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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뭉쳐도 모자랄 판에 … 폴란드 이어 캐나다 60조원 사업도 암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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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싸움 K방산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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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가 디젤엔진과 배터리를 추진체계로 하는 하이브리드 잠수함 3척을 발주했다.

일명 '오르카 프로젝트'로 사업 예산은 약 3조4000억원이다.

이에 최근 폴란드와 방산협력에 나선 한국 방산업체들이 단연 유력한 수주 후보군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실상은 딴판이다. 독일 프랑스 스웨덴 스페인의 선진 방산업체들이 유럽 해양 환경에 적합하다는 특징을 앞세워 국가별로 똘똘 뭉쳐 대응하는 반면 K방산은 '집안 싸움'에 골몰하느라 허송세월만 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과열 경쟁과 상호 비방은 폴란드 군사당국 평가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폴란드 잠수함뿐만 아니라 필리핀과 호주에서 앞으로 각각 진행할 10조원 넘는 군함 구매사업에서도 사정이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K방산 '원팀'으로 성과를 내겠다고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 17일 인성환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2차장이 '제6차 방산수출전략평가회의'를 주재하면서 협력을 강조했으나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간 감정의 골은 메워지지 않았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 박사)은 "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민간에 개입한다는 시비가 일까봐 뜨뜻미지근한 입장"이라면서 "말로만 방산 수출 200억달러 달성을 외칠 게 아니라 어찌 됐든 양사를 중재해 수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60조원에 이르는 캐나다 잠수함 구매사업은 규모 측면에서 양사가 공동사업에 나서야만 수주가 가능한 상황이지만 협력할 기색이 없다.

장 연구위원은 "캐나다 잠수함 사업은 한 개 업체 '능력(캐파)'으로는 할 수 없는 규모"라며 "컨소시엄을 짜서 들어가야 해 지금 같은 갈등 상황을 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공동으로 하려면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소송이 오가는 상황에서 같이 뭘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반면 한화오션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에서 원팀으로 참여하자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잠수함 분야에서는 한화가 압도적으로 실적이 좋으니까 그런 얘기를 한다"며 "호주의 호위함 입찰에서는 공동 참여 얘기를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국 방산업계와 대조적으로 유럽에서는 국가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철저하게 전략적으로 수주전에 임하고 있다. 독일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의 '212CD' 잠수함은 독일 해군과 노르웨이 해군이 구매계약을 체결하며 유럽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티센크루프는 폴란드가 잠수함을 운용할 발트해 환경에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한 방위산업 전문가는 "독일은 정부 대 정부(G2G) 사업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국영 군함 제조업체 '나발그룹'은 스코르펜급 잠수함으로 오르카 프로젝트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스코르펜 잠수함은 프랑스가 수출용으로 특화시킨 모델로 전 세계에서 5개국 이상이 운용 중인 베스트셀러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연합(EU) 의회 연설에서 한국산 대신 유럽산 무기를 사자고 주장했다. 유럽방위산업전략(EDIS)은 역내 국가들이 유럽산 무기 비중을 2030년까지 50%로 증가시키고 EU 내부 무기 거래 규모를 현재 15%에서 35%로 늘릴 것을 권고하고 있다.

방위산업 수출은 정부의 정책적·외교적 뒷받침 없이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또 대규모 방산 수출을 계기로 해당 국가와 외교·군사적 고위급 교류는 물론 연합연습 등으로 협력을 넓힐 여지도 키울 수 있어 안보에 직접적인 호재로 작용한다.

정부 당국자는 "국내 방산기업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수출 실적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가 기업 간 분쟁이 발생했을 때 조정할 수 있는 공식적인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대·중소기업 간 상생을 위해 운영 중인 '사업조정제도'와 유사한 방안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 당국자는 "현재로서는 방산업체 사이 분쟁을 조정·중재하기 위한 정부의 비공식적 개입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분쟁이 일어난 양측에 권고라도 내릴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법·제도 보완을 위해 국회와 정치권이 권한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잠수함 전단장을 지냈던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 예산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성장한 업체들의 갈등을 정부가 조정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잠수함 건조에 들어간 기술은 정부에 지식재산권이 있다"고 강조했다.

방산업계에서는 정부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에 일단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의 장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보유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애매하게 원팀으로 묶기보다는 기업이 지닌 경쟁력과 역동성을 펼칠 수 있는 마당을 만들고, 1차로 경쟁을 통과한 기업이 사안별로 정부와 단단한 원팀을 이뤄 개별 수주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게 더욱 현실적이라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프로젝트별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일단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이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전에 예선 통과 개념인 '숏리스트'에 포함된 기업이 정부와 진정한 의미의 '원팀'을 꾸린다면 민관협력의 시너지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두원 기자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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