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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동아광장/전재성]남중국해 ‘핫코너’ 필리핀과의 안보협력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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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필리핀과 영해 갈등 악화땐 美 나설것

대만 유사시 한반도에까지 영향 줄 가능성

韓, 수송로 타격 등 대비한 외교전략 필요

동아일보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동남아를 둘러싼 다양한 정상외교가 진행된 한 달이었다. 동아시아 정상회의와 아세안 정상회의, 한국이 참여하는 아세안+한중일 정상회의 등 한국의 국익과 밀접한 외교 무대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순방을 통해 아세안 국가들과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를 수립했다. 동남아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커지는 가운데 한국의 동남아 외교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필리핀과의 전략적 동반자관계 수립이다. 국내에서는 공급망 협력과 원전 협력 등 경제 협력을 강조했다. 반면 외신들은 일제히 양국 간 군사안보 협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중국을 안보 위협으로 두고 있는 필리핀과 북한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한국이 안보 협력의 장을 새롭게 열었다는 것이다. 한-필리핀 안보 협력이 중요한 이유는 격화하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 때문이다. 중국은 소위 구단선을 근거로 남중국해의 90%에 해당하는 면적에 대해 주권적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구단선 내 남중국해가 중국의 것이 된다면, 남중국해의 자원과 항행 및 상공 비행 자유를 포함한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은 결정적으로 강화될 것이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외교적 해결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분쟁 국가들 간에 구속력 있는 행동강령 채택을 놓고 합의 가능성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이번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도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강령 채택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중국과 당사국들의 이해관계는 계속 갈등 구도다.

2022년 취임한 마르코스 대통령은 전임 두테르테 대통령과는 달리 친미 노선으로 전환했다. 중국과 필리핀의 무력 충돌은 급속히 강화되고 있다. 특히 스프래틀리 군도 동쪽에 위치한 세컨드 토머스 암초에 대한 중국의 무력시위가 빈번해졌다. 중국의 막강한 해상경비대와 민병대가 필리핀의 보급선을 공격하면서 긴장이 고조돼 온 것이다. 소위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으로 전쟁 행위 수준에는 달하지 않는 군사력을 동원한 활동이다.

미국과 필리핀은 방위조약을 맺고 있다. 방위조약이 발동되면 중국의 공격에 대해 미국이 중국을 공격해야 하는 방어 의무가 발생한다. 필리핀은 민간인에게 피해를 가하는 중국의 공격에 대응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과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은 방위 공약을 지키기 위해 중국의 공격에 대응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중국의 필리핀에 대한 강압 행위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동맹 공약에 대한 신뢰성은 저하될 것이다.

남중국해는 대만해협, 동중국해, 한반도와 함께 휘발성이 높은 동아시아의 열전지대 중 하나이다. 열전지대들은 고립돼 있지 않다. 중일 간 동중국해 문제는 양안 관계와 직결된다. 대만 유사시 동중국해는 함께 분쟁 지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만 유사시 한반도와 대만 사태가 연결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 군사 충돌이 발생하면 한반도 역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불개입을 선언하더라도 주한미군은 지원 및 보급 차원에서 대만 지원을 고려할 수 있고, 중국은 북한과 사전 협의해 주한미군 및 한국에 대한 압박을 생각할지 모른다. 대만 유사시 중국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할 경우 한국 역시 동참을 고려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대만과 필리핀은 매우 가깝다. 필리핀은 대만 유사시 남중국해 문제와 연결될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 미국은 작년부터 필리핀의 군사기지 네 곳을 추가로 사용하게 됐다. 필리핀 북단의 미국 전력은 남중국해에 대한 군사 억제 강화뿐 아니라, 대만 유사시에 대응하는 군사력도 지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거리 미사일에 해당하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과 SM-6 미사일이 배치됐다. 이러한 행보는 중국의 격렬한 반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동남아 외교의 계절인 10월에 중국은 대만 포위 훈련인 연합리젠-2024B 연습을 벌였다. 미국과 필리핀이 주도하는 카만닥 훈련도 필리핀 북부에서 동시에 시행됐다. 한국도 소규모이지만 2년 연속 참가했다.

한국은 남중국해 영해 문제의 국외자다. 그러나 수송로 이익에 관해서는 핵심 이해당사자이다. 영해 분쟁 결과와 별도로 영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 해결 과정과 양상에 관해서는 국제질서의 차원에서 유의할 수밖에 없다. 강제력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 위기관리 등 선언적 정책을 넘어선 구체적 대응책을 고민해야 한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본격적인 군사 충돌이 발생한다면 한국의 안보 위험은 매우 커진다. 수송로 교란뿐 아니라 확전과 열전지대 간 동시전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동남아 국가들과 군사안보 협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아시아 지역 전략 전체를 고민하는 외교적 대응 기반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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