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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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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 못 사고 '쩔쩔'…휠체어 경사로 없는 편의점, 국가 직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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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대법원으로 간 '한뼘의 장벽' (上)

[편집자주] 누군가엔 한뼘에 불과한 문턱이 어떤 이에겐 매순간 극복해야 하는 장벽이다. 흉내만 낸 경사로에 쩔쩔매는 유아차와 노인, 휠체어를 보면서 우린 어느 만큼의 사회적 비용을 감내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진다. 대법원이 이 문제를 두고 3년만에 공개변론을 연다.



편의점 가로막은 '10㎝ 장벽'…휠체어 경사로, 100곳 중 4곳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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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10시 경기 수원시 수원역 인근 한 편의점 앞. 목이 말라 생수 한 병을 사려던 조봉현씨(65세·남)는 높이 약 10㎝ 문턱 앞에서 멈춰섰다. 서너살 어린아이도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높이지만 휠체어를 탄 조씨에게는 넘기 힘든 장벽이다.

조씨에게 편의점의 문턱이 사실상 벽이 돼버린 것은 6년 전부터다. 조씨는 희귀병을 앓으면서 하루 아침에 두 다리를 못 쓰게 됐다. 예전엔 출·퇴근길에 수시로 드나들던 편의점이지만 이제는 경사로가 설치된 편의점을 찾아 헤맨다.

편의점 등 경사로가 없는 소규모 점포 앞에서 멈춰서는 이들이 조씨 같은 장애인만은 아니다. 유아차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도 계단과 문턱은 '일상의 장벽'이다. 경사로가 몸이 불편한 일부 시민들의 관심사만이 아닌 셈이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1998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26년이 흘렀지만 경사로가 없어 쩔쩔매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편의점 4사(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와 통계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대기업 계열 편의점 5만7617곳 가운데 경사로가 설치된 곳은 2167곳(3.7%)에 그친다.

흴체어를 탄 조봉현씨가 2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수원역 인근에 있는 한 편의점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사진= 송정현 기자

대부분의 소규모 매장에서 경사로나 호출벨을 찾아 보기 어려운 이유는 허술한 관련 규정 때문이다.

장애인 등 편의법이 제정된 1998년에는 법 시행령 3조에 바닥 면적이 300㎡(약 90평) 미만인 점포는 경사로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도록 허용했다. 경사로 설치를 일률적으로 강제할 경우 특히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감당해야 할 비용 부담을 고려한 일종의 유예 조치였다.

이 조항은 20년 넘게 유지되다가 서울중앙지법 민사 30부에서 경사로 미설치가 차별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오고나서야 2022년 4월 바닥 면적 50㎡(약 15평) 미만 점포에 대해서만 미설치를 허용한다는 내용으로 개정됐다. 당시 재판부는 GS리테일에 대해 판결 확정일로부터 1년 안에 관련 법령이 시행된 2009년 4월 11일 이후 신축·증축·개축한 직영 편의점에 장애인이 통행 가능한 접근로 또는 이동식 경사로를 설치하거나 가게 외부에 호출벨을 설치해 직원을 통해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20년 이상 낡은 규정이 유지된 데 국가의 고의나 과실이 있는지, 이런 입법미비의 책임을 국가에 물을 수 있는지를 두고 오는 23일 오후 2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진행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공개변론을 여는 것은 2021년 6월 이후 3년여 만이다.

1심과 2심에선 국가의 고의성이나 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지만 대법원에서 다른 판단이 나올 경우 입법 방치에 대해 배상 책임을 인정한 최초 사례가 된다. 교통약자의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별개로 대법원 판결에서 입법미비에 대한 국가 책임이 일부라도 인정된다면 이 부분에서도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만약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다면 획기적인 판결이 될 것"이라며 "그동안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거나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개정 시한을 둔 경우가 많고 그 중엔 시한을 넘겨서 무효가 된 규정도 많은데 그런 사례에서 정부나 국회를 상대로 한 소송이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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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해 있다. 2024.7.1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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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편의점 접근권 방치했다"...'입법부작위' 국가배상 인정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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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23일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열고 "국가가 편의점 접근권을 방치했다"며 장애인과 유모차 이용자, 노인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공개변론을 연다.

