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진료권역, 서울권역에 통합돼 '빅5' 병원에 환자 빼앗겨
'1천만 관광객+섬 특성' 반영해 진료권역 분리 추진
시설·인력 대대적 투자해 서울 대형병원 못잖은 의료인프라 완성
해외도 좋지만 제주도 좋아 |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권지현 기자 = 연간 1천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해 응급 의료 수요가 높은데도, 같은 진료권으로 묶인 서울에 환자를 뺏겨야만 했던 제주도에 상급종합병원이 지정될 전망이다.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 중인 정부는 제주도에 상급종합병원을 지정하기 위해 연평균 1천300만명이라는 관광객 숫자와 '섬'이라는 제주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의료 시설·장비 등은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기준을 충족할 수 있으나, 도내 병원 간 '교통정리'를 통해 중증환자 비율 기준을 맞춰야 상급종합병원이 탄생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에서 제29회 민생토론회를 열고 이런 내용의 제주권 상급종합병원 지정 검토 방안을 공개했다.
제주대병원 응급의료센터 |
◇ 서울과 제주가 왜?…"배 타고 전남권 가기보단 비행기 타고 서울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규정에 따라 나눈 진료권역은 총 11개다.
진료권역 분류 기준은 ▲ 권역 내 인구 100만명 이상 ▲ 자체 충족률(환자의 해당 권역 소재 의료기관 이용률) 40% 이상 ▲ 환자 이동 거리 120분 이내 등이다.
이 가운데 서울권에는 서울특별시 외에 광명시·과천시·구리시·남양주시·하남시·여주시·가평군·양평군 등 경기도의 일부 지역이 포함됐다.
특이한 점은 지리적으로 근거리인 경기도 지역 외에 제주도가 서울권에 묶여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구 등 진료권역 분류 기준 외에 제주도민들의 의료 서비스 양상을 고려했다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조귀훈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제주도는 1995년부터 진료권역 분류에서 서울권에 묶여 있었다"며 "배를 타고 전남권으로 가기보다는,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가는 게 환자들로서는 더 빠르고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제주도민의 원정 진료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제주에서 관외 진료를 떠난 환자는 2013년 9만491명에서 2022년 14만1천21명으로 55.8% 늘었다.
관외 진료비는 2013년 814억7천여만원에서 2022년 2천393억여원으로 193.7%나 급증했다.
빅5 등 주요병원, 임시공휴일도 정상진료 |
◇ 제주도, 서울권역에 통합돼 '빅5' 병원에 환자 빼앗겨
같은 권역으로 분류되는 서울권의 대형 병원들을 상대하느라 그간 제주도에는 상급종합병원이 설 자리가 없었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을 지정할 때 진료권역별 상급종합병원의 병상수를 산출하고, 이에 따라 각 병원의 신청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 병원들은 병상을 많이 갖추고 의료 자원이 풍부한 '빅5' 병원 등 대형병원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제주도민들은 중증 진료를 받을 때 상급종합병원이 있는 뭍으로 떠나야만 했다.
조귀훈 과장은 "예를 들어 상급종합병원에 필요한 병상수가 1천개로 산출됐고, 이에 따라 해당 권역의 병원들이 신청하면 복지부에서 각 병원을 평가해 1등부터 병상을 배정해 상급종합병원을 지정한다"며 "이때 서울의 대형병원들이 상당수 병상을 차지하면 제주도 병원들에는 순서가 가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병원은 지금 |
◇ "관광객 등 응급실 이용자 많고, 태풍 오면 고립되는 제주 특성 반영"
복지부는 현재 제주권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검토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다.
연말께 나올 연구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대통령이 앞장서서 진료권역 재설정을 검토한다고 밝힌 만큼 제주도에 상급종합병원이 세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복지부로서는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위한 기준을 유지하는 동시에 제주도만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매년 1천만명 넘게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을 고려한다.
제주도 인구는 100만명이 채 안 되지만, 2019∼2023년 연평균 관광객은 약 1천300만명 수준이다.
사람이 늘면 필연적으로 사고도 늘어날 수밖에 없어 제주도 응급실은 늘 다른 곳보다 붐빈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제주 인구 1천명 당 응급실 이용자는 175.6명으로, 전국 평균(96.6명)보다 많다.
조귀훈 과장은 "서울에 병상을 많이 배정하는 이유는 다른 지역의 환자들이 많이 유입됨에 따라 서울 주민들이 역차별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다른 지역에는 관광객이 1천만명씩 가지 않는다. 제주도에서 관광객들이 응급실을 많이 차지하면 도민들이 갈 곳이 없어지므로 상급종합병원 지정에 참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주도는 섬인 데다 태풍이 오면 응급환자 이송을 하지 못하는 특수성도 있어서 그런 점도 반영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의사 집단행동 관련 제주 한라병원 방문한 한덕수 총리 |
◇ 시설·인력 대대적 투자해 경쟁력↑…'중증환자 비중'은 과제
정부가 제주도만의 특성을 고려한다지만, 제주도에 상급종합병원이 들어서려면 몇 가지 걸림돌부터 해결해야 한다.
먼저 인력·시설 등 의료 인프라다.
환자가 전국에서 몰리는 서울권 의료기관들은 안정적인 의료 수요를 토대로 대규모 투자를 하며 몸집을 불려 왔다.
하지만 상주인구가 적은 데다 외부에서 환자가 들어올 일이 거의 없는 제주도 의료기관은 서울권 병원들과 의료자원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정부 차원에서 진료권역 재분류를 적극 검토함에 따라 제주권 의료기관들도 대대적인 투자가 필수 요소가 됐다.
제주도에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병원은 지역 내 유일한 국립대병원인 제주대병원과 한라병원이 꼽힌다.
이들 병원은 향후 투자를 통해 의사 등 양질의 의료인력과 의료장비를 갖추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걸림돌은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에 포함되는 '질병군별 환자의 구성비율'로, 상급종합병원이 되려면 전체 입원환자 중 중증환자 비중이 34%를 넘고, 경증환자 비중이 12%를 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인력이나 시설·장비 기준은 투자를 통해 비교적 빨리 충족할 수 있지만, 환자들은 쉽게 어찌할 도리가 없다.
제주대병원은 2024∼2026년에 적용되는 제5기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받고자 지난해 8월 서울권역으로 지원서를 제출했다가 고배를 마셔야 했다. 최종 선정된 상급종합병원에는 서울 '빅5' 병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조 과장은 "제주도에 큰 병원이 제주대병원과 한라병원 두 곳인데, 이 두 병원에 환자가 분산돼 치료받으면 환자 비율 기준을 충족할 수가 없는 형편"이라며 "지역 내 병원 간 '교통정리'를 통해 환자 비율을 맞출 것을 제주도청 측에 요청하고 있다"고 했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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