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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 (일)

냄새 없이 처음 맛 그대로…김치, 이게 가능한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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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특화용 김치 ‘케이치’ 개발한 박윤경 대표

7가지 핵심 기술 적용, 냄새·팽창 단점 보완

경향신문

국내 최초로 맛이 변하지 않는 김치를 개발한 스티븐푸드테크 박윤경 대표가 15일 서울 강남구 더스티븐 걸처라운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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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김치 한번 드셔보세요.”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강남의 한 갤러리 라운지. 눈앞에 놓인 빨간 김치통을 보고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도는 한편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여기서 열면 김치 냄새가 날 텐데….’ 어? 그런데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다. 식감은 아삭. 이제 막 담근 겉절인가 했더니 새콤하게 잘 익은 김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김치, 정체가 뭐야!

궁금했던 김치의 정체는 식품 기술 혁신기업 스티븐푸드테크의 박윤경 대표가 개발한 프리미엄 김치 ‘K-Chi’(케이치)다. 겉보기엔 평소 집에서 먹는 김치와 다르지 않지만 케이치에는 일반 김치와는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다. 바로 시간이 지나도 김치맛이 변하지 않고 처음 맛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김치 냄새가 거의 나지 않고 아삭한 식감도 유지된다.

패션 디자이너 출신인 박 대표는 김치의 ‘과발효’를 억제하는 기술을 개발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유형의 김치를 세상에 내놓은 주인공이다. 시작은 한국에서 만든 김치를 해외에 사는 외국인들이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였다. 패션 공부를 위해 미국에 머물렀던 유학 시절, 그리고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현지에서 맛보는 김치맛에 아쉬움을 느꼈던 경험도 배경이 됐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맛이 변하는 김치의 특성으로 인해 해외 수출과 유통, 보관에 한계가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했다.

“전 세계적으로 K푸드 열풍이 불며 김치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우리가 한국에서 먹는 김치맛 그대로를 해외에서 즐기기가 쉽지 않아요. 김치는 시간이 지나면 과발효 현상이 일어나 맛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데다 가스가 생성되면서 포장 용기가 팽창하고 냄새가 나거든요. 이런 점을 해결하지 않으면 외국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예로부터 김치를 가장 맛있는 상태로 오래 보관하는 것은 우리 식생활에 중요한 과업이었다. 조상들은 김치가 빨리 쉬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땅속에 김칫독을 묻었다. 현대에 와선 김치 냉장고를 개발해 집마다 두고 있는 민족이 아닌가.

박 대표는 맛이 변하지 않는 김치를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식품 전문가들을 찾아다니고 김치공장과 연구실을 오가며 김치 개발에 매달린 끝에 수출특화형 ‘케이치’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맨땅에 헤딩하듯 김치 사업에 뛰어든 지 4년 만이다.

■변하지 않는 맛…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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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푸드테크 박윤경 대표가 개발한 수출특화용 김치 ‘케이치’.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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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맛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건 곧 특정 단계에서 발효를 멈췄다는 것인데, 김치 발효를 원하는 정도로 조절하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비밀은 김치의 맛과 영양은 유지하면서도 단점은 보완한 7가지 자체 핵심 기술에 있다.

“케이치에는 김치 발효 종균, 발효 최적화, 유산균 증식 제어, 가스 발생 억제, 신맛 저감화, 식감 유지, 부패균 제어 등 7가지 기술이 적용됐어요. 그동안 김치 수출과 유통에 애로사항으로 지적받아 온 문제점들을 해결해 수출에 가장 적합한 김치를 개발했다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생각해요.”

장거리 이동과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품질 변화로 인해 수출 김치의 40%가 폐기된다고 하니 이 같은 문제점을 기술적으로 해소한 케이치의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박 대표는 배추와 고춧가루 등 100% 국산 재료를 사용해 품질을 높이고 젓갈을 넣지 않아 채식주의자(비건)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점 역시 글로벌 경쟁력을 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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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푸드테크 박윤경 대표가 15일 서울 강남구 더스티븐 컬처라운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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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쉽지, 패션 사업가가 특허 김치를 개발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사실 박 대표가 처음 구상한 건 원물 김치가 아닌 ‘김치 케첩’이었다고.