2021년 6월 이후 3년여만이자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이뤄지는 첫 공개변론이다. 그만큼 장애인과 임산부,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편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번 사건에서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되면 낙태법 등 입법 공백이나 지연이 일어나고 있는 사안에 대해 국가 상대 배상 청구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이 사건의 쟁점은 국가가 장애인 관련법 시행령에서 '편의시설 설치 의무 기준'을 지나치게 낮게 잡아 장애인·유모차 이용자·노인 등 이용자들이 손해를 봤는지 여부다. 대법원은 국가가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규정한 시행령을 장기간 개정하지 않은 사실이 입법자의 부작위(해야할 일을 하지 않음)라 위법한지, 이 행위가 위법하더라도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해야 하는지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법 시행령은 1998년 제정 당시 지체장애인 등을 위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소규모 소매점 범위를 '바닥면적 합계 300㎡(약 90평) 이상의 시설'로 규정했다. 그러나 전국 편의점 중 바닥면적이 300㎡를 넘는 편의점은 3%에 불과(2019년 기준)해 실질적으로 이용자들의 접근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지체장애인 김모씨 등 4명은 2018년 이 조항과 관련해 "접근권이 침해된다"며 GS리테일·호텔신라·투썸플레이스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사건을 강제조정에 넘겼고 호텔신라와 투썸플레이스는 원고의 요청을 받아들여 조정이 성립됐다. 조정에 불복한 GS리테일에 대해 재판부는 2009년 4월 이후 신축·증축한 편의점에 이동식 경사로 등을 설치하라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국가의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으나, 원고들은 국가 배상을 재차 주장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국가가 시행령을 장기간 개정하지 않고 방치한 행위는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요건인 고의나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려워 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해당 시행령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2022년 4월에야 개정돼서 '바닥 면적 50㎡(약 15평) 이상 점포'까지 편의시설 설치가 의무화됐다. 원고들은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했다.

원고 승소한다면 '입법 부작위에 따른 국가배상' 첫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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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해 있다. 2024.7.1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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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들은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국가가 장애인 등의 접근권을 침해해 위헌·위법한 규정을 장기간 방치한 것이 국가의 과실이라고 주장할 예정이다.

원고 측을 대리하는 한상원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원심에서 위헌·위법해 무효인 시행령을 제정하고 장기간 방치했음에도 과실조차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일반인의 관점에서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변론 종결 후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토론을 거쳐 향후 2~4개월 내에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원고들의 청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입법 부작위에 따른 국가 배상을 인정하는 첫 사례가 된다.

최초록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국가 배상을 본격적으로 다퉈 인정받는 것이 목표"라며 "(이번에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결과가 나오면) 법원의 첫 걸음이라는 상징으로 의미있는 판결이 될 것"이라고 했다.

법원은 장애인·노인 등이 일상의 장벽을 낮춰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추세다.

