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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금)

[앵커칼럼 오늘] 도모지 국민이 무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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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白) 종이(紙)에 죽었다(死)'는 천주교 순교 성지, 백지사(白紙死) 터입니다. 순교자 얼굴 상에 종이가 덮여 있습니다.

젖은 한지를 겹겹이 발라 질식시켰던 형벌 도모지(塗貌紙)입니다. '얼굴(貌)에 종이(紙)를 바른다(塗)'는 뜻이지요.

그 도모지에서 우리말 '도무지'가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현대시에도 살아 있습니다.

'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도모지는 '도무지 해 볼 도리가 없는 답답함'을 상징합니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김소월 스승 김억의 시에 곡을 붙인 '동심초'입니다. 두 사람의 '한결같은 마음(同心)'을 정표로 묶은 풀잎(草)을 뜻합니다.

김억이 옛 시를 더 아름답게 옮겼지요.

'풀잎만 헛되이 묶으면 무슨 소용인가. 무어라 맘과 맘을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지금 집권당 돌아가는 형편이 그렇습니다.

국민의힘 당헌 25조입니다. 한동훈 대표가 내민 특별감찰관 카드를 추경호 원내대표가 일축했습니다.

'원내 의원 총회에서 결정할 사안이고 총회 의장이 원내대표다.'

후보 추천 방법과 절차를 원내대표가 주도하는 건 맞습니다. 그렇다고 결정권까지 독점하라는 건 아닐 겁니다.

친윤계의 비판과 공격도 공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집권당 투 톱의 충돌, 친한과 친윤 대결의 골이 깊어 갑니다.

대통령은 석 달 전 당 지도부 만찬에서 당부했습니다.

"우리 한 대표를 잘 도와달라."

엊그제 한 대표를 만난 뒤엔, 다른 만찬을 주재하던 추 원내대표를 용산 저녁 자리에 불렀습니다. 풀잎을 헛되이 맺은 격입니다.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도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야당이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에 협조하면 임명하겠답니다. 전혀 다른 사안을 풀잎으로 엮는 격입니다.

한 대표도 언행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곧바로 일일이 직설적으로 받아치는 건, 정치 어법이 아닙니다.

침묵할 건 침묵하면서 여백과 여운을 뒀으면 합니다. 대표답게 계파를 떠나 설명하고 설득해 공감을 쌓아 가며 일을 추진했으면 합니다.

당정도 당무도 폭주 기관차처럼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건, 보수의 얼굴에 젖은 종이를 덮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10월 24일 앵커칼럼 오늘 '도모지 국민이 무섭지 않다' 였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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