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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 (목)

무인카페에 두고 온 열네 살 아이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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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최은경] "엄마, 빅뉴스야!"

"뭔데, 뭔데?"

"그러니까, 우리 반(중학교 1학년) 어떤 남자애가 내 친구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는데..."

"했는데?"

"알고 보니 그 남자애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대, 사귄 지 일주일 됐대!"

"에? 뭐 그런 일이 다 있어."

"그치, 그치. 그래서 나 내일 아침 7시에 학교 가야 해."

"에?? 갑자기, 왜?"

"이 상황을 어떻게 할 건지 친구들이 같이 이야기 하재."

만나서 이야기 할 시간이 등교 시간 전 밖에 없는 아이들(하교하면 아이들은 다 학원으로 흩어진다). 그렇게 그다음 날 아침. 아이는 6시 반에 일어나서 앞머리만 재빠르게 감고 곱게 롤을 만 뒤 집을 나섰다.

"야, 체육복만 입고 가면 추워. 뭐 하나 더 걸치고 가."

"아니, 난 괜찮은데..."

괜찮다는 아이를 괜찮지 않은 마음으로 보낸 뒤 나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추워서 감기나 걸려봐라. 이렇게 말하나 마나 결과는 뻔하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데려갈 거다. 그러면서 말하겠지. "그러니까 엄마 말 들었으면 좋잖아, 왜 추운데 외투를 안 입고 나가서 감기에 걸려." 오랜 대기 끝에(이게 제일 힘들어) 진료를 끝내면 처방전 받고 약국에도 가겠지. 약 먹을 때마다 "약 먹기 싫은데..." 하는 투정을 들어줘야 할 거고. 그 꼴이 너무너무 보기 싫겠지만 나는 또 그렇게 며칠을 보내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말이다. 나는 병원에도 가지 않고, 고로 약국에도 가지 않고, 고로 듣기 싫은 소리를 듣는 대신 이게 내 아이 입에서 나오는 소리인지 믿기 힘들 만큼의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붙잡아두고 싶은 장면이다.

베이비뉴스

보통 신용카드만 사용이 가능하고, 현금 결제가 되지 않는 무인카페 시스템. 신용카드가 없는 어린 아이들은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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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놀라운 이야기를 하나 해줄까?"

"왜, 또 친구들이 안 나왔어?"

"헉, 어떻게 알았어? 전화하니까 에이는 그때 일어났고, 삐는 똥 싸고 있대."

"그래서 너 뭐했는데? 아침에 추웠는데..."

"학교 근처 무인카페 갔어."

"아이고, 거 봐. 엄마가 춥다고 했잖아. 그래도 생각을 잘했네."

"그치, 그치. 내가 센스가 있다니까."

"그래서 거기 있다가 학교 갔어?"

"응, 그런데 나는 신용카드가 없는데 무인카페는 현금결제가 안 되더라. 음료수 하나 사서 있고 싶었는데."

"그냥 있다가 왔어?"

"응, 그런데 2천 원을 두고 나왔어."

"돈을? 왜?"

"카페를 이용했는데 그냥 나오기가 그렇잖아."

"아이고... 거기에 이천 원을 두고 나오면 그게 주인에게 가려나?"

"그래서 내가 '현금으로 음료를 뽑을 수가 없어서 그냥 돈만 두고 왔다'라는 내용의 편지도 써서 화단 같은 곳에 넣어 놨어. 그러면 사장님이 CCTV로 보지 않으셨을까?"

"우와, 우리 딸... 대견하고 기특하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후훗... 내가 좀 그렇지."

"그래도 음료수도 못 먹은 건 좀 아쉽긴 하다."

아이 말을 듣고 무인가게에 대해 다룬 여러 뉴스들이 떠올랐다. 대부분은 눈속임으로 계산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훔쳐 간다는 이야기. 드문드문 양심적으로 계산을 하거나 불가피한 이유로 계산이 어려운 경우 다양한 방법으로 대처한 일 등이었다. 내 아이처럼 무인카페에 가서 앉았다 오면서 돈을 내고 왔다는 경우는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지만 '요즘 아이들' 문화를 생각하면 크게 대단한 일도 아닌 듯싶다. 저작권에 민감하여 불법다운로드 영화를 보지 않고 음원도 불법다운로드 받지 않으며 유튜브나 오티티를 '구독하는' 세대니까 말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엄연히 공간을 쓰고 나온 건데 그냥 나오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던 것은 어쩌면 또 당연한 일.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얼마 전에 본 예능 '내 아이의 사생활'에서도 배우 박정철의 딸 다인(초1)이가 무인카페에 갔다가 테이블 아래로 쏟아져 있는 빨대를 정리해 두고 나오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라면 어땠을까. 잠깐 있다 나오는 건데 굳이 비용을 치르려고 했을까, 내가 쏟은 물건도 아닌데 굳이 치우려고 들었을까. "당연히 그렇다"라는 대답이 단번에 나오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쓰는 공간임을 인식하고 나만을 생각하지 않는 두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도 배우는 게 많은 시간이었다. 근데 카페 사장님은 정말 그 돈을 발견했을까? 발견하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모쪼록 아이의 마음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편집기자로 일하며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성교육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일과 사는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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