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임기' 140년 만에 재연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선거 유세 중 총격을 당한 후 경호원에게 둘러싸여 단상을 내려오며 지지자를 향해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버틀러=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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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대선에서 패해 연임에 실패했던 도널드 트럼프(78) 전 대통령이 4년 만에 백악관을 사실상 다시 차지하며 미국 정치사의 새 장을 썼다. 1885년과 1893년 22대, 24대 대통령을 지낸 그로버 클리블랜드 이후 140여 년 만에 ‘징검다리 임기’를 보내는 역대 두 번째 대통령이 된 것이다. ‘고령 리스크’를 집중 공격해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 대선 후보 사퇴를 이끌어냈던 트럼프 당선자는 바이든 대통령을 제치고 역대 최고령 대통령 기록 또한 차지하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조카 메리 트럼프가 2024년 9월 12일 뉴욕에서 트럼프 일가의 비밀을 폭로하는 자신의 자서전을 주제로 북 콘서트를 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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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인 킬러가 되거나 패자가 될 뿐”
트럼프는 1946년 6월 14일 뉴욕시 퀸스에서 독일계 이민 2세 부동산 사업가 가정에서 3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후 뉴욕에서 아파트 임대업으로 성공한 백만장자 프레드 트럼프와 자선가 메리 앤 매클라우드 트럼프 슬하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트럼프는 사고뭉치였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중학교 동창들은 그를 ‘불량배’(bully)로 기억했고, 중학교 2학년 때 음악 선생님 찰스 워커는 “항상 관심을 필요로 하는 유형의 아이”라고 회상했다. 트럼프는 1987년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된 자서전 ‘트럼프: 거래의 기술’에서 “워커 선생님에게 주먹을 휘둘러 눈을 멍들게 했다”며 “거의 퇴학당할 뻔했다”고 적기도 했다.
자녀 교육에 엄격했던 아버지 트럼프는 그가 13세가 되자 뉴욕군사학교(고등학교)에 강제 입학시킨 뒤 일찌감치 후계자 교육을 시작했다. 트럼프는 아버지로부터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사람들만이 존재한다. 승자인 킬러(살인자)와 패자”라고 배웠다. 거래의 기술을 공동 집필한 토니 슈워츠는 “트럼프의 아버지는 매우 잔인한 사람이었다”며 “트럼프는 결국 ‘살인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미국 PBS방송에 말했다.
트럼프는 군사학교 생활을 즐겼고, 우등생이 됐다. 트럼프의 고교 동창인 샌디 매킨토시는 “트럼프는 철권 통치로 기숙사 생활을 지배했다”며 “우리는 옳은 일을 하지 않을 때 때리는 게 문화의 일부였다”고 회상했다.
트럼프가 폭력적 문화에 순응했던 건 그가 만 2세이던 해 동생 로버트 트럼프를 낳다 죽을 고비를 넘긴 어머니가 이후 트럼프에게 무심했던 영향이 적지 않다고 미 언론은 전한다. 트럼프는 6일(현지시간) 대선 승리를 선언하면서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감사와 사랑을 전했지만 어머니는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가족과 가까운 로 드뢰쉬는 “트럼프는 아버지를 경외했고, 어머니에게는 매우 초연했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밝혔다. 트럼프는 2007년 출간한 ‘싱크 빅’에서 “그게 내가 망가진 이유야. 나는 나를 강하게 밀어붙인 아버지가 있었거든”이라며 냉혹한 사업가의 아들로 사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토로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2005년 5월 뉴욕에서 제2 세계무역센터 건립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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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을 사업 성공 발판 삼은 트럼프
뉴욕 포덤대에 진학한 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로 편입해 경제학을 전공한 트럼프는 25세이던 1971년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고 ‘트럼프 그룹’으로 회사 이름부터 바꿨다. 아버지가 뉴욕 외곽 브루클린과 퀸스 지역에서 부동산 임대 사업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중심가 맨해튼의 고급 부동산 개발에 눈을 돌렸다. 자신의 이름을 딴 호텔·카지노·골프장을 잇따라 세우며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36세이던 1983년 뉴욕 맨해튼 중심에 거대한 주상복합빌딩 트럼프타워를 짓는 등 '트럼프 제국'을 완성해 나갔다. 미국 애틀랜타, 시카고, 라스베이거스는 물론 한국과 인도, 튀르키예, 필리핀 등 세계 각지에 트럼프 타워가 들어섰다.
하지만 1990년 부동산 침체로 위기에 직면했다. 트럼프는 1991년 애틀랜타의 트럼프 타지마할 카지노 파산 신청을 시작으로 2009년까지 모두 6차례 법원에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에 대한 파산을 신청했다.
