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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트럼프 당선에 정세현 "윤석열, 외교안보 참모 싹 다 바꾸고 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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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미국 제47대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이 확정됐다. 그는 1951년 제정된 미 수정헌법 22조 "누구도 3회 이상 대통령직에 선출될 수 없다"는 조항에 따라 이번에는 4년 임기를 끝으로 물러나야 한다. 이에 트럼프의 대외 정책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장 관심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이 재개될지 여부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지난 2018년 역사상 최초로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일정 부분 합의도 도출했다. 하지만 2019년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양측은 이후 관계 개선에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헀고, 이는 북한 핵과 미사일의 고도화로 이어졌다.

이에 선거 전부터 트럼프가 당선되더라도 6년 전과 달라진 북핵 및 미사일 수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변화된 국제정세 등을 고려했을 때 북한이 미국과 회담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과 대담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유세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친밀함을 과시했다. 지난 7월 공화당 후보 수락 연설에서는 김정은과 잘 지냈다면서 야구 경기를 보러 가자고 말하기도 했다. 이건 김정은을 미국에 초청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트럼프 입장에서도 북한과 관계개선은 나쁜 카드가 아니다. 북미관계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끌고 나가면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계속 가져갈 수 있다는 측면이 있다"며 트럼프의 대화 제의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트럼프는 또 김정은에게 이미 많은 핵무기를 가졌다면서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건 핵을 포기하게 만들겠다고 해석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핵 보유를 인정하겠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핵 보유를 전제로 한 북미 협상의 의사가 있다고 신호를 보낸다면, 또 트럼프 집권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경우 러시아에 파병해서 받아내려고 했던 경제적 보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김정은은 미국에 이를 요구하면서 협상에 나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북미 간 협상이 진전된다면 그 과정에서 남한이 사실상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윤석열 정부가 고립에서 벗어나려면 일단 외교 안보 참모들을 교체해야 한다. 국가안보실뿐만 아니라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개각해서 트럼프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물론 윤석열 정부는 지금 구성원을 그대로 둘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다면 이건 한국에 더 큰 재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며 "트럼프의 미국이 이전과 똑같다고 착각하고 북미 관계 개선을 방해하려 한다면 외교적으로 고립된다. 그에 따른 재앙이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은 자명하다"고 우려했다.

대담을 가진 박인규 상임고문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이후 트럼프 정부에서 국제관계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트럼프 당선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정리되고 북미관계는 개선될 가능성이 있지만, 한미관계는 오히려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 트럼프는 대폭 상승을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가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박 고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흐름을 보면 직후에는 냉전이었다가 1990년대 이후에는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였고 2017년부터 다극화로 진입했다는 분석이 있다. 일극체제 이후 다극화가 되기까지 한국의 국가적 위상이나 역량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있는데, 미국만을 바라보는 한국의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 같다"며 미국의 대통령 변화가 어떻게 되든 한국 나름의 대외 정책을 확고하게 가져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담은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사)한국통일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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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팜비치 컨벤션 센터에서 지지자들에 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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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결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국내 진보 진영에서는 지난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당시를 기억하며, 당시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북미 간 핵을 둘러싼 협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더라도 지난 2018년과 2024년 현재 북한의 핵 고도화 수준이 달라졌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협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김정은과 만날까? 북미 관계는 어떻게 될까?

정세현 :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유세를 하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친밀함을 과시했다. 지난 7월 공화당 후보 수락 연설에서는 김정은과 잘 지냈다면서 야구 경기를 보러 가자고 말하기도 했다. 뉴욕 양키스나 미시간주 프로야구 개막 경기를 보러가자고 했는데, 이건 김정은을 미국에 초청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트럼프는 또 김정은에게 이미 많은 핵무기를 가졌다면서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건 핵을 포기하게 만들겠다고 해석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핵 보유를 인정하겠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물론 트럼프가 다가간다고 해서 김정은도 2018년처럼 낭만적인 꿈을 꾸면서 접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미국에 한 번 뒤통수를 맞지 않았나. 하지만 김정은은 트럼프가 비확산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김정은 입장에서 미국으로부터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면 이는 인도나 파키스탄, 이스라엘과 유사한 핵보유국 지위를 공인받는 효과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대내 통치에도 도움이 된다고 볼 것이다.

