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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겨를]아파트공화국, 카페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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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NS에서 화제가 된 사건이 있다. 강남의 모 아파트 단지에 마치 학교 교가 같은 느낌의 아파트 찬양 시를 새긴 비석이 알려진 것이다. 우리의 궁궐, 천 년의 보금자리, 이상향, 영원한 파라다이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함께 과거 절대권력에 부역했던 문인들이 떠오른다. 낯뜨거운 표현에 처음엔 웃었지만 생각할수록 기이하다. 그들은 아파트공화국인 이 나라의 시민이기를 거부하고 그들만의 왕국을 짓고 살아서 천국을 누리나 보다.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다. 카페천국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대형 카페가 경쟁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대부분이 북한산 뷰를 품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경관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 하나 있다. 그래도 동네 주민으로서 한 번은 들러야 하지 않겠나 핑계를 대며 아내와 함께 가보았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주차 안내를 하시는 분이 우리 차로 오더니 차 안을 살펴보고 승차 인원 숫자를 적은 종이를 준다. 1인 1음료 주문을 체크하는 시스템이다. 시작부터 감시받는 느낌에 기분이 좋지 않다. 내심 평일이니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다정한 연인들과 삼삼오오 남녀노소 손님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카페의 기본 음료인 아메리카노 커피 가격을 7000원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올해는 9000원이다. 카페의 경관은 가격에 충실히 반영된다. 이미 비쌌던 가격을 물가 상승을 핑계로 덩달아 올린 것이다. 엄청난 가격의 음료를 묻지도 않고 일회용 종이컵에 담아준다. 이제는 화가 날 지경이다. 사람들은 모두 바가지요금과 불친절을 감당할 만반의 준비가 된 듯하다. 아름다운 천국을 훼손하는 불경스러운 손님이 되지 않기 위해 나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마음이 상하니 그림 같은 조경과 경치도 곱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잠시 앉아서 우리가 다시 안 올 이유를 확인하고 일어났다. 괜찮다. 나는 길 가다가 눈에 띈 꽃 한 송이에도 얼마든지 감동할 수 있으니까. 내가 잘 못하는 게 돈 버는 일이고, 또 그만큼 못하는 게 돈 쓰는 일이다. 이런 곳에서 돈 쓰는 건 차마 못할 일이다.

혼자서 정신 승리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화가 난다. 2022년 말 기준 전국 커피전문점 수는 10만729개로 10만개를 돌파했다. 2016년 5만1551개에서 불과 6년 새 2배 가까운 수준으로 늘어난 것이다. 대략 편의점보다 2배가량 많다고 한다. 지금도 멈추지 않고 늘어난다. 대한민국의 경관 좋다는 곳은 모두 이렇게 사유화될 것이다.

감세로 재정 압박을 받고 있는 정부는 제값을 받지 못하고 국유 부동산을 대량 매각하고 있다고 한다. 나라 땅은 헐값에 팔아넘기고, 우리의 마을은 그들만의 천국인 아파트가 차지하고, 전국 팔도 이 땅의 경치 좋다는 곳에는 어김없이 카페가 들어서며 카페천국이 되었다.

누군가는 똘똘한 한 채를 차지하고 스스로를 찬양하지만 다수의 시민은 제 한 몸 누일 공간조차 마련하기 쉽지 않다.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 공유공간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감당할 수 없이 비싼 사적공간, 사라지는 공유공간. 심령이 가난한 우리의 복으로는 살아내기 버거운 아파트공화국 카페천국이다.

경향신문

김수동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


김수동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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