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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이슈 하마스·이스라엘 무력충돌

이스라엘, 가자 북부서 ‘굶겨 죽이기 작전’ 연습하나···미국 “주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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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6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난민촌에서 어린이들이 식량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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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가까이 구호품 공급이 끊긴 가자지구 북부의 인도주의적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 내각 내 극우 인사들이 가자 북부에서 이른바 ‘굶겨 죽이기 작전’을 추진하는 가운데, 미국은 이스라엘이 실제 이를 단행하는지 예의주시하겠다고 경고했다.

16일(현지시간) 미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내각 내 극우 강경파 인사들은 자국 군부와 미국의 반대에도 가자 북부에 소개령을 내린 뒤 이곳을 완전히 봉쇄하고 구호품 공급을 차단하는 이른바 ‘굶겨 죽이기 작전’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 계획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으나, 총리실은 이를 부인했다.

‘장군의 계획’이라고 불리는 이 작전은 북부에서 하마스 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일종의 포위 작전으로 민간인 소개령을 내린 뒤 떠나지 않은 자는 모두 무장세력으로 간주해 사살하거나 굶겨 죽이겠다는 것이 골자다. 봉쇄 지역에 남은 사람들에게 물과 음식은 물론, 연료와 의료 지원도 차단된다. 이 계획엔 가자지구를 남북으로 분할하고 이스라엘군이 북부 지역을 무기한 통제하면서 하마스가 배제된 새로운 행정 및 통치 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는 이스라엘 퇴역 장군이자 국가안보위원회 전 의장인 지오라 에일란드가 제안한 것으로, 에일란드는 WP에 “시민들을 굶겨 죽이는 것은 불법이지만, 그 전에 떠날 수 있는 시간과 방법을 제공한다면 합법”이라며 “사람들이 떠나지 않아 죽는다면 그 역시 그들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식량을 무기화한 강제 이주는 그 자체로 전쟁 범죄이며, 대량의 피란민을 감당하기에는 남부가 이미 심각한 과밀 상태라고 경고하고 있다. 장기간 전쟁으로 부상을 입거나 거동이 불편해 피란 행렬에 오를 수 없는 이들도 상당하다.

유엔은 현재 북부에 고립된 40만명 가운데 절반 정도가 어린이라고 추정했다. 최근 이스라엘군이 대피령을 내린 뒤 피란길에 오른 이들에게 발포하면서 두려움 때문에 길을 나서지 못하는 주민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스라엘은 발포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복수의 이스라엘 소식통은 이 작전을 두고 내각 내 강경파와 군 최고위 간부 간 분열이 심화하고 있으며,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이 홀로 이 작전에 반대하고 있다고 WP에 말했다.

이미 이스라엘이 이 작전을 일부 실행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정치학자인 가일 탈시르는 “네타냐후 총리가 연정 내 극우 인사들의 이탈 및 연정 붕괴를 막기 위해 일부 조치를 허용했을 수 있다”면서 “현재 북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분명 이 계획의 실험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북부 지역에는 지난달 30일 이후로 식량과 물, 의약품 등 구호품이 일절 반입되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13일부터 북부 자발리야 난민촌에 대한 대규모 공세를 재개해 이미 ‘장군의 계획’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경향신문

한 팔레스타인 소년이 16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 알발라에 위치한 알아크사 병원 안뜰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무너진 피란민 텐트 바닥에 흩어진 밀가루를 모으고 있다. 이틀 전 이스라엘군은 이 병원을 공격해 병원 부지에서 생활하던 피란민 텐트촌이 불타고 최소 4명이 사망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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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포위 공격이 이어지고 있는 북부 상황은 거리에 방치된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할 만큼 처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부 지역 긴급 구조대 책임자인 파레스 아파나는 CNN에 “이스라엘군은 모든 생명을 파괴하고 있으며, 배고픈 들개들이 거리에 방치된 시신을 훼손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시신의 신원을 식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14일엔 식량을 얻기 위해 배급소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이스라엘군이 발포해 최소 10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다치는 일도 발생했다.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로 작전 실행을 부인하며 구호품 반입을 막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매번 이스라엘을 두둔해온 미국도 이스라엘에 “‘굶주림 정책’을 펴는지 주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는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소위 ‘굶주림 정책’은 끔찍하고 받아들일 수 없으며 국제법 및 미국법에 따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미국 정부가 30일 내로 가자지구 구호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무기 지원을 제한하겠다고 이스라엘을 압박한 가운데, 이스라엘은 이날 요르단이 보낸 구호 트럭 50대의 가자지구 진입을 허용했으며 북부에도 트럭 28대를 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은 매일 최소 350대의 트럭이 가자지구에 들어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 정부는 북부 지역 주민을 남부로 강제 이주시키지 말 것과 북부 고립 작전을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유엔 난민기구 샘 로즈는 이스라엘의 북부 고립 작전이 바뀌었는지에 대해 “판단하기 이르다”면서 “구호품 배급을 위해선 안전한 통행로가 더 많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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