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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무인기 나비효과…'북·러조약' 들먹이며 러시아도 끼어들었다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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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발 '평양 침투 무인기 사태'가 역내 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뇌관이 되는 모양새다. 북한이 "미국놈들이 책임지라"(14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며 뜬금없이 비난의 화살을 돌리자, 그 직후 러시아도 '북·러 조약'(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들먹이며 "한반도가 위험해지는 상황을 막겠다"며 끼어들었다.

이번 무인기 사태를 '적대적 두 국가론' 굳히기에 활용하려는 '김정은'과 미 대선 전 '한반도 개입권'을 챙기려는 '푸틴', 그리고 동맹 방위 공약을 중시하면서도 대선 직전 한반도서 우발적 충돌 시나리오는 어떻게든 막으려는 '바이든'의 고민이 역학 작용을 일으켜 사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푸틴이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김정은식 '남북 단절 시나리오'를 부추길 경우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는 더욱 증폭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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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외무성이 11일 저녁 ‘중대 성명’을 내고 “대한민국이 공화국 수도 평양에 무인기를 침투시켜 '삐라(대북 전단)'를 뿌리는 군사적 도발 행위를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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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조약 기초해 위험 막겠다"



14일(현지시간)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한국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 침입해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는 최근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했다. 그러면서 "서울(한국)의 이런 행동은 북한 주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자 독립 국가의 합법적인 국가, 정치 체계를 파괴하고 자주적으로 발전할 권리를 박탈하기 위한 내정간섭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직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데도 한국군을 '주범'으로 규정한 북한의 입장을 그대로 재생산한 셈이다.

이어 "러시아는 북·러 조약에 기초한 것을 포함해 한반도에서 위험이 심화하는 걸 막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되돌리기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체결돼 러시아가 한반도 유사시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최초로 보장한 것으로 평가받는 '북·러 조약'을 이번 무인기 사태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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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러시아 외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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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북·러 조약 3조는 "어느 일방에 대한 무력 침략 행위가 감행될 수 있는 직접적인 위협이 조성되는 경우"를 전제로 일방이 요구할 경우 관련 협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경우 "서로의 입장 조율", "조성된 위협을 제거하는 데 협조", "협상 통로를 지체 없이 가동" 등을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11일 한국 무인기 침입을 주장하며 이를 '엄중한 군사적 공격 행위'로 규정했다. 문안으로만 보면 북한으로선 북·러 조약 3조의 발동 조건인 '무력 침략 행위'에 해당할 주장할 여지가 있다.

또 자하로바 대변인이 이날 성명에서 북한의 '주권'과 '자주적 발전 권리'를 굳이 강조한 배경에는 북·러 조약 상 러시아가 개입할 수 있는 조건인 유엔 헌장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헌장 51조는 '유엔 회원국에 무력 공격이 있을 경우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을 가질 수 있다'고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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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한 모습. 스푸트니크.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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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러시아 일방 주장, 깊은 유감"



정부는 15일 "러시아 외무부가 사실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은 북한의 일방적 주장을 두둔하며 북한에 대한 주권 침해 및 내정 간섭을 운운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은 동족을 핵무기로 위협하며 공격적 언행을 서슴지 않는 북한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과거 북한의 소행임이 확인된 수차례의 대남 무인기 도발 시에는 러시아 측이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설명을 촉구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북한은 2014년, 2017년, 2022년 무인기를 남측에 침투시켰으며, 2014년과 2017년에는 무인기 잔해가 국내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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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서울청사 외교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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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 앞두고 조약 최대한 활용



러시아가 침묵을 깨고 무인기 사태에 '참전'한 배경에는 역내 역학구도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깔렸을 수 있다. 다음 달 5일 미 대선 결과에 따라 북·러 관계는 크게 달라질 수 있어서디.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앞서 "당선 즉시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종전 시 북·러 관계도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푸틴으로선 그 전에 한반도에서 '지분' 확대를 노릴 수 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러 조약이 실효성을 가질지 혹은 먼지만 쌓이는 문서뿐인 조약으로 전락할지는 다음 달 미국 대선에 따라 재정립될 미·러 관계에 달렸다"고 분석했다.

공교롭게 같은 날 푸틴은 북·러 조약 비준에 나섰다. 타스 등 러시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푸틴은 이날 비준 관련 법안을 하원에 제출했다. 북한은 지난 7일 한국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를 열었지만, 조약 관련 소식은 공개된 게 없다. 다만 북한에선 김정은 직권으로도 조약 비준이 가능하다. 언제든 양국이 동시에 비준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무인기 사태, 북·러 조약과 얽혀



북한이 연일 남측을 향해 "혹독한 대가"를 위협하는 가운데 무인기 사태를 명분삼아 북·러가 새 조약까지 발동할 경우 역내 안보 정세가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대남 적개심 고취에 이번 사태를 십분 활용하려는 김정은과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더 확대하려는 푸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무인기 사태를 "미국이 책임지라"는 전날 김여정의 다소 생뚱맞은 주장은 향후 북·러가 양국 간 조약을 근거로 한·미 연합훈련까지 문제 삼을 개연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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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4일 '한국 무인기 침범 사건'과 관련해 지난 12일 외무성이 '중대 성명'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접한 온 나라가 '보복 열기'로 끓는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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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북·러 모두 아직은 직접 행동보단 공동 행동 가능성만 흘리며 한국의 반응을 떠보는 분위기다. 자하로바 대변인도 "남한 당국은 북한의 경고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긴장 완화를 촉구하는 외교적 수사에 방점을 뒀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북한의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서 '상황이 악화할 때는 북·러 조약에 따라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해준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이런 입장이 실제 군사적 공동 조치까지 나아가긴 어렵다"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러시아는 한반도의 분쟁에 끌려들어 가는 상황을 꺼리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거리를 두려 할 것"이라며 "북한도 윤석열 정부와 정면충돌은 부담이 크기 때문에 뜬금 없이 미국을 끌어들여 '물타기'를 시도하며 내심 '말려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이 오는 16일 방한해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가 서울에서 열린다. 미국 측은 북한 도발에 함께 대응하겠다는 연합 방위 의지를 표명하면서도 대선을 코앞에 두고 한반도마저 무력 충돌에 빠져들어선 안 된다는 판단에 상황 관리에 방점을 둘 것으로 관측된다. 유엔군사령부(유엔사) 역시 전날 "정전협정을 엄격히 준수하며 조사하고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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