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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유효상 칼럼] 왜 물타기 전략이 위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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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사진=유효상


미국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엔비디아는 작년 236% 상승에 이어 금년에도 10월 21일까지 177% 가까이 올랐다. 그러나 한국 증시는 먹구름만 가득하다. 특히 '간판 국민주'로 상승세를 탈 줄 알았던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실적 부진과 3분기 '어닝 쇼크'로 1년 7개월 만에 '5만 전자'로 주저앉으며, 개인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진 모습이다. 더욱이 금년 초부터 10월까지 주가가 28% 떨어졌지만, 4분기에도 실적 부진이 지속될 것이라며 증권가에서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줄줄이 내리고 있어서 고민은 한층 깊어진다.

지난 8월에 공개된 삼성전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 580만 명이 넘던 소액주주는 금년 6월 말 기준 424만 명으로 대폭 줄었다. 1년 반 만에 150만 명 이상이 떠난 것이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는 지난 9월 3일부터 10월 18일까지 28일 연속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순매도했다. 하루 평균 약 4400억 원이며 전체 금액은 12조 원이나 된다. 그런데 이 엄청난 물량을 거의 대부분 개인투자자들이 사들였다. 개미들이 사들인 금액이 11조 원이 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저가 매수에 새로 진입한 투자자도 있지만, 대부분 높은 금액에 주식을 샀다가 '물린' 사람들이다. 지금까지의 평가 손실을 만회하려고 소위 '물타기'를 하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물타기'는 자신이 산 주식의 주가가 떨어졌을 때 손실을 줄일 목적으로 추가로 주식을 매입하는 전략(scale-in trading)을 말한다. 예를 들어, A라는 종목의 주식을 2만 원에 100주를 매입했는데 주가가 1만 원으로 떨어져서 손실이 발생할 경우, 주식을 매도하는 대신 1만 원에 추가로 100주를 더 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총 200주를 보유하게 되고 매입 단가는 1만 5000원이 된다. 추후 주가가 반등하여 2만 원을 회복하면 주당 5000원씩의 이익을 얻게 되고, 5000원만 올라도 원금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언뜻 보면 굉장히 단순하고 그럴 듯하다. 그러나 주가가 올라가지 않고 추가로 더 하락하게 되면 훨씬 더 심각한 손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물타기 전략이 성공하려면 투자여력이 넉넉해야 하고 시간도 충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가가 반등할 만한 확실한 모멘텀이 있어야 한다.

