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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 (월)

[앵커칼럼 오늘] 대통령 달라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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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은 그렇게 시작합니다. 어둠을 벗어나, 독자를 눈부신 신천지로 인도합니다.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어둠과 절망을 암시하며 시작합니다. 독자를 참혹한 아픔으로 이끕니다.

우리 대통령들의 사과, 명(明)과 암(暗)이 엇갈렸습니다.

아들의 비리에 거듭 "참담하다"고 했습니다. 형이 구속되자 고개를 떨궜습니다.

"제가 대신 벌을 받을 수 있다면…"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차마 고개를…"

박근혜 대통령은 변명했습니다.

"최순실은 선거 때 의견을 듣는 다양한 사람 중의 하나다."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에게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입니다."

'대국민 담화'를 스스로 '국정 브리핑' 이라고 불렀습니다. 시간을 많이 줄여, 성과보다 앞으로 할 일에 집중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김건희 여사 문제와 관련해 "국민들께 걱정을 끼쳐 드린 것은 무조건 잘못" 이라고 했습니다.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민심에 더 가까이 가는 길 복판에서 멈췄습니다. '무조건'에 '조건'이 붙었습니다.

"대통령을 도와야 하는 입장이다" "국정 관여라고 할 수 없다" "침소봉대 악마화시켰다" "특검법은 정치 선동, 인권 유린이다" "대외 활동은 해온 기조대로 하겠다"…

'명태균 녹취'와 관련해서는 거두절미했습니다. "부적절한 일도, 감출 것도 없다" "공천을 왈가왈부할 수 없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거기서 나온 게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입니다.

'성공을 거두려면 수많은 실패 요인을 피해야 한다.'

대통령은 그간 김 여사 문제에서 실패 요인만 골라 가는 듯한 행보였습니다. 거기서 시원하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개론은 괜찮은데 각론을 너무 깊이 팠습니다.

"대통령이라는 것은 변명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11월 7일 앵커칼럼 오늘 '대통령 달라졌지만…' 이었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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