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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허창언 보험개발원장 "실손청구 간소화, 앱 터치 한번이면 끝···소액이라도 꼭 받으세요" [CEO&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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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간소화 시행···국민불편 해소

귀찮아서 소액이어서 한해 수천억 포기

동네 코로나 백신재고 한눈에 보여줬듯

간소화 서비스 병원 '디지털 맵'도 추진

▷車보험시장 선진화 고민

전기차 전용보험 필요하지만 아직 일러

경미한 사고 '나이롱환자' 걸러내려면

치료비 산정에 공학적 판단도 활용해야

▷IT에 진심인 금융전문가

고령화·저출산에 보험산업 성장 한계

AI·빅데이터 기반 시스템 혁신 이루고

동남아 등 신시장 투자서 해답 찾아야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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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종이 서류로 실손 보험 청구하시느라 불편하셨죠. 다음 주에 드디어 실손 청구 간소화가 시작됩니다. 많이 이용하시고 얼마 안 되는 치료비라도 꼭 청구하세요.”

이달 25일부터 30병상 이상 요양시설에서 실손 보험 청구 간소화가 시작되는 가운데 허창언 보험개발원장은 16일 서울 여의도의 보험개발원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실손 보험 가입자들에게 이같이 당부했다.

실손 청구 간소화 시스템은 병의원이 환자 각각의 보험금 청구 서류를 전송 대행 기관인 보험개발원을 통해 보험사에 전자적 방식으로 전송하는 체계다. 병원에서 보험사로 실손 청구 관련 서류가 전달되기 때문에 진료받은 환자가 일일이 서류를 챙겨 오프라인으로 제출하거나 사진을 찍어 앱 등을 통해 청구할 필요가 없다. 국민 불편이 크게 해소되고 이런저런 이유로 보상을 받지 못했던 실손 보험 가입자들도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된다.

보험개발원은 실손 청구 간소화의 전송 대행 기관으로 전산 시스템을 개발·구축하고 병원이나 전자의무기록(EMR) 업체로부터 서류를 받아 각 보험사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실손 청구 간소화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기관이다. 허 원장은 “종이 서류를 팩스나 PC·스마트폰으로 보내는 실손 보험 청구가 너무 불편해 집에 서류를 쌓아 놓고 있다는 사람도 있더라”며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보험개발원·병의원이 동참해 국민 불편을 덜어드리고자 노력했으니 소액이라도 포기하지 마시고 꼭 청구하시라”고 재차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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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 보험은 2022년 말 기준 약 4000만 명이 가입해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도 불린다. 매년 최소 1억 건의 청구가 이뤄지지만 ‘소액이어서’ ‘귀찮아서’ 등의 이유로 보험료 받기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윤창현 전 국민의힘 의원실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실손 가입자들이 청구하지 않은 보험금은 2021년 2559억 원, 2022년 2512억 원, 2023년 3211억 원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불편에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제도 개선을 권고했고 14년 만인 지난해 가을 간소화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올해는 30병상 이상 병원과 보건소에 간소화를 우선 적용하고, 내년 10월 25일부터는 의원과 약국까지도 포함시킨다는 게 정부·보험·의약계의 목표다.

허 원장은 직접 태블릿PC를 손에 들고 현재 막판 테스트 중인 실손 청구 간소화 앱을 보여주며 자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서비스가 시작되면 실손 보험 가입자는 앱에서 전송 지시 버튼만 누르면 된다. 그러면 병원에서 발행한 전자 서류가 알아서 환자가 가입한 보험사로 가게 된다. 환자는 종이 서류를 직접 전송하지 않아서 좋고 병원은 일일이 서류를 떼줘야 하는 업무 부담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허 원장은 인터뷰 내내 표정에서부터 어조까지 자신감이 넘쳤다. 현재 자체 정보기술(IT) 역량을 갖춘 47개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병원은 각각 계약한 EMR 업체가 협조해줘야 시스템 참여가 가능하다. 평소 진료 차트나 영상 기록 등을 전산화해 관리해주는 EMR 업체만이 환자별 영수증과 진료내역서 등을 보험개발원에 보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55개 EMR 업체 중 30개사 정도만 참여를 확정한 상태다. EMR 업체들은 보험 업계가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개발비 1200만 원과 병원별 설치비 10만~20만 원 등은 너무 적고 시스템 유지 보수 비용까지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처음부터 야박하게 할 생각 없었어요. 기존 예산 1150억 원 외에 최근 50억 원을 더 확보해 EMR 업체에 (유지 보수비를) 사후 정산하는 것으로 협의해 나가고 있습니다. 좀 지나면 더 많은 업체들이 실손청구 간소화 플랫폼에 들어오게 될 겁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전국 7725개의 30병상 이상 병원과 보건소 중 연내 4700개 이상(보건소 3490개 포함)을 간소화 시스템에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목표대로 되면 병원 수 기준 60%, 청구 건수 기준 70% 이상이 간소화 플랫폼에 참여하게 된다.

