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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 (목)

[문화와 삶]닭과 함께 늙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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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있을까? 40년 전,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는 학교 정문 앞에 좌판을 깔고 병아리나 메추리 등을 파는 이들이 있었다. 상자 안에 가득 담긴 채 삐약거리는 이 생명체들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귀여웠다. 한 마리에 500원, 당시에 아이스크림 다섯 개 정도의 가격이었다. 나는 가끔 어머니의 꾸중을 불사하고 구매를 감행했다. 한번은 병아리를 사다가 큰 사과상자 안에 작은 상자들을 넣어주고는 “이건 침대, 이건 책상” 하면서 집을 만들어 주었다. 마당이 없는 아파트에서 살았으므로, 상자만이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거주지였다. 하지만 잘해준답시고 넣어준 작은 상자에 걸려 넘어진 병아리는 다리가 부러졌고, 다음날 아침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하지만 꼭 그렇게 죽이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병아리가 ‘중닭’이 되어 털갈이를 할 때까지 함께 산 적도 있었다. 그쯤 되어선 어머니도 어쩔 수 없어서(내가 데려온 병아리를 먹이고 돌보는 건 결국 ‘집 안의 노동자’였던 어머니의 몫이었다) 아파트의 베란다가 그의 집이 되었다. 그러다 결국 마당이 있는 어느 곳으론가 보내졌다. 닭이 된 병아리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상상하기 어렵지는 않다. 이곳에서 닭의 운명이란 대동소이하지 않은가.

병아리에 대한 추억, 혹은 ‘살해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 건 김화용 작가의 전시 프로젝트 ‘집에 살던 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2020~)를 봤기 때문이다.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는 이 작품에서 김화용은 인간이 닭과 오리 등 가금류를 다뤄온 역사를 추적한다.

“닭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빛을 이끌고 새 시대를 알리는 신성한 존재였다. 특히 한반도 역사에서는 계유오덕(鷄有五德)이라 표현하며, 다섯 가지의 덕을 갖춘 상징이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된 작품소개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현재 그들의 삶은 어떠한가?”

김화용이 주목하는 건 초국적 자본주의가 닭을 어떻게 “효율적인 단백질 상품”으로 취급하는가, 그리하여 생명이 먹거리가 되어 식탁 위로 올라오는 과정이 어떻게 추상화되어 버리는가다. 덕분에 우리는 그들의 뼈가 퇴적층을 뒤덮을 정도로 닭을 (그리고 돼지와 소를) 먹어치우지만, 그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그 폭력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완벽히 무지한 상태로 머물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건 우리 인간이 동물의 존엄을 비웃고 마음껏 착취할 수 있는 하찮은 존재로 격하시켜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닭을 “머리가 좋지 않다거나 기세가 있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표현에 동원하고 음식을 위한 살덩어리로만 소비하며” 혐오스러운 존재, 그러나 내 입 안에서야 비로소 사랑스러워지는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이번에 공개한 다큐에는 삶을 영위하는 닭들이 등장한다. 가족이 함께 살면서 마음껏 흙 목욕을 즐기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닭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윤기 나는 털은 반짝였고, 주위를 살피는 눈은 영롱했다. 닭이란 저처럼 빛나는 동물인데 ‘닭장 같은 도시’에 모여 사는 우리들은 가장 빨리 배달되는, 가장 자극적인 야식으로밖에 닭을 상상하지 못한다.

최근 출간된 김다은, 정윤영이 쓰고 신선영이 찍은 <동물의 자리>는 인제 꽃풀소 달뜨는 보금자리, 화천 곰 보금자리, 제주 곶자왈 말 보호센터 마레숲, 새벽이생추어리 등 네 곳의 생추어리를 취재해서 사진과 함께 기록한 아름다운 책이다. 생추어리란 “안식처, 보호구역”이라는 뜻으로 축산동물, 산업동물이 상품의 위치에서 탈출해 비로소 생명이 될 수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한 정성과 노력이 깃들어가는 공간이다. “먹히지 않고 늙어가는 동물을 만나다.” 책의 부제에서 오래도록 머물렀다. 닭이 늙어갈 수 있는 존재임을 잊은 지 너무 오래됐다는 걸 깨달았다.

경향신문

손희정 | 문화평론가


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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