국가정보원에서 김정은의 경호가 강화된 것이 암살 위험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이보다는 우상화의 전조라는 해석이 더 적절해 보인다. 김정은이 집권한지 이미 10년이 지났고 본격적 우상화를 시작할만한 시점이다.

그런데 우상화를 하려면 뭔가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미국으로부터의 핵 보유국 지위 인정에서 찾을 수도 있다. 북한 내부 사안으로는 우상화를 할 수 있는 명분이 좀 약하다. 그동안 살림집도 많이 짓고 매년 20개 지역을 대상으로 10년 안에 현대적인 지방산업공장을 건설한다는 이른바 '20X10' 정책도 하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북한 내부 사안만으로 우상화는 어렵다. 그런데 트럼프와 협상을 통해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 김정은은 북미 정상회담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핵 보유를 전제로 한 북미 협상의 의사가 있다고 신호를 보낸다면, 또 트럼프 집권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경우 러시아에 파병해서 받아내려고 했던 경제적 보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김정은은 미국에 이를 요구하면서 협상에 나설 수도 있다.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비핵화와 북미 수교,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등 세 가지 사안을 동시에 추진하는 이른바 '삼위일체'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만약 양측이 다시 만난다면 비핵화는 비확산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수교의 경우 북한은 미국과 베트남이 수교할 때 미국이 베트남에 대한 경제 제재를 풀고 지원했던 것을 언급하며 자신들에게도 이를 적용해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세계은행(WB)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에서 장기로, 저리로 차관을 들여올 수 있게 미국이 좀 움직여달라는 요구도 있을 수 있다.

즉 비확산, 북미수교,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등 삼위일체에서 WB나 ADB에 기반한 지원까지 포함하는 4가지를 추진하자고 북한이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입장에서도 북한과 관계개선은 나쁜 카드가 아니다. 북미관계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끌고 나가면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계속 가져갈 수 있다는 측면이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 6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체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동쪽으로의 진출을 시작하려고 할 것이다. 트럼프가 이를 막으려면 북한과 어떻게든 관계를 맺어야 한다. 따라서 트럼프도 북한과 접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박인규 : 미국에서 봤을 때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마무리가 중요하고 실제 김정은과 트럼프가 만나려면 전쟁이 종료된 상황이 훨씬 유리한데, 트럼프가 유세 때 공언한대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빨리 종결시킬 수 있을까?

정세현 :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전쟁은 끝난다. 트럼프가 본인이 집권하면 이틀만에 끝내겠다고 하는데, 이틀은 좀 아닌 것 같지만 두 달 안에 끝날 수도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 파병에 대해 연일 언론을 활용해 분위기를 띄웠는데,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도 미지근한거 보니, 서방은 우크라이나에서 손을 떼고 싶어하는 것 같다.

박인규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남부 영토의 20% 정도를 점령했지만 정전지대를 만들어 놓고 휴전할 수밖에 없는데, 푸틴이 이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세현 : 그 문제에 대해서도 트럼프가 중재안을 낼 것으로 보인다. 또 트럼프가 푸틴과 가깝다고 하니 유연하게 협상을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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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현(오른쪽) 전 통일부 장관과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 ⓒ프레시안(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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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 2022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의 경우 트럼프가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바이든이 1년 뒤에 할 수 있었는데, 트럼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본인이 일으킨 것도 아니니 부담이 덜할 것 같긴 하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이후 트럼프 정부에서의 국제관계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정리되고 북미관계는 개선될 가능성이 있지만, 한미관계는 오히려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 트럼프는 대폭 상승을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가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정세현 :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이 올해 1조 5192억 원, 5년 유효기간으로 타결됐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를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중간에 합의 깨고 1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3조 원 이상의 분담금을 요구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협상을 하면 100억 달러가 아니라 50억, 20억 달러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한국은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일 것 같다.

그런데 트럼프와 협상을 다시 하더라도 현재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면서 우리 입장을 관철할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이 예전처럼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해 있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만 바라보지 않는다. 북한의 남침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2008년 평택으로 내려가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2006~7년에 남북 국력을 냉철하게 비교‧분석한 미 국방부와 백악관 쪽에서 주한미군 사령관이 가지고 있는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은 돌려줘도 문제없을 것 같다면서 이러한 조치를 취하게 됐다.

