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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화)

[앵커칼럼 오늘] 굳센 윗입술, 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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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다 굶어 죽을 거야!"

동물들의 식량 창고가 불타 버리자, 너구리가 나서 겁먹지 말라고 합니다.

"자, 자,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다들 윗입술에 힘을 넣고!"

'굳센 윗입술'(Stiff upper lip)이란 침착함, 의연함 입니다. 감정을 눌러 담담한 듯 분명하게, 할 말을 하는 용기입니다. 윗입술이 떨리는 건 두렵다는 표시이니까요.

"아빠가 늘 말했지. 작은 병정아, 곧게 서라. 윗입술을 단단히 물어라…"

시인 키플링이 열두 살 아들에게 써 준 시입니다.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비난할 때, 네가 냉정을 잃지 않는다면… 거짓된 자들이 제 무덤을 파느라 진실을 왜곡할 때, 네가 참아낼 수 있다면…'

"이 사람은 '오바마 판사'였어요."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를 트럼프가 노골적으로 비난하자 대법원장이 점잖게 한마디 했습니다.

"오바마 판사도, 트럼프 판사도 없다.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최선을 다하는 헌신적 판사만 있다."

민주당 안팎에서 사법부를 겨냥한 '이재명 대표 구하기'가 거침없습니다.

대북 송금 사건을 맡은 법관 탄핵 서명이 10만 명을 넘어섰답니다. 친명계 최대 계파는 무죄 탄원서를 모으고 있습니다.

판결이 임박한 두 재판에서 '사법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방탄' 토론회도 보란 듯 국회에서 연달아 열었습니다.

법원 국감도 온통 이 대표 재판 얘기뿐입니다. 그 소음을 뚫고 두 법원장의 답변이 귀를 잡아끕니다.

"법원을 믿고…조용히 좀 기다려 주시면 우리나라 전체가 좀 한 단계 더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 텐데…"

윤준 서울고등법원장은 "비감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행태 삼가 주시길 간곡히 부탁 드린다. 이러면 누가 법관 할 생각을 하겠느냐.'

김정중 서울중앙지법원장도 사건 당사자와 이해 관계인, 그리고 국민에게 당부했습니다.

'법원의 역할을 믿고 존중해 주시라.’

나직하고 차분한 목소리여서 더 묵직하고 진솔하게 다가옵니다.

바람이 사납게 흔들어댈수록 곧게 서는 사법부의 자존(自尊)을, 명시 마지막 구절로 대신합니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

10월 28일 앵커칼럼 오늘 '굳센 윗입술, 사법부'였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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