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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민주당이 주장해 온 '정치적 올바름(PC)'에 대한 강한 역풍을 꼽을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21년 '트랜스젠더의 날'을 선포하며, 생물학적 성 정체성 보다 개인이 선택한 성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민주당 강세 지역인 미국 캘리포니아주(州)는 동성애 관련 내용이 포함된 교과서를 공립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동성애 교육을 허용했다. 역시 민주당 우세 지역인 뉴욕주에서는 남녀 모두가 이용 가능한 '성중립 화장실'이 공공시설을 포함해 곳곳에 비치돼 있다. 이처럼 캘리포니아와 뉴욕은 사실상 미국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곳이지만, 이 지역에 거주하는 유권자 중 상당수가 이 같은 PC주의를 불편해한다는 점이 이번 대선에서 드러났다. 캘리포니아에서 트럼프를 선택한 유권자는 39.6%로 4년 전보다 5.3%포인트 상승했다. 뉴욕주에서도 트럼프 득표율은 44.8%로 같은 기간 무려 7%포인트나 껑충 뛰었다. 트럼프의 전국 득표율이 4년 전 대비 3.7%포인트 높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 2개 주에서 트럼프의 지지율 상승세는 다른 주를 크게 웃돌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내 만연한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감 또한 트럼프 당선의 주된 동력이었다. 미국 ABC 뉴스 등 주류 언론들은 이른바 트럼프의 막말 등을 대서특필하며 트럼프에게 '이상한 사람' 프레임을 씌우기 바빴다. 급기야 바이든은 트럼프 지지자들을 '쓰레기'라 일컬었다. 트럼프 특유의 즉흥적이고 거친 언사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격(格)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에 대응해 환경미화원 복장을 하고 쓰레기 트럭에 올라타며 바이든의 발언을 풍자하는 등 특유의 너스레로 대응했다. 또 인권이라는 가치를 내세우며 이민 문제에 너그러운 행보를 보인 민주당과는 달리, 이상보다는 미국인이 우선이라며 이민자 문제에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트럼프가 공화당 내에 만연한 엘리트주의 혁파에 나선 것도 지지세력을 넓히는 데 도움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동 분쟁과 같은 이슈에서 트럼프는 철저한 현실주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강력한 군사력에 기반을 둔 미국 패권주의에 경도된 기존 공화당 주류와는 다른 입장이다.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 '숨은 대통령'이자 네오콘(신보수주의)의 상징이라고도 불렸던 딕 체니 전 부통령이 해리스를 지지한 이유 또한 공화당 주류와 맞섰던 트럼프에 대한 반감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 밖에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바이든 정부에서 심각해진 인플레이션과 양극화 또한 트럼프 압승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40년 만의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미국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반면 빅테크와 월가 엘리트들은 시장에 넘쳐나는 돈으로 투자를 받거나 이자 장사를 하며 배를 불렸다. 미국 경제의 호황만 가리키는 대외 지표 속에 숨겨진 양극화 심화가 트럼프를 재선으로 이끈 셈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미국 주류 언론들은 이 같은 미국 내 밑바닥 민심은 도외시 한 채 '해리스 당선'이란 보고 싶은 현실에 집중해 온 건 아닌지 모르겠다. 트럼프는 PC주의나 엘리트주의에 대한 미국인들의 피로감을 십분 활용했다. 경제, 이민 등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최우선순위에 뒀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캠페인 구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마가)로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트럼프는 132년 만에 백악관을 재탈환한 대통령으로 절반이 넘는 미국인이 그에게 표를 줬다(득표율 50.5%). 마가를 앞세운 '트럼피즘'은 이제 미국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이 됐다. 트럼프 다음은 더욱 강력해진 제2의 트럼프일지 모른다. PC주의, 세계의 해결사 역할을 거부하고 국익을 최우선에 놓는 달라진 미국을 상대로 우리도 장기적인 대미 전략을 새로 짜야 할 때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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