보험개발원은 디지털 지도를 서비스하는 포털 사이트들과 협력해 실손 청구 간소화가 가능한 병원이 PC나 스마트폰에 표출되게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허 원장은 “코로나19 팬데믹 때 디지털 맵에 병의원별 백신 재고 정보가 표시됐던 것처럼 실손 청구 간소화 서비스 병원이 지도에 나오면 실손 가입자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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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를 돌려 최근 운전자들의 관심이 큰 전기차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전용 자동차보험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보험 요율을 산정하고 새로운 보험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보험개발원 본연의 업무이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배터리라는 한 개의 단일 부품이 차값의 약 40%를 차지하고 한 번 사고가 나면 손해 금액이 상당히 크다. 게다가 화재 사고가 나면 완성차 회사, 배터리 기업, 충전소 운영사 중 어디에 책임이 있는지 규명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내연기관차와 분리된 전기차 전용 자동차보험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허 원장은 “필요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보험 요율을 산정하려면 통계 사이즈가 충분히 커야 하고 기간 또한 최소 5년이 넘어야 하는데 전기차는 아직 역사가 짧고 등록 대수(올 상반기 기준) 역시 약 60만 대로 전체 차량 등록 대수 2613만 대 중 2.3%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다만 “시대 흐름상 결국 전기차 시대로 이행할 것이므로 훗날에는 전기차 전용 자동차보험이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그 전에는 ‘배터리 신품 가액 보상 특약’이나 ‘충전 중 사고 보상 특약’ 등에 가입해 전기차 고유의 위험에 대비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보험개발원은 최근 경미한 자동차 사고 환자의 경우 의학적 판단뿐만 아니라 공학적 판단을 치료비 산정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관심을 끌었다. 자동차가 어느 정도 속도로 어떻게 충돌했을 때 탑승자의 부상 위험이 어느 정도 된다는 공학적 기준을 세워 보험금 지급에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험 업계가 ‘가벼운 자동차 사고 환자 중 과잉 진료를 받는 사례가 많다’고 오랜 기간 호소해온 끝에 나온 아이디어다. 허 원장은 “경미한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 여부는 자기공명영상(MRI)·컴퓨터단층촬영(CT) 등을 찍어도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렵고 의사의 진단은 현재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는 있으나 특정 부상이 해당 교통사고로 인한 것인지는 판단하기가 힘들다”며 “공학적 분석 결과가 보험금 지급 기준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미한 사고가 부상을 유발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53명의 성인을 차에 태우고 사고 재현 시험을 한 결과 전문의 검진 후 병원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허 원장은 금융 IT 분야에 관심이 많다. 특히 보험담당 부원장보로 금감원 생활을 마친 뒤 2015년부터 2년간 금융보안원장을 지내며 IT에 대한 식견을 넓혔다. 현재도 외부 강연 등에서 보험 산업 또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에 기반한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파하고 다닌다. 보험 산업과 테크가 어떤 방식으로 결합해야 할까. “크게 두 가지예요. 첫째, 상품 개발부터 마케팅·언더라이팅(계약 인수 여부 판단)·손해사정·리스크 관리까지 보험 산업 가치사슬의 전 영역에서 신기술을 활용한 혁신을 가속화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사고 사진을 AI로 분석해 예상 수리 견적을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식이죠. 둘째로는 전통적인 위험 보장에서 벗어나 데이터에 기반한 사전 예방 중심의 종합 위험 관리 서비스 제공자로 비즈니스를 확장해야 합니다. 스마트워치·스마트팩토리 등 지능형사물인터넷(AIoT) 시스템을 활용해 건강 관리, 위험 예방 등 신규 서비스를 펼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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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의 보험 산업은 포화 상태다. 급격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노년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사망 보험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는 등 보험 산업의 미래는 그다지 밝은 편이 아니다. 허 원장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 역시 “국내 보험 산업은 시장 포화로 인한 성장 둔화에 직면해 있고 제도와 금융 환경 변동성 확대로 불확실성이 크다. 사회적으로는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수요 기반이 위축돼 내수 위주의 한국 보험 산업은 성장 한계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그는 해외 진출로 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고 본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적극적인 해외투자와 확장 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라면서 “해외 진출을 통해 중장기적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동남아가 좋은 시장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허 원장은 “동남아 국가들은 경제발전에 따라 보험 시장 규모 확대가 예상된다”며 “보험 침투율 상승 여력이 큰 국가들을 중심으로 현지화 전략을 구사해 신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이것은 발전 전략임과 동시에 한국 보험 산업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오승현 기자

◇허창언 보험개발원장

△1959년 제주도 서귀포 △제주제일고 졸업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87년 한국은행 입행 △1999년 금융감독원 보험감독국 팀장 △2011년 보험감독국장 △2013년 보험담당 부원장보 △2015년 금융보안원장 △2018년 신한은행 상임감사 △2022년 보험개발원장

맹준호 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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