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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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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유해 도서’ 논란…청소년들 “문학작품 읽고 고민할 기회 뺏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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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시민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책을 집어들고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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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논의에서 청소년 당사자는 항상 소외되고 있는 것 같아요.”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학교 도서관에서 빼버리는 건 책을 읽고 고민해 볼 기회도 박탈하는 것 아닌가요?”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지난해 경기 지역 학교들에서 <채식주의자>가 ‘청소년 유해도서’로 지목돼 폐기된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책까지 ‘유해도서’로 낙인찍은 데 대한 비판이 거세지만 소설 속 묘사가 ‘외설적’이라며 청소년들이 읽기에 부적합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런 논란에 대해 당사자인 청소년들은 “문학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청소년들에게도 문학 작품의 함의를 고민해 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활동가 수영(17·활동명)은 24일 “<채식주의자>는 젠더 권력의 문제를 살필 수 있는 책”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때 독서동아리에서 <채식주의자>를 처음 접했다는 그는 “성적인 묘사가 등장한다고 해서 외설적으로만 보는 것은 문학에 대한 몰이해이자 단편적인 시각”이라며 “오히려 독서 지도나 교육을 통해 그 함의를 짚어볼 수 있는 책”이라 말했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 등 한강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는 백호영씨(17)도 “한강 작가의 작품이 청소년에게 나쁘다는 주장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채식주의자>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할 주제가 담겨 있다”며 “공공도서관이나 학교에서 뺀다는 것은 청소년들이 이러한 고민을 할 기회를 없애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적 묘사가 담긴 매체를 차단하는 방식으로는 청소년의 올바른 ‘성 인식’을 기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수나로 활동가 가람(18)은 “<채식주의자>를 청소년 유해매체로 보는 것은 청소년은 성적인 것과 완전히 분리돼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 같다”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성적인 것으로부터 청소년을 아예 차단하기보다는 청소년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고 올바른 성 인식을 위한 교육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수영은 “청소년들에게 성적인 것을 원천 차단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청소년을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는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성적 묘사가 등장하기 때문에 청소년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면 한국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 역시 검열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은 지난 22일 국회 교육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경기도 소재 학교들이 <채식주의자> 등 2500여권을 ‘청소년 유해도서’로 분류해 폐기한 데 대한 비판을 받자 “청소년들이 보기 민망할 정도의 내용이 있다”며 “학교 내 성폭력 문제가 늘고 있어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답한 바 있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 전국학부모단체연합은 지난 23일 <채식주의자>에 대해 “성행위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며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이 책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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