사실 전작권을 미국이 가지고 있으면 주한미군의 작전 범위가 한국으로 묶이게 된다. 오히려 미국이 전작권이 없어야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을 가질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인도양에 분쟁이 있을 때 주한미군 일부가 거기에 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17년 전에도 미국은 한국에 있으면서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볼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방위비 분담금을 상승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자기들이 한국을 지켜준다는 점을 이야기하는데, 이건 잘 계산해봐야 한다. 주한미군이 꼭 우리 때문에 한국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여기 있음으로 인해 나오는 가성비를 계산하자고 해야 한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통해 군사‧정치‧경제적 이득을 챙기고 있다.

물론 우리가 분담금을 안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트럼프가 말한대로 100억 달러 씩 줄 만한 상황도 아니다. 트럼프가 100억 달러를 요구할 때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논리를 동북아 지역에서 주한미군의 역할과 비용, 그에 따른 미국의 이익 등을 모두 살펴서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

박인규 : 분담금 문제뿐만 아니라 트럼프가 해외 물품에 대한 관세를 올리고 중국과 무역 대결을 심화시킬 경우, 우리가 입을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세현 : 트럼프는 중국과 '디커플링'(decoupling, 관계 끊기)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결국 미국이 요구하는대로 디커플링을 계속 받아들이면서 수출과 무역 수지를 계속 줄여갈 것인지 정부가 선택해야 할 상황에 놓일 것이다. 물론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이 한국이 경제적 안보 차원에서 살아남는 길이라고 믿는다면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박인규 : 북미 간 협상이 시작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료되면 미국만 바라보며 러시아, 북한과 적대적으로 있었던 남한만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세현 : 북핵 문제를 두고 북미 간 협상이 진전되면 북미 수교 하고, 그러면 평양에 미국 대사관 들어가고 워싱턴에 북한 대사관 들어가는 일이 늦지 않게 일어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금의 한국은 '통미봉남'(通美封南, 남측을 배제하고 미국과만 대화함)으로 인해 사실상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경우 우리가 핵 무장 문제를 어떻게 할지도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술핵을 재배치할지, 핵무장을 할지 등등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이러한 혼란 속에 윤석열 정부의 외교 안보팀 입지는 굉장히 좁아지고 한국은 고립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내부정치 때문에 바쁠 거고, 중국도 북미관계 개선을 방해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 입장에서는 북미관계가 좋아지면 외교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다. 미국 대사관이 평양에 들어오면 미국은 휴민트를 활용해 마치 동북 3성을 손바닥보듯 들여다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중국이 북미 협상을 방해하는 단계까지 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가 고립에서 벗어나려면 일단 외교 안보 참모들을 교체해야 한다. 국가안보실뿐만 아니라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개각해서 트럼프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국제정세의 흐름이 이렇게 가고 있으니 여기서 최소한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트럼프 정부와 보조는 맞춰야 하지 않겠나.

물론 윤석열 정부는 지금 구성원을 그대로 둘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다면 이건 한국에 더 큰 재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구성원을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트럼프의 미국이 바이든의 미국과 똑같다고 착각하고 북미 관계 개선을 방해하려 한다면 외교적으로 고립된다. 그에 따른 재앙은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은 자명하다.

과거 조선 광해군은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등거리외교를 하면서 그들끼리 싸우는 전쟁의 화가 조선까지 넘어오게 하지 않으려했다. 하지만 이 시대가 끝난 이후 조선은 결국 후금에 굴욕적 항복을 했고 국민들도 엄청난 피해를 봤다. 외교를 잘못하면 이렇게 애꿎은 국민들만 힘들어지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끼리 관계를 강화하겠다고 하는데, 외교에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바보다. 외교는 가치가 아니라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가치를 추구했던 사람들이 인조 주변에 있던 서인들이다. 이들이 불러온 불행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쉽지 않겠지만 변화된 판에서 적응해야 한다. 그 첫걸음으로 일단 내부 외교안보 참모부터 갈아야 한다. 대통령실의 국가안보실부터 먼저 개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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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지난 10월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등 현안에 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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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뜻대로만 하면 나라 망해…독자적 정책 펼쳐야

박인규 : 어쨌든 미국 대통령은 바뀌었다. 앞으로는 남한 정부의 대응이 중요해질 것 같은데, 관료들의 미국중심적인 사고는 여전한 것 같다.

