한 입주업체는 보령시의 말 바꾸기도 저조한 분양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건어물업체인 파란해의 장경석 대표는 "당초 수도권에서 웅천산업단지로 이전하면 중소기업은 토지 매입비의 30%, 시설 투자비의 14%를 지원한다고 했지만 나중에 말을 바꿨다"며 "보령시가 마음대로 지원 조건을 바꿨다는 소문이 퍼지며 입주 의향이 있던 기업도 이를 철회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가락동 수출센터에 있던 파란해는 사업확장을 위해 공장 이전을 검토하던 중 웅천산업단지를 알게 됐고 보령시 직원이 직접 사무실로 찾아와 이전 혜택을 안내했다. 장 대표는 "당시 지원 조건을 계약서에 명시해달라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해서 여러 차례 구두로만 약속했는데 이를 믿은 것이 화근"이라며 "공장을 70% 이상 지은 시점에서 지원조건이 전체 면적이 아닌 건폐율, 즉 건물면적 기준이라고 말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이 탓에 파란해는 전체 부지 9000㎡가 아닌 공장건물이 들어선 4600㎡를 기준으로 보조금을 받게 됐다. 장 대표는 "계약 당시에는 17억800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8억원 수준으로 줄었다"며 "시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보령시는 "소송이 진행 중인 사항으로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답변을 피했다.
97개 산단은 분양실적 0, 미분양에도 계속 지었다
경북 울진에 있는 죽변해양바이오 농공단지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울진군은 2000년대 초 해양바이오산업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면서 산업단지 조성에 착수했다. 당시 지역의회에서 "성공사례가 없다" "사업계획이 없다" 등 우려가 나왔지만 2016년 8만3000㎡에 달하는 산업단지가 출범했다. 현재 성과는 어떨까. 올해 2분기 기준 산업단지 미분양률은 70%에 달한다. 입주업체는 단 6곳인데 실제 운영되는 곳은 5곳뿐이다. 근로자는 40명으로, 고용창출 효과도 미미하다. 각종 세제감면 혜택을 내걸고 해양바이오와 무관한 업종까지 입주를 허용했지만, 미분양 문제 해결은 요원한 상태다.
11일 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전국의 산업단지는 1315개, 지정된 면적은 14억5482만㎡에 달한다. 분양 면적 6억1922만㎡ 중 4%가량인 2449만㎡가 입주기업을 찾지 못해 미분양됐다. 여의도(450만㎡)의 5.44배에 달하는 산업단지가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주인을 찾지 못한 산업단지 면적은 지난해 3분기 2082만㎡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었지만 이후 올해 2분기 2499만㎡로 9개월 만에 367만㎡의 미분양 부지가 더 생겼다. 같은 기간 26개의 산업단지가 새로 조성됐다. 미분양 부지를 그대로 남겨둔 채 새로운 산업단지를 계속 지었다는 뜻이다. 전국에 조성 중이거나 조성 완료된 97개 산업단지는 토지를 단 한 곳도 분양하지 못했다.
지난달 31일 대전산단. 가로등이 없어 산단 전체가 컴컴한 모습이다. 사진=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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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산업단지를 짓는 데에만 몰두하면서 기존 산업단지는 늙어가고 있다. 올해 6월 기준으로 착공일로부터 20년이 경과한 노후산업단지는 전국에 487곳에 이른다. 1315개 전체 산업단지의 37%가 20년이 지난 산업단지다. 지난달 말 대표적인 노후 산업단지인 대전산업단지를 찾았다. 퇴근 시간인 6시께 대전산업단지는 가로등이 거의 없어 산업단지 전체가 컴컴했다. 도로는 주차된 화물차와 승용차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가뜩이나 어두운 길을 막아선 화물차 사이로 위태롭게 지나고 있었다. 산업단지에서 화물차 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모씨(68)는 "산업단지 도로는 새벽까진 화물차가, 이후에는 출근한 직원들의 승용차가 차지하고, 곳곳에는 폐업한 회사의 화물차가 방치돼 있다"며 "내가 33년 근무했는데 이 상황이 과거와 똑같다"고 했다.
산업단지의 미분양과 노후화 등 여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년 전인 2005년 산업단지공단이 발간한 '산업단지 현황 및 정책과제' 보고서도 "지역별 수급불균형과 기반시설 노후화 및 난개발로 인한 단지환경 악화 등 대내외 산업환경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점은 2024년 현재도 반복되고 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보령·대전=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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