물론 큰 피해 없이 회생했다. 정부 관리하에 구조조정 후 기업회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연방파산법 11조’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덕이다. 트럼프의 파산 기록을 분석한 뉴욕타임스는 2016년 “트럼프는 자신의 돈을 거의 내놓지 않고 개인 빚을 사업체에 떠넘기면서 월급과 보너스로 수백만 달러까지 챙겼다”고 지적했다.
미국 법원의 파산 판례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는 트럼프의 위기 탈출 전략은 2020년 대선 낙선 이후에도 빛을 발했다. 그는 지난 3월 트럼프 그룹의 자산 가치를 부풀려 허위 대출을 받은 혐의로 5억6,000만 달러(약 6,200억 원)의 벌금이 부과되면서 파산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면서 돈방석에 앉았다. 2021년 ‘1·6 워싱턴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로 엑스(X·옛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 사용을 정지당하자 직접 만든 SNS ‘트루스소셜’이 충성도 높은 지지층에 힘입어 주가가 폭등한 덕이다.
트루스소셜 모회사로 트럼프가 57% 지분을 소유한 트럼프 미디어의 기업가치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약 100억 달러(약 13조8,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2006년 3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NBC 방송의 백수 탈출 성공기 '어프렌티스'를 촬영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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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꿈 키우며 공화→개혁→민주→독립→공화당 오가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 전 공직 경험이 전무했지만 일찍부터 정치적 야망을 내비쳤다. 그는 1998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언제 대선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 “아마 아닐 것”이라면서도 “후보 경선에 뛰어든다면 내가 이길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2000년 대선을 앞두고 제3당인 개혁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4개월 만에 중도 포기했다.
1987년 처음 공화당 당원으로 등록한 이후 소속 정당을 다섯 번 바꾸는 등 좌충우돌했다. 2000년 민주당 당원이 된 이후 8년간 당적을 유지하다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를 지지하면서 다시 공화당원이 됐다. 그러나 2011년 독립당으로 갈아탔다 2012년 공화당원으로 재가입하는 등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트럼프가 가진 최고의 정치적 자산은 2004년부터 10년간 미 NBC방송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견습생)' 진행을 맡아 쌓아 올린 전국적 인지도다. 그는 2012년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밋 롬니 공화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며 때를 기다렸다. 롬니가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패하자 자신의 대선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상표 등록을 하며 대선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을 때만해도 초반 탈락을 예상하는 이가 더 많았다. 하지만 공화당 역사상 최다 득표를 기록하며 대선 후보로 선출됐고, 2016년 대선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대통령 부인·상원의원·국무부 장관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힐러리 클린턴을 극적으로 꺾고 4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2015년 6월 뉴욕의 트럼프타워에서 가족들과 함께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2015년 6월 뉴욕의 트럼프타워에서 가족들과 함께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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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도 가족 사업… 백악관 문고리 권력 된 자녀들
가족 기업을 일구며 대권을 잡은 트럼프는 집권 1기 당시 백악관 주요 보직을 가족으로 채웠다. 장녀 이방카를 수석 보좌관에 앉혔고,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선임고문으로 기용했다. 폴리티코는 큰아들 트럼프 주니어가 “명예 인수위원장으로 2기 행정부에서 배제할 (공직자) 명단을 작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를 대신해 트럼프 그룹을 이끌고 있는 차남 에릭은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지만, 가상자산 사업을 시작하기로 하면서 이해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온다. 트럼프가 미국을 가상화폐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약한 탓이다.
트럼프의 문고리 권력을 쥔 세 자녀는 모두 체코 출신의 스키 선수이자 모델인 첫 번째 부인 이바나 젤니치코바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트럼프는 한때 이바나를 “여자로서 나의 쌍둥이”라고 부를 정도로 신뢰했지만, 결혼 13년 만인 1990년 이혼했다.
트럼프는 1993년 배우 출신 말라 메이플스와 재혼해 티파니를 낳았지만 6년 만에 다시 이혼했다. 어머니와 함께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티파니는 트럼프의 정치 가업에 유일하게 발을 담그지 않고 있는 성인 자녀다.
24세 연하의 영부인 멜라니아는 트럼프의 세 번째 아내다. 슬로베니아 태생 모델 출신으로 2005년 트럼프와 결혼해 이듬해 늦둥이 배런을 낳았다. 18세가 된 배런이 최근 뉴욕대로 진학하자 미 언론은 펜실베이니아대를 선호하는 트럼프 집안의 전통에 벗어난 선택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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