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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월)

"1등급 병원 있기는 한데"…난임병원 정부평가 있어도 원하는 정보는 '쏙' 빠져[난임상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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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정보 부족·자료 미제출, 환자 선택권 못돕는 정부 평가

편집자주합계 출산율 0.72명 시대. 서울의 유명 난임 병원 앞엔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동서고금 유례없는 저출산 추세가 무색할 정도다. 지난해 전국 난임 환자는 25만명. 모든 의료 인프라가 서울로 집중된 현실 속에서 아이를 갖기 위해 '원정 치료'를 떠나는 지방 난임 부부들은 오늘도 고통받는다. 치료를 받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지역 간 의료 불평등이 임신, 출산을 간절히 바라는 난임 부부들의 앞길을 막는다. 저출산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갖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지방 난임 부부의 원정 치료 실태를 들여다본다.
'난임 시술 의료기관의 지정기준 충족 여부 및 시술별 평가를 통한 의료기관의 자율적 질 향상을 유도하고 국민에게 안전한 시술 환경 및 선택권을 보장한다.'

정부는 2020년과 2023년 두차례 난임 시술 의료기관 전체 평가를 진행해 결과를 발표했다. 늦어진 결혼에 출산 연령까지 고령화하면서 난임 환자가 빠르게 늘자 시술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의 정보를 제공하고 관리에 나선 것이다. 난임 시술 전문 의료기관으로 ▲전문인력과 시설·장비를 잘 갖추고 있는지 ▲인공수정, 체외수정(시험관) 시술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핵심이다. 3년에 한 번씩 진행하는 이 평가는 내년에 세 번째로 진행될 예정이다. 평가 내용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홈페이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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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평가를 시행하는 취지 중 하나로 난임 부부의 의료기관 선택권 보장을 내세웠지만, 기자가 직접 만난 지방 난임 부부들은 "평가 제도가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병원에 '1등급'이라고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 보긴 했으나 평가 기준에 의문이 생겼다"는 답변도 있었다. 수도권에 병원이 집중돼 있더라도 거주지 인근에 시술받기에 적절한 난임 병원이 있다는 정보가 있다면 난임 부부들은 '상경' 대신 지역 병원을 염두에 둘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난임 부부의 병원 선택 과정에서 정부의 평가 제도가 사실상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보고자 하는 정보 없는 결과에 환자는 '외면'
난임 시술을 받는 부부들이 고심해서 병원을 선택할 때 정부 평가를 잘 살펴보지 않는 이유는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공개 정보가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평가가 3년에 한 번씩 이뤄지는 데다 평가 진행 기간만 2년이라 최신 정보라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난임 시술 의료기관의 2021년 시술 내용을 2022년 1년간 평가해 지난해 7월에서야 대중에 공개됐다. 2년 전 결과로 현재 시술 병원을 결정해야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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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병원이 평가에서 제외되는 사유도 한눈에 알아보기 어렵게 돼 있다. 평가 제외 사유로 ▲자료 미제출 ▲일정 시술 건수(인공수정 연간 10건 이상, 체외수정 시술 연간 30건 이상) 도달 부족 등이 있으나, '평가 제외'라고만 표시할 뿐 이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 식이다. 이에 대해 심평원 측은 아시아경제에 "난임 시술 의료기관 평가위원회에서 공개 방법 등을 결정하며 향후 3차 평가 결과 시 기관별 제외 사유에 대해 공개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무엇보다 공개 자료만으로는 임신 성공률 등 난임 부부가 가장 궁금해하는 정보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21년 난임 시술 여성 6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난임 시술 의료기관 선택 시 고려사항 1위는 단연 '임신 성공률'(41.7%)이었다. 하지만 이를 개별 병원이 공개하지 않는 한 의료 수요자인 난임 부부가 정부 평가에서 확인이 어렵다. 평가지표 세부 기준을 보면 인공수정은 평균 임신율을, 시험관 시술은 표준화 임신율(전체 임신율)을 반영하나 대외적으로 공개하진 않는다.

