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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수)

[오늘의시선] 중증정신질환 이웃과 함께 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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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처럼 ‘가족, 보호의무자 규정’ 삭제 필요

초기 진찰·이송, 국가 책임 아래 진행해야

지난주 세계일보 지면엔 심층기획 ‘망상, 가족을 삼키다’라는 제목으로 8개월간 준비한 5회의 기사가 게재되었다. 10년간 존속살해와 미수 판결을 분석하여 최악의 상황을 다루었고 취약한 치료감호, 급성기치료 등의 제도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대안으로 희망을 모색한 깊이 있고 균형 잡힌 기획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환자, 가족, 전문가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현실을 우리 사회가 수면위로 떠올려 해결해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세계일보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아플 때 우리는 병원을 찾는다. 병을 알고 낫기 위해 간다. 진단과 치료 과정의 모든 단계엔 항상 환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내가 암에 걸렸을 때 수술과 완화요법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본인의 자기결정권이다. 치료할 수 있는 암 환자가 수술을 포기했다고, 뇌졸중이 올 확률이 높은 고혈압 환자가 약을 끊었다고 누구도 이를 강제하지도 않고 그럴 권한도 없다.

이러한 의료윤리의 핵심이 다르게 적용되는 딱 2가지 영역이 있다. 감염병과 중증정신질환 영역이다. 감염병과 중증정신질환만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검사하고 이송하고 치료할 수 있다. 감염병은 나도 위험하지만 내가 옮기면 다른 사람이 위험할 수 있다. 중증정신질환도 자살과 타해라는 위험이 특정한 시기에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생명을 위협하는 시기 우리는 압도적으로 검사하고 확진자를 이송하고 치료비를 전액 지원했다. 국민은 검사와 격리를 받아들였고 때로 소중한 개인정보까지 넘겼다. 소방, 경찰, 보건소를 비롯한 공무원, 그리고 의료인들이 본인 생명의 위협에도 이 모든 과정을 해냈다. 이 과정에서 가족이 동의서를 작성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중증정신질환 영역은 기획기사에서 지적하듯 여전히 이 모든 과정이 가족에게 맡겨져 있다. 그러다 보니 발견부터 늦다. 비자의입원을 가족이 이송하는 경우가 80%이다. 입원신청도 2명의 가족이 해야 한다. 경찰과 소방이 도우려 나서도 입원시킬 응급병상을 찾지 못해 종일 헤맨다. 겨우 입원을 했는데 담당 전문의는 외래환자와 60명의 입원환자를 보고 있다. 좋아져서 집으로 돌아와도 지역사회에서 갈 곳이 없어 집안에서만 지낸다. 의사로서 이 과정을 정성과 진심으로 이겨내는 당사자와 가족을 보면 놀랍고 경외감이 드는 때도 많다. 그러나 어느 날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기 시작하면 가족과 갈등은 폭발한다.

세계일보 기획기사가 분석한 존속살해와 미수 판결문 823건에서 절반 이상은 정신질환과 관련이 있었다. 재판부가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인정한 211건에서 약을 먹으며 치료가 확인된 경우는 5.9%에 그쳤다. 법 제도가 나아지면 치료하고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질환으로 매년 20건 이상 죽고 다치는 사고가 생기고 수십만 가족이 위기에 처하고 있다.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여러 정책은 이미 오래전부터 해외에서 시행해 왔고 근거가 충분하다. 우선 초기 진찰과 이송부터 국가 책임하에 진행해야 한다. 대부분의 나라는 가족뿐 아니라 누구나 중증정신질환으로 진료가 필요할 수 있다는 신청을 받으면 지자체 검토 후에 의료기관에서 진찰을 받게 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송은 경찰과 소방 또는 지자체가 계약한 민간이송기관으로 한정한다.

일본도 2000년대 중반 보호의무자제도를 삭제했다. 대만은 원래 없었다. 두 나라 모두 정신응급병상과 급성기병상은 많은 의료진을 투입하고 정신중환자실제도를 마련하여 격리와 강박이 필요할 수 있는 경우 전담 간호사가 별도로 돌보게 한다. 의료보험으로도 정신재활을 위한 서비스를 확대하고 지자체가 주거와 직업재활서비스를 늘려가고 있다.

우리도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통해 인권을 위한 기준은 높여 입원이 어려워졌지만 제반 대책은 제자리걸음이다. 여전히 가족을 보호의무자로 규정하고 있어 우선 개정이 필요하다. 당사자도 가족도 이웃도 모두 국민이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의 해결이 더딘 이유는 무엇일까? 중증정신질환의 편견과 차별로 본인과 가족은 이를 숨기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목소리를 내지도 못했다. 누구의 편견을 탓하기 전에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체계부터 마련해야 한다. 편견과 차별을 홍보로 없앨 수 없다. 실질적인 개선과 도움이 함께 갈 때 비로소 우리는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다.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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