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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월)

회의실마다 ‘고객의 자리’ 배치… 소비자 대신 ‘고객’ 용어 첫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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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한류, K-헤리티지로] 〈6〉 생활가전-배터리 1위 LG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 헤리티지… “무슨 일하든 고객 존중 의지 담아”

구인회 창업주 “국민 필요한것 우선”… 가전-생필품 등 국내 첫 생산 행진

배터리 등 경쟁에 대응할 ‘가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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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래이, 가령 백 개 가운데 한 개만 불량품이 섞여 있다면 다른 아흔아홉 개도 모두 불량품이나 마찬가진기라. 아무 거나 많이 팔면 장땡이 아니라 신용 쌓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그들은 와 모르나.”

14일 경기 이천시 LG인화원 역사관. 이곳 1층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구인회 창업회장 흉상과 함께 바로 아래 놓인 어록패가 눈에 띈다. 구 창업회장이 LG그룹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해 출시한 화장품 ‘럭키크림’을 판매할 때 한 말이다. 하자 있는 제품을 고객에게 파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그의 단호한 의지였다.

1947년 창립부터 현재까지 LG그룹의 발자취를 한데 모은 역사관은 ‘고객을 향한 집념’이라는 LG 헤리티지의 보고(寶庫)다. 무엇이 국민, 고객을 위한 진정한 가치일까 끈질기게 고민하는 집념이다. 구 창업회장부터 구자경 회장, 구본무 회장, 구광모 대표 등 4대에 걸쳐 LG가 내놓은 ‘최초’ 기록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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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관 LG인화원 원장은 “기업의 이윤은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이념이야말로 선대부터 내려오는 LG의 헤리티지”라며 “LG 하면 대표적으로 ‘인화’를 떠올리지만 가장 밑바탕이 되는 경영이념은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라고 말했다.

● 최초의 라디오·선풍기·냉장고…‘일상의 최초’

“남이 미처 안 하는 것을 선택하라. 국민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것부터 착수하라.”

구 창업회장이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를 출범시킬 당시의 설립 정신이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LG는 전쟁으로 생필품이 부족한 한국에 칫솔, 빗 등 국내 최초의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며 나무 용품을 주로 쓰던 국민들의 일상을 바꿔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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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창업회장은 이후 ‘무엇이 또 국민 생활에 필요할까’ 고민한 끝에 1958년 LG전자 전신인 ‘금성사’를 설립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자공업회사다. 이듬해 11월에는 ‘금성사(GoldStar)’ 상표를 단 최초의 국산 라디오 ‘A-501’을 출시했다. 6·25전쟁 이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던 시대, 발 빠른 정보에 목말라하던 고객 목소리에 귀 기울인 결과였다. LG 관계자는 “구 창업회장은 당장의 이윤보다 고객들의 취향에 항상 더 큰 관심을 가졌다”며 “시대를 뛰어넘은 고객 가치 경영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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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는 이어 더위를 식혀주는 선풍기(1960년)와 에어컨(1968년), 식자재 보관 효율을 높인 냉장고(1965년), 새로운 문화를 선사한 흑백TV(1966년), 손빨래에서 해방시킨 세탁기(1969년) 등 ‘국내 최초’ 역사를 잇달아 써내려 갔다.

● 회의실마다 ‘고객의 자리’ 비워 둬

1970년 구자경 회장이 2대 회장에 취임하며 LG의 고객 중심 경영은 선진화된 시스템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구자경 회장은 당시 주로 쓰이던 ‘소비자’라는 말 대신 ‘고객’이란 호칭과 개념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대상이 아닌 ‘신경 쓰고 관리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경영이념도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라고 새롭게 정립했다.

구자경 회장은 또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업공개를 추진하며 투명 경영, 자율 경영 체제를 확립했다. 락희화학, 금성사 등 주요 계열사들을 주식시장에 공개한 시기도 이때다. LG 모든 계열사 회의실마다 한 자리씩 비워 두는 ‘고객의 자리’도 구자경 회장 때부터 시작됐다. LG 관계자는 “고객의 자리는 지금도 이어져 오는 전통”이라며 “무슨 일을 하든 항상 고객을 생각하고 모든 회의에서 고객 의견을 최고로 존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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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995년 취임한 구본무 회장은 ‘LG Way’(LG의 길)를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선포하고 ‘1등 LG’를 강조했다. 오늘날 LG의 상징인 얼굴 모양의 CI도 구본무 회장이 주도했다. 기업 심벌마크에 고객을 담은 것이다.

구본무 회장은 1995년 LG전자 평택공장을 찾아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반드시 고객을 위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고객 기반 기술을 바탕으로 LG그룹의 미래 먹거리 발굴에 착수한 것이다.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차전지 사업에 과감히 뛰어든 것이 대표적이다. LG는 1999년 국내 최초로 리튬배터리를 양산한 데 이어 2009년 세계 최초로 양산형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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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는 또 2009년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때 구본무 회장이 안주하지 않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은 덕분에 오늘날 디스플레이 사업 경쟁력의 핵심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자 분야에서는 구본무 회장이 2000년대 후반부터 집중한 전장(차량용 전기·전자장비) 사업이 이제 LG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돼 불경기에도 고성장하는 효자 사업이 됐다.

● 불확실성 극복할 차별적 가치 발굴 중

글로벌 생활가전, 배터리 등에서 선두주자로 올라선 LG는 최근 미중 갈등과 경기 침체, 인공지능(AI) 산업의 부상 등 불확실성에 둘러싸인 상황이다. 가전 시장은 중국을 비롯한 후발 경쟁 주자들의 도전과 소비 주기가 길어지며 새로운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배터리, 디스플레이 역시 시장 수요가 급변하고,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으로 1등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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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는 선대 회장부터 내려온 ‘고객 집념’을 통해 돌파구를 찾겠다는 전략이다. 구광모 대표는 최근 시작된 계열사 사업보고회에서도 그룹의 핵심 방향으로 삼은 ‘차별적 고객 가치’를 어떻게 실현하고 있는지를 집중해서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재우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LG는 다른 그룹보다 고객이라는 가치에 집중하며 다른 기업들이 발굴해 내지 못한 수익 기회를 창출해 낼 수 있는 경쟁력을 가졌다”며 “고객가치 경영이라는 구심점을 잃지 않으면 AI든 전기차든 새로운 분야에서 남들보다 우위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천=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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