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 물건을 공격에 이용…규탄 없으면 위험한 선례 될 것"
레바논 주민들이 폭발물을 심은 것으로 의심되는 무선호출기가 폐기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레바논 정부가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소행으로 지목된 자국내 무선호출기(삐삐) 연쇄폭발 사건과 관련해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에 이스라엘을 제소했다.
6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무스타파 바이람 레바논 노동부 장관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사무국에서 기자들을 만나 전날 ILO에 제소장을 공식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전쟁·분쟁 방식은 국제인권법을 회피하려는 많은 이들에게 이러한 전쟁 방식을 채택할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레바논에서는 지난 9월 17∼18일 삐삐와 무전기 수천개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해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레바논 당국은 식료품점과 거리, 집안 등 장소를 불문하고 폭발이 이어지면서 어린이 두 명을 포함해 최소 37명이 숨지고 약 3천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해외정보기관 모사드의 소행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해 온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휴대전화 도·감청을 우려해 삐삐 사용을 장려하자 유럽 소재 유령회사를 통해 폭발물을 심은 삐삐를 대량으로 팔아치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삐삐 연쇄폭발 사건 직후 레바논 내 헤즈볼라 군사시설을 겨냥한 공세를 본격화했고 같은 달 말부터는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댄 레바논 남부에 지상군을 투입, 헤즈볼라 소탕전을 벌이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공세에 앞서 헤즈볼라의 지휘·통신 체계를 마비시킬 목적으로 삐삐를 원격 폭파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스라엘을 겨냥한 헤즈볼라의 적대행위와 무관한 민간인 상당수가 연쇄 폭발에 휘말려 죽거나 다쳤다는 점이다.
헤즈볼라는 단순한 무장단체가 아니라 레바논 지역 사회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정치 세력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그런 까닭에 전투원 외에도 헤즈볼라가 운영하는 보건기관이나 언론사 등에 취업한 일반 노동자가 상당수인데 이런 이들도 삐삐가 터지면서 피해를 봤다는 게 레바논 정부의 지적이다.
바이람 장관은 "일터에 있던 이들이 지니고 있던 삐삐와 무전기가 갑작스레 폭발했다"면서 "규탄받지 않는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선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 쓰이는 물건이 위험하고 치명적인 것으로 변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소)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는 인간 관계를 겨냥하고 더 많은 분쟁을 낳는 이런 위험한 접근법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ILO 대변인은 레바논 정부의 제소에 대해 알지 못하며, 이를 통해 어떤 시정 조처가 이뤄질 수 있을지도 당장은 밝힐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레바논 내 삐삐 연쇄폭발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스라엘은 관행적으로 타국 영토에서 벌인 작전에 대해선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NCND) 입장을 취해왔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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