불과 2개월 전까지 삼성전자 주가가 10만 원 이상으로 오를 것으로 전망하던 증권사들이 뒤늦게 목표주가를 내렸지만, 투자 의견은 전부 '매수'를 유지해 개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0월 18일 기준 국내 증권사 24곳이 제시한 삼성전자의 평균 목표주가는 9만 783원이다. 삼성전자 종가는 5만 9200원으로 목표주가와의 괴리율이 53.3%나 된다. 올해 들어 7월까지 증권사들은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17% 상향 조정했다. 주가가 7만 원대로 내려간 8월에도 11만 원대 목표주가를 유지했다. 그러다 9월 주가가 6만 원대로 하락하자 그제야 목표주가를 슬그머니 9만 원대로 줄줄이 내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삼성전자에 대한 '매도 리포트'는 단 1건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반도체 겨울론', '삼성전자의 위기론'이 제기됐고, 글로벌 투자은행 맥쿼리가 삼성전자에 대해 투자 의견을 하향 조정하면서 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급기야 6만 원이 붕괴되고 5만 원대를 기록하게 됐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자 지금 온라인상에는 국내 증권사의 전망을 믿고 계속해서 물타기를 했는데, 손실만 커졌다며 증권사를 비난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대한민국 대표 우량주이자 과도한 낙폭을 기록한 삼성전자라, 물타기를 하고 조금만 기다리면 쉽게 손실을 만회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사라진 것이다. 오히려 시간을 끌면서 손실 금액만 키운 것이다. 물타기의 위험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에 5000억 원대였던 삼성전자의 신용융자 잔고가 한 달 반 만에 1조 원으로 치솟았다. 빚을 내서 물타기를 하려는 개인투자자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금액은 2021년 주식시장 호황기 때보다도 더 큰 규모로,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무리 삼성전자라 하더라도, 미래 전망이 비관적인데 단지 주가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빚을 내서 투자하게 되면 더 큰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금년 3월에는 외식 브랜드를 운영하는 코스닥 상장사의 한 개인투자자가 2년도 안 돼 32억 원의 엄청난 손실을 입는 사례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15억 원어치 주식을 분할 매수했다가, 주가가 떨어지자 계속 물타기를 하면서 주식 매수 금액이 50억 원까지 늘어났는데, 이 회사의 주식이 거래정지되면서 50억 원의 원금이 18억 원으로 떨어졌으며, 그나마 팔 수도 없게 된 것이다. 4450원이던 주가가 급락하자 지속적으로 물타기를 했지만 결국 381원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거래정지되었다. 이 과정에서 비자발적으로 최대주주가 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주식시장에는 '물타기 하다가 대주주 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주식시장의 물타기는 카지노에서 논란이 되는 '마틴게일(martingale) 전략'과 닮았다. 마틴게일은 돈을 잃으면 잃은 돈의 두 배를 다시 베팅하는 카지노의 베팅 방식 중 하나로, 18세기 유명한 스위스 수학자인 니콜라스 베르누이가 제시한 전략이다. 예를 들어, 승률이 50%인 '홀짝 게임'을 하는데 1만 원을 베팅했다가 실패하면, 다음 베팅에서 2만 원으로 금액을 올리고, 다시 실패하면 4만으로 올리는 방식으로 패배할 때마다 베팅 금액을 두 배로 증가시키는 방식의 베팅 전략이다. 이렇게 이길 때까지 반복한다. 결국 한 번이라도 이기면 맨 처음에 베팅한 돈만큼 벌 게 된다.

카지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바카라 게임은 플레이어와 뱅커 중 누가 이길지 맞추는 도박인데 확률이 50%라 홀짝 게임과 비슷하다. 바카라와 같이 돈을 딸 확률이 50%인 게임에서 한 번이라도 이길 확률은 시행 수에 따라 50%, 75%, 87.5%로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100%로 수렴하게 된다. 그래서 이론상 베팅할 수 있는 기회와 재산이 무한대라면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마틴게일 베팅법이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개인이 갖고 있는 재산은 유한하고, 시간도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마틴게일 베팅은 실패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베팅 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한정된 돈 때문에 이길 때까지 끝까지 베팅을 하기 어렵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20세기 초 몬테카를로의 한 호텔에선 승률 50%의 게임에서 26번 연속으로 같은 것이 나와서 많은 사람들을 파산시킨 적도 있었다. 이때도 27번까지 베팅을 했다면 돈을 벌었겠지만 계속 베팅할 정도의 돈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처음 베팅 금액이 1만 원이었다 하더라도, 27번째 베팅해야 할 금액은 무려 1조 3000억 원이 넘는다. 현재 대부분의 카지노는 베팅 상한액을 정해놓고 있어서 10회 이상 베팅하기 어렵다. 10회가 되면 처음 베팅 금액의 1000배가 넘기 때문이다. 참고로 강원랜드 카지노는 최고 베팅 금액은 30만 원, 마틴게일 횟수도 4회로 제한하고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시키려는 노력보다는 수수료 이익만 올리면 그만이라는 증권사의 모럴 해저드가 개인들이 빚을 내서 물타기를 하는데 일조하지만, 개미들은 '본전 찾기 필승법'이라고 여전히 '물타기 전략'을 선호하고, 도박꾼은 마틴게일 전략으로 쉽게 돈을 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언제나 승자보다 패자의 숫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손쉬운 성공 전략은 허상에 불과하다. 단지 지금까지 실패했으니 이제는 성공할 거란 '도박사의 오류'에 빠져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할 뿐이다.

더 이상 경기 침체로 힘든 국민들이 빚투로 더 큰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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