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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금강산 관광객 오가던 그길…北 경의선·동해선 연결도로 폭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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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도로 22년 만에 다시 단절

헤럴드경제

북한이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일부 구간을 폭파한 15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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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북한이 15일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 도로 일부 구간을 폭파하면서 마지막 남은 남북 경제협력 프로젝트가 사실상 사망선고을 받았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낮 북한은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일부 구간을 폭파시켰다.

북한은 지난 8월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를 차단한 데 이어 도로 폭파로 남북 간 육로를 완전히 끊은 셈이다.

경의선·동해선 철도와 육로는 1992년 2월 발표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에 합의한 데서 비롯돼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본격 복원이 추진돼 왔다. 분단과 6·25전쟁으로 끊어진 국토의 허리를 다시 잇는다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2000년 7월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경의선 철도 연결에 합의하고 2002년 4월 임동원 당시 특사가 방북해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에 합의하면서 그해 9월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사업 착공식을 가졌다. 2002년 말에는 경의·동해선 임시도로가 완공됐고 2003년 6월 비무장지대(DMZ)내 군사분계선(MDL)에서 철도 연결식도 있었다.

이후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는 개성공단 기업의 물류 수송과 금강산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역할을 했다.

철도는 2007년 5월 시험 개통에 이어 2007년 12월 경의선 화물열차가 개통됐으나, 2008년 11월 남북관계 경색으로 11개월 만에 멈췄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1998년 10월 현대그룹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간 '금강산 관광사업에 관한 합의서' 체결로 추진됐다. 그다음 달 해로 관광에 이어 2002년 육로 관광까지 성사됐으나 2008년 7월 우리 관광객 피격 사망으로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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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강원 고성군 현내면 제진검문소 인근 명파교를 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제진검문소는 통일전망대 등 민간인출입통제선을 오갈 때 거쳐야 하는 군 시설이다. 북한이 이날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했다고 밝히는 등 남북 간 군사 긴장이 고조되면서 민통선 출입도 통제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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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국의 금강산 남측 자산 몰수에 이어 2019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라고 지시한 후 남측 시설물이 잇달아 자취를 감췄다.

개성공단은 2000년 현대아산과 아태평화위 간 북측의 공업지구 개발에 관한 합의로 시작돼 2003년 6월 첫 삽을 뜬 뒤 한때 북한 노동자 5만5000여명과 남측 노동자 1000명의 일터였다.

그러나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연이은 장거리 로켓 발사에 따라 박근혜 정부가 그해 2월 10일 가동을 멈추게 했다. 북한은 2020년 6월 북한은 공동연락사무소와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건물까지 폭파시켰다.

이런 장기화된 남북단절 속에서도 최근까지 남북을 연결하는 경의선과 동해선만큼은 복원된 상태를 유지했었다.

그러나 작년 말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선언하고, 올해 초 "북남교류협력의 상징으로 존재하던 경의선의 우리 측 구간을 회복불가한 수준으로 물리적으로 완전히 끊어 놓는 것"을 지시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북한은 경의선·동해선을 단절하는 일련의 조치에 이어 이날 일부 구간을 폭파, 임시도로 연결 약 22년 만에 길이 다시 끊어져 버렸다.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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