앞서 장애인·노인·영유아 부모 등 5명이 2014년 "저상버스를 도입하고 시외버스·고속버스에 휠체어 승강 설비를 설치하라"며 국가·서울시·경기도와 금호고속·명성운수를 상대로 낸 차별 구제 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운수업체가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 편의제공 의무 위반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유예기간 없이 즉시 모든 버스에 휠체어 승강시설을 설치하라고 명령한 원심 판결이 비례원칙에 어긋난다며 이 부분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1·2급 시각장애인 963명이 SSG닷컴·이베이코리아·롯데쇼핑을 상대로 "정보 이용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재판부는 1심과 동일하게 쇼핑몰들이 시각장애인들에 대해 차별 행위를 하고 있다고 판단한 사례도 있다. 2심 재판부는 화면 낭독기를 통해 시각장애인에게 광고와 상세 내용 등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라고 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헐렁한 시행령' 20년 방치한 국가, 배상 인정 땐 최초 사례…줄소송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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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교통약자의 이동권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 소송에서 입법 부작위에 따른 배상 책임을 인정한다면 기존 판례를 깨는 최초의 판결이 된다. 국가의 입법 행위에 대한 중요한 기준이 세워질지 관심이 집중된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이 입법자(국회의원 등)의 부작위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례는 아직까지 없다. 입법 부작위는 입법 기관이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해야 할 상황에서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법원에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가의 행위가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위법한 행위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론상 가능하지만 실무에서 이를 증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다루는 내용은 허술한 법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정부에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라며 "시행령 개정 의무를 해태한 것에 대해 고의나 과실을 입증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 추상적인 법규범을 제때 개정하지 않은 것으로 구체적인 손해가 발생했다는 인과관계를 인정하기도 복잡하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어떤 법이 헌법에 맞지 않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고 해서 그로 인해 발생한 모든 피해를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 대법원 국가배상책임 인정 땐 '줄소송'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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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해 있다. 2024.7.1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김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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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이번 사건에서 원심판결을 뒤집고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는다면 다음 쟁점은 국가가 배상해야 하는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즉 과실 수준을 따지는 것이 된다.

다만 어느 만큼의 배상액이 적절하느냐는 논쟁과 별개로 국가의 입법 부작위에 대한 소송은 당장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차 교수는 "국회나 정부가 법률을 제때 개정해주지 않아 손해를 입었다는 소송이 급증할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하거나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개정 시한을 뒀는데 시한을 넘겨 무효가 된 규정이 많아 줄소송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사례가 대표적이다. 헌재가 2019년 낙태죄 일부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국회에 2020년 말까지 법률을 개정하라고 결정했지만 개정시한을 넘겨 4년이 돼가도록 국회가 새 법이 입법되지 않으면서 낙태죄가 사실상 폐지된 상태다. 이와 맞물려 여성의 안전한 임신 중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보건의료체계도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다.

차 교수는 "수술보다 안전한 낙태약이 해외에서는 합법인데 국내에서는 국회가 후속 입법을 안 해줘서 불법"이라며 "검증되지 않은 약이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는데 임신한 여성이 불법약을 먹고 불임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으면서 국가에 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사무처 법제실이 최근 발간한 '헌재 결정과 개정 대상 법률 현황'에 따르면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개정 시한이 지난 법률은 낙태죄를 포함해 총 8건으로 집계된다. 아동 성범죄자의 공무원 임용을 금지한 군인사법,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도 개정시한인 올해 5월31일을 넘기면서 아동 성범죄자가 공무원으로 임용돼도 막을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다.

◆ "늑장 개정과 늑장 입법은 다른 사안" 반론도

이번 사건에서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모든 입법 부작위 사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입법 부작위는 크게 부진정 입법 부작위와 진정 입법 부작위로 구분된다. 부진정 입법 부작위는 이미 존재하는 법률이나 시행령이 충분하지 않거나 특정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데 입법기관이 보완하거나 개정하지 않아 발생하는 부작위를 말한다. 교통약자 편의시설 설치와 관련된 시행령이 있지만 실제 필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추가 입법이 요구되는 상황이 이런 경우다. 즉 법을 빨리 '안 고친' 것이 문제인 경우다.

진정 입법 부작위는 특정사안에 대한 법률이나 시행령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신기술이나 새로운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법률이 제정되지 않은 경우다. 즉 법을 빨리 '안 만든' 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다.

수도권 지역 한 판사는 "교통약자의 이동권 문제는 부진정 입법 부작위로 문제가 된 사안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진정 입법 부작위 사건에서는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며 "교통약자 이동권 문제는 물리적 장애와 국가의 의무에 관한 사안인데 이를테면 낙태 문제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맞부딪치는 기본권 충돌 문제라서 동일한 관점에서 볼 수 있을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양윤우 기자 moneysheep@mt.co.kr 송정현 기자 junghyun792@mt.co.kr 조준영 기자 cho@mt.co.kr 박다영 기자 allzero@mt.co.kr 정진솔 기자 pinetr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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