정세현 : 아무리 동맹이라도 미국을 설득해야 할 상황도 있는데, 지금 정부의 관료들은 미국의 생각을 미리 알아서 정책을 조정하는 것이 한미 동맹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외교부나 산업자원통상부 관료들이 미국과 협상할 때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

개성공단을 시작할 때 공단에 진출할 기업들이 가지고 가야하는 기계가 대적성국교역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있어서 미국의 허가 없이 들어가지 못하니 허락을 받으라고 당시 외교부 통상국 통해서 부탁했는데 미 상무부로부터 거절당해서 오더라. 그래서 조명균 당시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을 보냈는데 또 거절당했다. 삼고초려라도 해서, 간절하게 부탁해서 허락 받아오라고, 이래야 한국의 중소기업들도 살 수 있다고 해보라고 했고 결국 허락을 받아냈다.

1960년대 미일 간 안보논쟁 일어났을 때 일본 언론들은 미국이 자꾸 자신들을 찍어누르면 반미감정이 커진다고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이걸 가지고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냈다. 약자의 공갈 외교가 이렇게 무서운 측면이 있다.

동맹이지만 시키는대로만 할 수는 없다. 우리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도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며 적극적인 자세로 협상에 임하면 미국의 일방적 투자요구나 대중 수출 규제 등을 피해가는 것은 가능하다. 하다못해 우리 경제가 더 좋아져야 너희들 무기를 사지 않겠냐는 논리를 가지고라도 협상해야 한다. 미국 뜻대로만 하면 나라 망한다. 물론 지금 그런 순간에 오긴 했지만.

박인규 : 2차 세계대전 이후 흐름을 보면 직후에는 냉전이었다가 1990년대 이후에는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였다가 2017년부터 다극화로 간다는 분석이 있다. 일극체제 이후 다극화가 오기까지 한국의 국가적 위상이나 역량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있는데, 미국만을 바라보는 한국의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정세현 : 이 정부로 놓고 보자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랑 일본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윤석열 대통령을 자꾸 그쪽으로 끌고 가니까 국가의 우선순위가 미국, 일본, 한국 순이 돼버렸다. 물론 국력으로 보자면 그 순서가 맞긴 한데, 이러한 논리로 가면 우리는 일본 밑으로 들어가게 돼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가 이러한 경향을 만들어가는 데 주요한 구실이 되고 있기도 하다.

냉전 시기 한국은 미국이 하자는대로 했고 이후 미국 일극체제에서는 소련, 중국 등과 수교하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도 가입하는 등 성과가 있었다. 그런데 2008년 이명박 이후 박근혜 등 보수 정권이 들어가면서 한국을 미국 밑으로 넣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한국 국력이 높아지기도 했기 때문에 현재 한국은 다극화된 세계에서 운신 폭을 넓힐 수 있고 그럴 수 있는 능력도 있다. 예를 들어 미소 냉전기에 우리를 필요로 하는 나라가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우리의 영향력도 커졌고 필요로 하는 나라도 많다. 그렇다면 외교 노선도 등거리 외교를 하면서 국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독자적인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중재 역할을 할 수 있고 많은 나라들에서 그걸 원하기도 하지만 한국이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

박인규 : 국내에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1991년 이후 미국이 주도한 세계화에 가장 큰 덕을 본 국가가 한국과 중국이라고 생각해서 미국 주도의 세계화가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세현 : 그런데 그렇게 미국이 오만하게 있는 사이에 중국이 치고 올라오고 있고 브릭스에 국가들끼리 모여서 미국 영향권 밖에서 살자고 하고 있다. 다극화 문턱에 있는 셈인데, 이렇게 바뀌어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지 궁리를 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그렇게 좋아하는 일본은 19세기 중반 미국의 위협을 느끼고 재빠르게 서양화.했다. 당시 중국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던, 조공도 바치지 못할 정도의 변두리 국가인 일본이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서양 문명에 올라타서 아시아의 주인이 될 꿈을 꾼 것이다.

물론 이걸 당시 일본의 주요 관리들이 시작하지는 않았다. 하급, 중급 사무라이들이 시작했는데 이러한 사회적 움직임도 필요하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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