“칠리 소스나 스리라차 소스처럼 김치를 소스로 만들어 전 세계인이 어느 음식에나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포부였어요. 그러다 김치 케첩의 원료로 개발했던 백김치 착즙 원액을 ‘김치주스’ 형태로 먼저 상품화하게 됐죠.”

최근 농식품 산업과 첨단기술을 결합한 푸드테크가 고도화되며 식품의 생산과 보관,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친 다양한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김치를 좀 더 간편하게 세계인의 식탁에 올리려는 시도 역시 활발하다. 김치에 들어가는 각각의 재료를 가루 형태로 만들어 조합한 김치 시즈닝, 원물 김치를 동결건조해 물만 부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김치 블록, 김치를 잼처럼 빵이나 비스킷에 발라먹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든 김치 스프레드, 여러 음식에 토핑처럼 뿌려 먹는 김치 크런치 등 새로운 형태의 가공 김치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의 반응도 뜨겁다. 한식 스타트업 ‘푸드컬쳐랩’이 2017년 개발한 ‘김치 시즈닝’은 2020년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의 칠리 파우더 부문에서 절대 강자였던 일본의 유명 양념 가루 ‘시치미’를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주 구매 고객은 미국의 경우 30~40대 중산층 백인 여성들, 주로 샐러드나 감자튀김, 스테이크, 피자 등에 뿌려 먹는 방식으로 소비된다.

박 대표가 2021년 개발한 김치주스 ‘눋 2℃’는 천연재료를 숙성 발효한 100% 백김치 착즙 음료로, 김치의 고정관념을 깬 다양한 제품 중에서도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제품이다. 마시는 김치라니, 빨간 김칫국에 고춧가루를 떠올렸다면 틀렸다. 상큼하고 짜지 않은 동치미 국물로 소면을 말아먹고 싶은 맛이다.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맛과 영양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눋 2℃’는 김치유산균음료로 3개의 국제특허를 출원하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승인까지 받았지만 OEM을 맡긴 공장에 제품을 도용당하는 불운을 겪으며 생산을 중단하게 된다. 어렵게 개발한 제품이 외부적인 요인으로 결실을 보지 못한 것에 좌절했을 법도 한데 박 대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옷 장사를 할 때 숱하게 겪어본 일”이라며 웃는 모습에서 만만치 않은 사업가 기질이 엿보였다.

“‘눋 2℃’는 맛과 향이 자극적이지 않고 휴대와 섭취가 편한 김치 제품이라는 점에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김치주스를 상품화하며 김치 유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죠. 과발효 저감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와 연구도 시작할 수 있었고요.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케이치 같은 새로운 김치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K-푸드, 이제 ‘세계화’ 넘어 ‘현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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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스티븐푸드테크가 케이치 론칭 행사에서 세계 각국의 주요 음식과 김치를 컬래버레이션한 음식을 선보였다. 프랑스의 에스까르고, 영국의 미트파이, 인도의 케밥, 독일의 슈니첼과 곁들인 케이치(시계방향으로). 스티븐푸드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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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김치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김치 시장은 2023년 기준 49억4270만달러 규모로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4.9%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의 김치 수출액은 2016년 7900만달러에서 2023년 1억5560만달러로 7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스티븐푸드테크는 이에 발맞춰 공격적인 해외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오는 11월 ‘익은 맛’과 ‘안 익은 맛’ 두 가지 종류로 출시되는 ‘케이치 베리페리라인’은 이미 미국에 대형 마켓을 운영하는 TAWA그룹과 코스트코 등 유통업체를 비롯해 고급 레스토랑 체인 등에 샘플을 공급해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김치 소스 등 다양한 김치 제품군을 개발을 이어가는 백김치주스의 업그레이드 버전도 곧 출시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지금까지 K푸드의 수출 목표가 ‘세계화’였다면 이제는 현지인들의 식탁에 어우러질 수 있도록 ‘현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테이크나 파스타 등 각국의 다양한 음식과 곁들여 먹기에 부담 없고 식자재로도 활용될 수 있도록 김치의 맛과 품질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것. 그가 ‘변하지 않는 맛’과 유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김치의 본질과 정체성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저의 원칙이자 목표예요. 그러기 위해선 유통과 포장, 보관에 대한 끊임없는 기술 개발이 필요해요. 와인도 처음 멀리 수출을 시작할 때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현지화하되 그 가치와 품질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김치도 와인처럼 전 세계 어디에서나 사랑받는 음식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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