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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합성생물학, 2030년 반도체의 3배 성장... "공공 바이오 파운드리가 생태계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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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뒤 합성생물학 시장 규모 3.6조 달러
한국 기술 세계 4위지만, 상용화는 더뎌
바이오 파운드리로 자동화·고속화 필요
창의적 스타트업 키워낸 런던 벤치마킹
한국일보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연구센터가 설계한 바이오 파운드리 모식도. 생명연 합성생물학연구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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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바이오기업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은 개발에 착수한 지 11개월 만인 2020년 12월 허가를 받았다. 신약 개발에 통상 5~10년이 걸리지만,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것이다. 특히 모더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체가 해독된 지 42일 만에 백신 후보물질에 대한 임상시험에 진입했다. 미국의 합성생물학 기업 긴코바이오웍스와 협력해 핵심 원료인 메신저 리보핵산(mRNA)을 대량으로 빠르게 얻었기 때문이다.

합성생물학은 생명과학에 공학 개념을 적용한 융합 학문으로, 유전자(DNA)·단백질·세포 등 생명체의 구성 요소를 설계하거나 제작하는 기술이다. 인슐린 주사제를 대량 생산해 질병 치료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식량생산·기후변화 같은 글로벌 복합 난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식물성 대체육이나 배양육도 합성생물학 결과물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2030년대에 합성생물학 시장 규모가 최대 3조6,000억 달러(약 4,865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시장 성장 예상 규모(1조 달러)의 3배다.

15일 과학계에 따르면 각국은 게임체인저가 될 이 분야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지난 4월 ‘첨단바이오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합성생물학을 바이오산업의 혁신기반기술로 키워 융합 신산업을 창출하겠다는 내용이다. 또 이달 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글로벌 센터 프로그램’ 중 생물다양성 활용 및 바이오 파운드리 시스템 구축 연구에 국내 5개 연구팀이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7~11일 ‘한-글로벌 합성생물학 협력주간’에는 한국과 미국, 영국 등의 전문가가 모여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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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대전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회 한-미 합성생물학 공동 컨퍼런스'에서 합성생물학 협력 유공자 포상 수상자와 행사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김장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 네이선 힐슨 로런스버클리연구소 애자일(Agile) 바이오 파운드리 책임자, 이창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 김동명 충남대 교수, 진용수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 박한오 바이오니아 대표. 과기정통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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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수준으로 따지면 한국의 합성생물학 기술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지난 8월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가 발표한 ‘20년간 핵심기술 추적지표’에 따르면 한국은 최근 5년(2019~23년)간 합성생물학 연구 기술 순위에서 중국과 미국, 인도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관련 스타트업 창업이나 혁신 제품 상용화는 활발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난 8일 대전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차 한-미 합성생물학 공동 컨퍼런스에서 만난 국내외 전문가들은 연구 생태계의 부재를 원인으로 꼽았다. 합성생물학 연구에 날개를 달 수 있는 ‘바이오 파운드리’가 갖춰지지 않아 진전이 더뎠다는 분석이다. 바이오 파운드리란 인공지능(AI)·로봇 등의 기술을 접목해 합성생물학 연구개발(R&D) 과정을 자동화 및 고속화하는 시설을 말한다. 합성생물학에서는 새로운 유기체를 설계해 제작하고, 시험을 통해 피드백을 얻어 다시 발전시키는 과정(DBTL·Design Build Test Learn)이 중요하다. 바이오 파운드리를 통해 이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합성 유기체를 양산할 수 있다.

진용수 미국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대 식품미생물학 교수는 “한국엔 바이오 파운드리가 없어 연구자들이 새로운 합성생물학 아이디어를 테스트조차 하기 쉽지 않다”며 “간단한 실험을 하는 데도 최소 5억~10억 원짜리 기계가 필요하니 생태계가 형성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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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진용수(왼쪽) 미국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대 교수와 네이선 힐슨(가운데) 미국 로런스버클리연구소 애자일(Agile) 바이오 파운드리 책임자, 폴 프리먼(오른쪽) 영국 임피리얼칼리지 교수가 합성생물학 생태계 활성화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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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와 산업계 연구자들이 다양하게 참여하는 공공 바이오 파운드리 구축이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영국이 좋은 예다. 런던의 공공 바이오 파운드리를 책임지는 폴 프리먼 임피리얼칼리지 교수는 “작은 스타트업 약 70개가 런던 바이오 파운드리를 통해 기술을 발전시켰고, 그중 27개 회사가 성장해 투자 가치가 약 8억 파운드(약 1조4,125억 원)에 달하고 있다”며 “작지만 창의적인 기업들의 연구를 지원한 덕분에 생태계가 생긴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나라도 공공 바이오 파운드리 설립이 추진될 예정이다. 올 1월 ‘바이오 파운드리 인프라 및 활용기반 구축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사업 기간은 5년(2025~29년)으로 총 1,263억 원이 투입되고 빠르면 2027년쯤 시설이 완공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심의 과정에서 당초 계획했던 시설 구축 외에 바이오 파운드리 활용기술 R&D 예산이 빠진 것은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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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대전컨벤션센터에 모인 세계 합성생물학 전문가들이 한국의 합성생물학 생태계 조성과 바이오 파운드리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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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합성생물학 육성법’을 발의했다. 중국이 2022년부터 ‘바이오경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투자하듯, 우리나라 역시 장기 계획으로 안정적인 예산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합성생물학과 다양한 산업을 융합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조병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석좌교수는 “분야 간 융합을 통해 더 혁신적인 생각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을 개선하고 장기적인 인재 육성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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