정부는 앞서 두차례 진행한 평가를 바탕으로 내년에 실시할 3차 평가에 일부 평가 지표를 신설하는 보완 작업에 나섰다. 심평원 관계자는 "적정 시술 건수와 다태아 임신율을 평가 기준에 강화하고, 배아 배양실 감염 관리와 배아 생성인력 전문성 평가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평가 '1등급' 병원, 수도권에 절반 이상 몰려
병원 정보 공개를 놓고 정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임신 성공률 등 일부 정보가 공개될 경우 오히려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병원 간 경쟁 심화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해 '난임 시술 의료기관 질 관리 평가체계 개선을 위한 연구' 보고서를 발간한 이수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기관별 결과가 노출됐을 경우 자료 오용, 해석상의 한계로 의료기관 쏠림 현상 등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통계지표를 지역별, 또는 의료기관별로 공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판단한다"고 의견을 냈다.

이미 정부가 내놓은 평가 결과만 봐도 난임 병원이 수도권에 쏠려있는 현상은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 정부는 2차 평가를 통해 평가 기간인 2021년 기준 대상 기관 수의 45%(97곳)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있고, 전체 시술 18만9373건 중 68.5%가 수도권에서 진행됐다고 밝혔다. 개별 도시로 보면 서울에서만 전체 시술 건수의 40.4%(7만6585건)가, 경기·인천에서 28.1%(5만3236건)가 이뤄졌다.

아시아경제가 난임 시술 의료기관 2차 평가 결과를 세부적으로 살펴본 결과 평가 대상 의료기관 233곳 중 서울과 경기, 인천에 가장 높은 등급인 1등급을 받은 기관이 집중해 있었다. 인공수정 1등급은 52%(60개), 체외수정(시험관) 1등급은 54%(56개)다. 인공수정은 총 2개 등급, 시험관은 총 4개 등급으로 나뉘는데 각각 1등급은 115개, 104개 기관이 받았다. 물론 수도권 내에 의료기관 자체가 많아 정부 평가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일정 수준 미만의 시술을 진행한 이른바 '평가 제외 대상'도 인공수정 40곳, 시험관 49곳으로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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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시술 경험이 많은 병원도 수도권에 집중해 있다. 전체 난임병원 연평균 시술 건수는 인공수정 165.12건, 시험관 시술 1063.46건이었다. 인공수정의 경우 연간 100건 이상 실시한 병원 67곳 중 38곳이, 시험관 시술은 53곳 중 30곳이 서울·경기·인천에 있었다. 높은 시술 횟수가 곧 임신 성공으로 직결되는 건 아니지만,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전문의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볼 때 난임 부부들의 서울행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난임병원 44%는 '자료 미제출'…"의무화 필요"
평가 대상 기관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평가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 또한 난임 부부들이 병원 선택 과정에서 정부 평가를 참고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한다. 정부는 모자보건법 난임 시술 의료기관의 지정 등에 관한 법률을 바탕으로 3년마다 난임 병원의 기준과 실적을 평가하고 평가 결과에 따라 지정 취소도 가능하게끔 돼 있다. 또 관련 통계 자료를 수집, 분석, 관리하고 평가 결과를 공개한다. 현재까지 정부가 지정 취소를 결정한 난임 시술 의료기관은 없다.

2022년 실시한 2차 평가의 경우 평가 대상 283곳 가운데 ▲기관조사표 ▲난임 시술 기록지 등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기관만 68곳에 달했다. 연간 인공수정 시술 건수 10건 미만, 체외수정 시술 30건 미만인 병원이 56곳으로 시술 건수 부족에 따른 평가 제외된 기관을 감안하면 정부가 지정한 난임 시술 의료기관으로 지정된 전체 평가 대상 중 44%가 평가에서 빠진 셈이다. 2019년 진행한 첫 난임 시술 의료기관 평가에서도 전체 평가 대상 377곳 중 70곳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당시 정부가 평가를 위해 자료를 요구하자 자진해서 지정 취소를 결정한 병원은 90곳에 달했다.

결국 난임 시술 의료기관의 응답률은 1차 40.3%에서 2차 56.2%로 증가했으나, 평가등급을 받은 의료기관 자체가 50%대에 그쳐 여전히 적은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평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미제출 기관에 대해서는 자료를 내도록 독려하고 보완 조치를 요청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의료기관 지정을 반납하는 병원이 나오는 등 여러 일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난임 시술 의료기관을 지정, 평가하면서 질을 관리하고 정보를 제공하기로 한 만큼 자료 제출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연구위원은 "난임 시술 의료기관을 지정, 관리하기 위해서는 자료 제출이 필수다. 미제출기관에 대한 별도 조치가 필요하다"며 법령 개정을 통한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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