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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이슈 미술의 세계

"지금은 빌리 아일리시 노래를 연구하죠"...나이 잊은 영원한 디바 윤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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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는 미8군 무대로 데뷔해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 아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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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윤시내는 무대 위의 카멜레온 같았다.

지난 5일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의 라이브 카페 ‘윤시내 열애’ 무대에 오른 그는 수줍은 소녀처럼 의자에 앉아 미성으로 '나는 열아홉살이에요'(영화 ‘별들의 고향’ OST)를 부르다가, 허스키한 파워 보컬로 목소리를 바꿔 히트곡 ‘열애’를 열창했다. '이 생명 다하도록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윤시내는 이 라이브 카페에서 26년째 매주 토요일 공연을 하고 있다. 33년째 그의 매니저를 하고 있는 오균아 대표는 “시간 약속을 한 번도 어긴 적 없는 모범생 가수”라고 말했다.

정규 1집 ‘공연히’, 장윤정의 ‘초혼’, 조항조의 ‘거짓말’ 등을 부를 땐 노래 속 화자에 따라 윤시내 안의 여러 얼굴이 드러났다. 여고생 트로트가수 전유진이 불러, 발표 9년 만에 역주행 인기몰이 중인 자신의 최신곡 '인생이란'에선 인생의 의미를 곱씹는 연륜과 원숙미가 묻어났다. 그는 나이를 묻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노래 안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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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는 "체중 관리도 가수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철저한 자기관리의 이유를 밝혔다. 사진 아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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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는 다음달 23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데뷔 후 첫 단독콘서트를 연다. '윤시내 콘서트'란 콘서트명에는 흔한 수식어 하나 없다. 그는 “첫 콘서트라고 하니 주변에서 많이들 놀라시더라. 기대하는 분들이 많을 테니 철저히 준비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부모님 반대에도 간절했던 가수 꿈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윤시내는 재학 중 보컬학원에 다니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부모님은 반대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부모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그림을 자연스럽게 접했어요. 가장 좋아했던 건 노래였죠. 초등생 때는 영어를 모르니 라디오에서 나오는 팝송 가사를 한국어로 받아 적은 뒤 거울을 보고 연습했어요.”

미술 전공의 경험은 1975년 '새야 날아봐'로 데뷔한 이후 무대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데뷔 초엔 무대 의상을 직접 골랐고, 지금도 패션잡지를 보면서 트렌드를 연구한다. 그가 매일 아침 몸무게를 재고 식단을 관리하는 이유는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과 예쁜 옷을 입고 싶은 욕망 때문"이란다. 메이크업도 스스로 한다는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클레오파트라 단발도 철저한 연구 끝에 나온 결과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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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가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 클레오파트라를 연상하게 하는 헤어스타일과 매혹적인 붉은 입술, 검은 롱 드레스와 대비되는 노란 가죽 재킷이 인상적이다. 사진 아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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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쇼를 하는 사람들이라 관객의 귀 뿐만 아니라 눈도 즐겁게 해드려야 할 의무가 있어요. 노래 자랑만 해서는 안돼요. 제 무대가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되길 바랍니다.”



사실은 지독한 연습벌레



‘타고난 아티스트’라는 기자의 말에 윤시내는 손사래를 쳤다. "곡마다 어울리는 목소리를 내는 법을 누가 알려주면 참 좋겠는데, 그 방법을 몰라서 항상 연습을 한다"며 "다행인 건 혼자 살기 때문에 연구할 시간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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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가 발매한 음반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978년 '내마음 너무도 몰라', 1980년 '고목/목련', 1982년 'DJ에게', 1989년 '왜냐고 묻지 말아요/후회', 사진 음원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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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최근 연구해 부르는 노래는 2020년 그래미상을 휩쓴 빌리 아일리시의 ‘배드가이’다. “원래부터 팝송 체질”이라는 윤시내는 지난 3월 자신이 좋아하는 팝송 12곡을 리메이크한 앨범 ‘윤시내의 POP’을 발표했다. 롤 모델로는 미국의 여성 록스타 재니스 조플린을 꼽았다.

그런 윤시내가 가요를 접한 건 1970년대 청춘의 음악성지였던 명동 음악클럽 ‘오비스캐빈’에서 마주친 최종혁 작곡가 때문이었다. 그의 제안으로 ‘MBC 제2회 서울 국제가요제’에 출전해 ‘공연히’로 입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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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에 출연했던 윤시내는 "연기는 정말 어렵더라. 큐 사인만 나면 대사가 생각이 안난다"고 말했다. 사진 아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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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는 최 작곡가에 대해 “‘열애’, ‘고목’, ‘DJ에게’ 등 많은 히트곡을 주셨다. 내 가수 인생의 은인이다. ‘공연히’와 ‘바다와 강’은 시대를 앞서간 노래”라며 고마움을 내비쳤다.

그는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와 무대 매너로 198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가수로 자리 잡았다. ‘열애’ ‘DJ에게’ ‘공부합시다’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 '목마른 계절' 등 숱한 히트곡으로 사랑 받았다. 그는 "마음에 드는 노래를 만난다는 건 굉장한 복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복이 많았다"고 말했다.

윤시내는 2011년 그룹 부활의 콜라보 프로젝트 일환으로 첫 여성 보컬로 활동했으며, 2014년 ‘사랑한국’과 2015년 ‘인생이란’을 발표했다. 2018년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싱글 ‘10월 아침’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는 등 현재진행형 가수로 활동 중이다.

2022년엔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에서 윤시내 역으로 연기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는 “내 이름을 건 영화가 나온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감사하다”면서 80년대 영화출연 제안을 받았던 때를 떠올렸다.

“‘열애’로 1980년 TBC 방송가요대상 대상을 받았을 때 처음 영화출연 제안을 받았어요. 이후 히트곡이 나올 때마다 제안이 왔었죠. 그때는 자신 없어서 하지 않았는데 수십년 후에 출연하게 됐네요. 해보니 연기는 정말 어렵더라고요. 달달 외워갔던 대사도 ‘큐’ 사인만 떨어지면 기억이 안나 고생했어요.”

요즘 윤시내는 콘서트 연습에 한창이다. 숱한 히트곡을 가졌는데도 콘서트가 처음인 이유를 묻자, "매주 라이브카페 공연을 해서 콘서트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어느 행사에서 나를 모르는 후배가수를 보고선 '이대론 안되겠다, 더 큰 무대에 서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지난달 초 tvN STORY 예능 ‘회장님네 사람들’에 출연한 이후 젊은 층의 반응이 뜨거웠는데, 나이 한계 없이 계속 도전하자는 용기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윤시내는 당시 방송에서 순백의 원피스 차림에 스포츠카를 운전하며 등장해 큰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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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는 "마음에 드는 노래를 만난다는 건 굉장한 복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복이 많았다"고 전했다. 사진 아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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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의 꿈은 ‘영원히 노래하는 디바’다. “할 수 있는 한 무대를 계속 하고 싶어요. 재테크도 모르고, 오로지 노래가 좋아 지금까지 왔습니다. 좋아해주시는 분들 앞에서 계속 노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겐 큰 선물입니다. 가수 하길 참 잘했습니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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